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2.6.2 목 09:52
기획
[독자칼럼] 정상, 또 다른 지향점김미경 / 단국대 교육학 석사
안혜진 편집위원  |  ahj3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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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호]
승인 2022.05.30  18: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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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지면은 교내·외 대학원생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소통의 장’을 열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파트타임으로 학·석사 생활을 마친 필자의 치열한 삶과 그럼에도 현실적 이유로 박사과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슬픔을 담아 봤다. 이를 통해 국내·외에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끈기와 노력을 통해 성숙해지는 대학원생들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정상, 또 다른 지향점

 

김미경 / 단국대 교육학 석사

 

  어떤 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오랜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명분과 이유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필자의 경우 대학원을 진학하게 된 이유로 두 가지가 있었다. 그 중 첫 번째는 어렸을 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중등교사 자격을 취득하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만 했기에 교사 자격증이 없었고 이후 교육대학원 진학 외에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두 번째는 지적 욕구였다. 모르는 것은 일상의 불편함이자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남는다. 그래서인지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있을 만큼 경험해 보고자 했다. 평소 기타, 낚시, 헬스, 모터바이크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해 봤지만 수준급 실력에 이를 정도로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일본어, 일본인, 일본이라는 주제만큼은 지속적인 흥미와 욕구로 꽤 진척됐던 것 같다. 흥미를 기반으로 노력한 끝에 마침내 일본어 교사라는 꿈을 실현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도 잠시, 자퇴를 결정하면서 박사과정 중 학업이 중단됐다. 이 일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필자의 ‘포기’ 사례를 대학원생들과 함께 나누며 꿈과 학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말해 보고자 한다.

 

지식은 파생된다는 신념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해야 했던 필자는 1996년, 26세 때 비로소 야간 전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둔 시점, 필자가 근무했던 (사)한국능률협회에서는 IMF 사태로 인해 인원 감축 구조조정이 있었다. 이로 인해 경남 창원에서 서울 본사로 발령을 받았다. 연고 없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은 버티기 힘든 변화였다.

  당시 필자는 노동부 지원 실업자 재취직훈련과 정보통신부에서 주관하는 고학력 미취업자 IT/WEB교육 실무를 도맡았다. 회사에서는 전국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들을 위해 전직훈련을 시키는 ‘원스톱 직업전환센터’라는 신사업 부서를 꾸렸고 필자는 이곳에 배속됐다. 새로운 업무였지만 내심 역량을 쌓는 호재라 여겼다. 그러나 교육 컨설팅 기관이라는 기업의 특성상 구성원들에게 끊임없는 역량 강화를 요구했다. 뛰어난 동료들의 실력 앞에서 필자는 갈수록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속적인 자기계발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지식은 파생된다’는 개인적 신념을 갖게 됐다. 실제로 업무에 몰입한 결과 한국능률협회 30년 역사상 여성 최초로 ‘팀장’의 보직도 맡았으며 이러한 경험은 더더욱 학업에 대한 열망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일과 학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

 

  본사에서 근무를 하며 더 이상 편입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생겼다. 고민 끝에 낙점된 학교는 부산외대 일본어과였다. 그 선택에는 전문대 은사님의 영향이 컸다. 그분이 걸어오신 학문적 발자취 때문이었다. 합격한 다음에는 서울-부산 간 거리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미 예견된 문제였다.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었고 교사로서의 꿈을 접을 수도 없었다.

  결국 휴학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1년을 휴학했고, 1년이 지난 후 창원 본가로 낙향했다. 온전히 학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3개월의 시간이었다. 행복했다. 1시간 거리의 학교까지 아침 9시에 등교하고 밤 10시에 귀가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수업 시간을 제외하곤 온종일 도서관에서 일본 문학에 빠져 있었다. 머지않아 교단에 서 있을 나를 생각하니 김치와 계란 프라이가 담긴 두 개의 식은 도시락조차 너무도 맛있었다. 도시락을 싸들고 다녀야 할 정도로 수입이 없었기에 지출을 최대한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휴직 3개월 차, 미뤄 놨던 경제적인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복직해야만 했다. 학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부산외대가 한국외대와 교환학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3-2학기, 4-1학기를 한국외대 교환학생으로 수학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10년 넘게 한 직장에서 근속했기에 년, 월차와 보건휴가를 주 1회 사용할 수 있었다. 이에 주 1회 출석으로 시간표를 조정하고 한 학기 12학점을 신청했다. 마침 8개 대학이 연계한 사이버 수업(OCU)도 있었기에 이를 통해 9학점을 신청, 한 학기당 21점을 이수할 수 있었다. 또한 계절학기 두 과목을 들으며 졸업학점을 채워 나갔고 부족했던 학자금은 노동부 학자금대출로 조달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결국 학부 졸업을 할 수 있었다.

 

행복하고 설렜던 석사 생활

 

  연이어 대학원 입학을 준비했다. 당시 마포에 위치한 직장에서 학교까지는 약 30분 거리였고, 퇴근 이후 학교로 바로 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대학원 생활은 국회도서관에서 논문을 열람·발췌하고 복사하며 수업을 준비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보내는 시간은 상당히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이따금 몇몇 원우들이 과제와 발표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필자는 풀타임 원우들을 부러워하며 ‘혜택받은 자의 아우성’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경야독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그렇게 나의 대학원 생활은 매 학기 학자금대출과 함께 꿈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논문심사와 더불어 미루던 교생실습을 앞두게 됐다. 이제는 손때 묻은 배를 떠나보내야 했다. 필자는 교생실습과 동시에 오랜 기간 몸담고 있던 정든 직장과의 인연을 뒤로하고 교직으로 이직했다.

  그 사이 중등교사 임용시험에서 두 번의 낙방도 경험했다. 그러나 하루 8시간 이상 하고 싶은 공부를 매일 한다는 것은 지식의 결실이고 크나큰 행복이었다. 다만 임용고시를 중단한 것은 ‘일본 방사능 유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아주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일본 여행은 급감했고 중등교사 TO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교육현장에서는 제2외국어 선택과목에서 일본어가 한문과 중국어에 비해 한참 밀려나 있었다. 결혼 이후 임신과 출산이라는 문제도 직면했다.

  그렇게 다시 진로를 모색하는 기로에 섰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고민을 하던 중 모 대학 일본어과에서 시간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일단 강의를 맡았다. 대학강의는 중등교육과는 많이 달랐다. 필자는 금세 그 새로움에 매료됐고 또 다른 목표가 생겨났다. 이를 이루기 위해 큰 망설임 없이 박사과정에도 입학했다.

 

‘꿈’이 되는, ‘꿈’을 위한

 

  박사 입학 이후, 또다시 국회도서관을 넘나들며 연구논문을 찾고 발표를 준비했다. 그러나 당시의 외부요인들은 박사학위 이후의 미래에 대해 불안한 감정을 들게 했다. 일본어 관련 학과가 폐지되거나 통폐합된다는 말들, 대학원 입학정원이 감축된다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오히려 미래가 더 막막해지는 건 아닐까.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커지는 불안감에 정보를 찾았지만 그럴수록 다시 불안이 커질 따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도교수님은 안식년을 맞았기에 소통이 힘들었다. 겨우 학업에 대한 진로상담을 진행했지만, 기대와는 다른 정보를 받아 사기가 더욱 떨어질 뿐이었다.

  홀로 동떨어진 기분은 지속됐다. 그 과정에서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제까지 필자를 더욱 고민하게 했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맞는 것인지, 즉답하기 힘든 질문들이 필자를 점점 코너로 내몰고 있었다. 배움의 불씨를 꺼뜨리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30대 중반의 나이에,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시 시험관 시술까지 앞둔 상황이었다. 두 가지 일 모두 소중하고 중요했지만, 사안과 시기가 겹친 현실적인 상황이 나를 고민하게 했다. 그리고 결국, 박사를 포기했다.

  학업은 혼자일 때, 집중이 수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또한 무언가를 선택할 때도 혼자일 때가 더욱 좋을 것이다. 고려할 것이 많아질수록, 복잡해질수록 고민의 크기는 달라진다. 필자는 배움에 대한 깊은 열망이 있었고 꿈을 꿨지만 결혼, 출산, 육아라는 현실적 여건의 충돌로 인해 박사과정에서 결국 학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학원생들만큼은 부디 현재의 진로를 믿고 마음껏 정진하라고 말하고 싶다. 만일 나와 같은 고민을 하기 전이라면, 더더욱 공부에 집중하길 바란다. 나의 사례가 미래를 준비하는 원생들에게 현실적인 자극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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