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식 / 시민건강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사회_K-방역 밖의 사람들]

코로나 팬데믹은 전 지구를 위협에 빠트렸지만, 그 충격은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일부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용했다. 누군가가 외출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밤 9시에 귀가하는 ‘불편’을 겪을 때, 다른 누군가는 기초적인 생활과 생존을 위협받기도 한다. 본 기획은 K-방역의 보호 안에 들지 못한 이들을 살피고, 그들이 처한 현실의 원인과 개선에 필요한 제도를 함께 생각하는 ‘더 넓은 방역’을 꿈꾸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거리두기를 지탱하는 배달노동 ② 팬데믹 속 장애인 인권 ③ 온택트라는 이름의 단절 ④ 시설 집단감염이거나 길이거나

 

노인을 배제하는 ‘디지털 포용’
 

정성식 / 시민건강연구소 박사후연구원
 

 
 

 

  팬데믹이 정점을 지나면서 지난 2년간 지속됐던 ‘거리두기’가 해제됐다. 하지만 큰 고비를 넘겼다고 해서 마냥 반가워하기 어렵다. 코로나19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매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염으로 사망하고 있고, 대부분 고령층에 집중돼 있다. 연령별 누적사망자 수의 분포만 놓고 볼 때 고령층은 코로나19 유행의 최대 피해자 집단이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노인일수록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그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는 사회적 의지에 달린 문제다. 다행히 우리 사회는 유행 초기 단계부터 철저한 방역조치를 실시했고, 그 덕분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고령층의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만약 자연 집단면역의 길을 택했다면 훨씬 더 많은 죽음을 목도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수많은 소상공인들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피눈물’을 외면한 대가다. 분명히 정부는 이들의 사회경제적 고통을 감수하며 상당 기간 고강도 거리두기 정책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 사실만으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노인들의 생명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치명력이 약화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과 그에 따른 방역조치 완화는 노인과 비노인 간 생명가치의 불평등을 가시화하는 분기점이 됐다. 지난 수개월 동안 요양시설에서 연쇄적 집단감염이 발생하며 노인 사망자 수가 폭증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희생’으로 여겨지며 묵인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K-방역’을 통해 확보된 시간 동안 공공보건의료기관과 인력, 예산을 확충하며 체계를 강화했더라면 지금의 안타까운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리두기를 해제하면서도 건강취약계층의 생명을 최대한 지킬 수 있는 ‘절충점’을 알면서도 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가는 ‘조용한’ 죽음의 행렬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인의 디지털 배제

  작금의 상황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노인차별주의(Ageism)’와 무관하지 않다. 이는 ‘젊은 사람’의 생명에 더 높은 가격표를 붙이는 생명통치의 한 단면으로도 읽을 수 있다. 경제적 가치를 상실한 노인들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사실상 ‘이등시민’으로 소외돼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이러한 실상을 암시하는 지표다. ‘K-방역’이 다른 나라와 견줘 노인의 생명 보호에 일정 부분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이들을 사회적 소외로부터 지켜 주지는 못했다. 특히 비대면 사회로의 급속한 전환은 노인들의 ‘디지털 소외’를 더욱 심화시켰다. 온라인을 통한 재난지원금 신청과 백신접종 예약, QR 코드 인증을 통한 백신패스 정책 등은 ‘온택트(On-tact)’ 역량이 부족한 고령층에게 큰 장벽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이들을 표적으로 삼는 ‘메신저 피싱(Messenger Phishing)’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디지털화하고 있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노인들의 디지털 접근성 제약은 사회적 삶의 토대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최근 ‘디지털포용법’ 제정을 비롯해 디지털 격차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고, 그 초점은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훈련 프로그램 제공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노인들의 낮은 ‘디지털 문해력(Digital Literacy)’만이 격차 문제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디지털 기술과 장비들이 주로 젊고 ‘건강’한 사람들만을 기준으로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지털 취약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의 화면 속 작은 글자와 짧은 주문 제한시간, 낯선 외래어 표기 등을 그러한 예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노인에게 불리하게 설계된 디지털 환경은 비노인과의 디지털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결국 그 자체로 노인을 차별하는 사회적 구조인 셈이다. 디지털 소외가 아니라 ‘디지털 배제(Digital Exclusion)’로 불러야 하는 이유다.
 

노인 집단 속 디지털 불평등

  한편 고령친화적 기술 개발만으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노인 내부의 디지털 격차 역시 주목해야 할 문제다. 노인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이 ‘디지털 공포’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노인’은 인위적으로 구성된 개념에 불과하다. 생물학적 연령을 기준으로 묶여 있지만, 그 속에는 성별, 소득, 교육수준, 지역 등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코로나19로 사망한 고령층 가운데 저소득, 저학력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또 「2020 디지털 정보격차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수준이 낮은 노인일수록 PC와 모바일 스마트기기 이용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역량이 교육수준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이는 디지털 불평등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교차하면서 건강 불평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결과다.
  따라서 노인 맞춤형 디지털 교육훈련과 노인 친화적 기술개발에 힘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한 제도적, 기술적 혜택이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분배되지 않는다면 결국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의 디지털 포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노인들의 디지털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평등 문제를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한다. 고소득, 고학력, 비장애, 내국인, 도시 거주 고령층만을 ‘정책고객’으로 전제하는 ‘디지털 포용’ 담론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모순과 허구성을 그대로 재현하게 될 따름이다.
 

디지털 거부권도 받아들여야

  한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거부하는 노인들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실태조사의 또 다른 결과를 보면, 고령층 가운데 10% 이상이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를 사용할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태도의 이면에는 다양한 맥락과 동기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사용의 불편함’, ‘새로운 것에 대한 학습의 어려움’과 같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피치 못할 사정이 없더라도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가치판단 때문에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포함돼 있을 수 있다. 이들에게 디지털 역량의 강화를 강요하는 것은 자칫 폭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인을 위한 진정한 디지털 포용을 위해서는 디지털 기술의 사용을 거부하는 노인들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며 선택 가능한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QR코드 인증을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안심콜 출입관리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믿게 만든다. 그리고 노인을 향해서도 계속 스스로의 경쟁력을 유지하며 노동과 소비의 주체로 살아갈 것을 명령한다. 흔히 ‘능동적 노화’, ‘생산적 노화’의 개념으로 포장하는 이 명령은 결국 그것을 따르기 어려운 이들을 더욱 차별하고 배제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등장은 이처럼 연령의 경계를 해체하려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가 ‘망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대신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한층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다시금 연령의 절대적 차이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늙어 간다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 감각과 능력이 퇴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뜻이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장 아메리(Jean Amery)가 그의 1968년 저작 〈늙어감에 대하여〉에서 한 말을 빌리자면 노인에게 “매일 새로운 표시와 체계를 배우고 익혀야만 한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늙어 가는 존재다. 살아 있다면 ‘노인’으로 호명될 법적 연령의 경계를 이미 지났거나 언젠가 지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을 배제하는 것은 곧 미래의 ‘나’를 배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디지털 포용이 그 미명 아래 노인들의 디지털 기술을 거부할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실체는 결국 노인에 대한 또 다른 억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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