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2.6.2 목 09:52
기획예술
[예술] 즐겁지만, 나는박준형 / 아티스트
이소민 편집위원  |  sominsophialee@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376호]
승인 2022.05.31  08:41:0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예술계의 일자리]
이번 기획에서는 예술계의 고질적인 노동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현재까지, 예술계는 일자리 수급 불균형과 노동 대비 열악한 저임금 등의 각종 문제를 겪고 있다. 이에 해당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피해 현황을 파악해 그 실태를 살펴보겠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불안한 예술계 고용 현황 ②예술관련 고용정책은 존재하는가 ③우리가 미처 몰랐던 예술계 직업군 ④예술가들의 속사정

 

즐겁지만, 나는
 

박준형/아티스트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임을 밝힌다. 글의 주제가 ‘예술가들의 속사정’이긴 하지만, 더 정확히는 ‘예술을 하는 박준형의 속사정’ 정도로 생각하고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필자는 본교에서 학부와 석사 학위를 마쳤다. 대학원 졸업 이후에는 화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밖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서 전부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얼마만큼의 속사정을 말할 수 있을지 원고 청탁을 받은 이후 고민이 됐다. 대학원 과정을 지나면서 나의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뭐, 천성이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성향이야 남아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며 고민과 생각을 공책에 적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됐다. 보이는 것도 많고, 들리는 것도 많은 세상에서 중심을 잡으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여건을 지켜내야만 했다. 캔버스를 가만히 바라보고, 생각하고, 팔레트에 물감을 짜고, 붓을 깨끗이 빨고, 작품을 완성했을 때 느끼는 기분과 멀어지지 않고자 노력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될 거라는 각오가 부족했던 것일까’라는 질문도 해 봤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그런 것 같지는 않다”였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각오를 다지기보다는 혼란의 순간들을 대하는 나만의 태도를 터득했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며 처음 겪는 소위 ‘갑질’이나 모욕적인 언사 또는 비방이 만연한 환경에 노출됐을 때, 반드시 퇴근 후 산책을 통해 그것들을 길 위에 내려놨다. 그래야만 집으로 돌아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삶의 태도가 창작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이것도 해 볼 수 있고 저것도 해 볼 수 있는 말랑말랑한 젊은 예술가라면 더욱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아무튼 세상의 풍파에 맞춰 나를 무한히 담금질하는 건 내 방법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사건 끝에 터득한 나의 방법은 ‘흘리고, 잇기’이다. 내 발목을 무겁게 하는 상황은 흘려보내 주고, 그런 뒤에 ‘그렇지만, 나는~’이라는 흐름으로 의식과 나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내가 사랑하는 그림과 생활이 위협을 받았을 때 늪에서 한 걸음씩 걸어 나오며 희망을 되새기는 장면을.

 

엑스펙토 패트로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만 나는~’이라는 기술이자 태도는 7년 이상의 실전을 통해 태어났다. 이 기술은 마치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궁극의 마법 주문 ‘엑스펙토 패트로눔(Expecto Patronum)’을 시전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이 주문은 인간의 긍정적인 감정을 흡수하는 어둠의 생명체인 ‘디멘터(Dementor)’로부터 유일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마법이다. 행복한 생각을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올려 패트로누스라는 이름의 눈부신 수호동물을 소환한다. 이러한 패트로누스 마법과 나의 ‘그렇지만, 나는~’은 모두 사용자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상황에서 더 강력한 효과를 낸다.
  우선 초급 단계부터 예를 들자면, 예술가로서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것을 흘려내는 연습부터 해 보자. 대표적인 예문으로는 “예술, 그거 나도 다 해 봤는데, 안 돼. 자기들만의 리그야”라거나 “미술계 다 망했다”와 같은 말이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괴로움을 느낀다면 바로 그 기술을 시험해 보자. “그래, 그렇지만 나는 계속할 거야. 대책 없는 비난보다는 나의 길을 가겠어”라고 속삭여라. 여기서 개인적인 팁을 주자면, 이견을 좁힐 수 없는 상대와의 갈등은 당신의 귀한 에너지만 소진한다. 나의 경우 첫 번째 예문을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처음 듣기 시작해서, 바로 어제도 한 번 듣게 됐다. 아마도 우리는 예술을 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서 이 말을 반복적으로 들을 것이기에 이 정도의 말을 흘려보내는 것은 기본기이다.
  중급 단계는 임금체불의 상황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늦은 밤, 며칠 전까지 함께 일한 동문 선배에게 연락이 온다. 무슨 일일까, 갸우뚱하며 전화를 받았더니, “준형아, 미안한데 형이 돈 쓸 곳이 있어서 이번에 일한 거 다음에 줄게. 일단 하던 일은 나와서 마무리해 줘”라고 말한다. 이때, 당신은 ‘이 사람의 악행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순진했던 자신을 탓하며 할 말을 머뭇거린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세워 놓은 지출 계획이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절망스럽다. 하지만 당황하지 마라. 어떻게든 삶은 계속된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문을 외워라. “그렇지만 나는 다른 방법을 찾고, 너랑은 더 일 안 해”라고. 주문을 외우고 마음을 진정시켰다면, 임금은 받을 수 있는 선까지 최대한 요구하고 받아내라. 그 순간부터 친구의 아는 형이라거나, 선배라거나 등의 관계는 잊어도 괜찮다. 당신은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자, 이제 고급 단계다. 당신은 수년간 몸담았던 곳에서 출근하자마자 당일 해고를 당한다. 어떠한 예고도 없었다. 당신의 머리와 가슴에 적막이 일거나 반대로 소용돌이가 친다면, 우선 “당황스럽게도 삶이 갑자기 달라졌지만, 일단 지금은 시간을 그냥 좀 보내자”라고 주문을 외워라. 아주 놀라운 상황일수록 침착하게 알아보고 행동해라. 대부분의 사회초년생 예술가는 근로복지 제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고민에 빠진다. 반면 상대는 세무 상으로 모든 계산을 마친 뒤에 당신과의 이별을 선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필자의 경우에는 정처 없이 걷다가 평소에는 가지도 않던 서울숲까지 가서 김밥 한 줄을 먹고 커피도 마셨다. 청담대교를 건널 때 비로소 머리가 식었다.
  방황을 마쳤다면, 이제 당신은 집에 돌아가서 해고 예고수당과 퇴직금 그리고 실업급여를 요청할 수 있는지 확인해라. 당신의 고용인이었던 사용자는 특별한 사유가 아니라면 근로기준법상 최소 30일 전에 당신에게 해고를 예고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30일분 이상의 임금을 즉시 지급해야 한다. 이를 ‘해고 예고수당’이라 한다. 또한 당신이 일하던 곳의 상시 근로자 수가 5인 이상이었다면, 부당해고를 당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사업장 관할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 퇴직금의 경우에는 최소 1년 동안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로했을 경우에 받을 수 있다. 금액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의 퇴직금 계산기를 통해 예측해 볼 수 있고, 법적으로는 사용자가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에 일부 또는 전부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때는 고용노동부 사이트에서 ‘임금체불 진정서’를 신청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실업급여란 고용보험 가입 근로자가 재취업 활동을 하는 기간에 지원받을 수 있는 급여와 촉진 수당을 말한다. 고용보험 홈페이지에서 수급 자격 확인과 급여 모의 계산을 해라. 안타깝게도 수많은 예술인이 타의나 자의에 의해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로 일하지만, 퇴직 후 구직기간 동안 받는 구직급여는 이러한 예술가의 생활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잠시, 전업작가

 

  처음으로 월급을 받고 일한 곳을 나와서 몇 개월이 걸렸든 간에 퇴직금까지 무사히 받았다면 정말 고생 많았다. 대학도 학점을 모두 이수해야 졸업장을 받듯이, ‘퇴직’이라는 경험까지 무사히 마친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이를 두고 “전업작가 됐네”라고 얘기한다. 일을 쉬거나, 새로운 일을 구하는 동안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잊고 있었던 즐거움이 다시 찾아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아침과 밤에만 머물렀던 당신의 공간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그럼 이쯤에서 주문을 한 번 더 외워야 한다. 글의 시작에서 말했듯이 이 기술은 ‘흘리기’와 ‘잇기’라는 두 가지 동작의 연속이다. 이제 오늘을 내일로 이을 차례다. 지난 경험을 통해 앞으로는 일할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깨달았을 것이다. 당신의 수입이 얼마가 됐든 간에 또래 직장인들이 하는 ‘통장 쪼개기’라거나, 청년을 대상으로 혜택을 주는 저축 상품과 예술인 복지 제도, 그리고 당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관심을 갖자. 삶과 예술은 떨어져 있지 않다. 둘은 합을 이루며 내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에 불쑥불쑥 불안이 엄습하더라도 주변의 좋은 동료들과 함께 그것부터 잠재우기를 시도해 보자. 때로 불안하지만, 우리는.

<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6974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로 84 중앙대학교 302관(대학원) 201호 대학원신문사  |  대표전화 : 02-881-7370   |  팩스 : 02-817-9347
인터넷총괄책임 : 편집장 | 게시판총괄책임 : 편집장 | 청소년보호책임자 : 편집장
Copyright 2011 대학원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au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