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현 / Royal College of Art, a Master of Ceramics and Glass

 

본 지면은 교내·외 대학원생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소통의 장'을 열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이번 호에서는 영국왕립대학(Royal College of Art)을 졸업한 필자가 느꼈던 유학 생활에서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담아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국내·외에서 꿈을 향해 나아가며, 끈기와 노력을 통해 성숙해지는 대학원생들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느리게, 호흡

 

 
 

 

 

  어려서부터 사람을 사귀는 것, 배우는 것, 심지어 책을 읽는 것까지 모든 일에 또래 친구들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편이었다. 이로 인해 주변에서 많이 혼도 났고, 닦달도 당했다. 혹자는 이러한 모습을 뒤떨어진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일들에 덤덤했다. 경쟁이라는 것이 나와 성향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무난하게 살았다. 졸업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했을 때도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경험을 쌓고 싶을 뿐이었다. 좀 더 개인적인 이유를 꺼내 보자면, 학부를 졸업한 후에도 아직 배우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고, 또 새로운 사실들을 여럿 알게 됐다. 그런 나의 여정을, 하나의 방명록을 오늘 조심스럽게 공개하고자 한다.

 

영국에서의 시작

 

  2018년에 도자 유리학과가 있는 영국의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학부 졸업 이후 막연한 공허함을 느껴 입학한 나와 달리 많은 사람들은 상당히 구체적인 진학의 이유와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전공 분야를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자 학교를 제 발로 다시금 찾아온 사람들이었으니, 그도 그럴 것이었다. 그들의 열정은 대단했고 경쟁은 치열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나 또한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작아져만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언어, 문화 등 여러 장벽 앞에서 스스로를 ‘검열’하고 ‘비교’하는 내가 있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무엇이든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평소에 “천천히, 꾸준하게”를 말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살아왔기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한 발자국 앞서 걷는 듯했다. 오로지 나만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불안감이 느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모든 일에 조급하게 서두르는 모양새로 변했다. 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자 찾은 영국이었지만, 그곳에서 오히려 스스로를 작은 틀에 넣어놓고 남들의 시선에 맞춰 비교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 자신을 더 좁은 공간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팬데믹, 그리고 네덜란드

 

  내가 만든 높은 기대에 맞추려다 보니 점차 예민해져 갔다. 알고 싶지 않았던 부정적인 내면의 모습은 스스로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졸업 전시를 3개월 남겨두고 코로나가 터졌다. 석사 생활 중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졸업작품, 그리고 그 졸업작품의 마무리 전시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학교는 폐쇄됐다. 그 어떤 작업실조차도 사용할 수 없다는 학교 측의 말에 학생들은 절망에 빠졌다.

  재작년 3월, 고민 끝에 결국 1년을 휴학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졸업도 하지 못한 채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착한 한국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야말로 ‘뚝’ 떨어진 상황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사람이 그랬겠지만, 외출조차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부정적인 감정은 더욱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빠르게 1년은 지나갔다. 결국 졸업 전시는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런던에서의 전시까지 포기하지 않고 겨우 마쳤기에 후회는 없다. 그리고 올해 1월,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네덜란드의 ‘아티스트 세라믹 레지던스’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3개월의 짧은 기간이지만, 작가들과 네트워크를 쌓고 흙을 재료로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았기에 1분 1초가 아까웠다. 그렇기에 짧은 다리로,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작업에 전념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 돼 버렸다. 영국에서 비교하고 검열하는 습관이 생기고 난 이후부터였을까. 아니면 네덜란드에서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느긋함은 없었고 항상 조급했다.

  하루는 런던의 같은 학교를 나온 포르투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녀 또한 박사과정을 겸하며 꾸준히 작업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Slow Breathing”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레지던스와 박사과정을 병행하며 항상 바쁘게 사는 듯 보였던 친구였지만, 그 말에서 천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작업하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내가 왜 그렇게 조급한 마음으로 지난 몇 년을 살아왔는지, 무엇을 위해서였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지금,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 터닝 포인트였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작가로서 주목받는 사람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저마다의 성향과 걸어가는 속도가 다르므로 그로 인해 누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지, 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샌가 내가 목표하던 곳에 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영국 유학 생활과 코로나로 인한 졸업 전시 중단에서 절망을 느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그토록 원하던 레지던스에 들어와 즐겁게 작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조급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리고 내 뜻대로 작업이 잘되지 않아 몸도, 마음도 지치는 순간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Slow Breathing’을 되놰 본다. 해외에서의 시간을 되돌려 본다면, 내가 그 시간 동안 얻은 것은 더 나은 기회도, 더 나은 작업도 아니었다. 천천히 호흡하는 것.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해 내 발걸음에 맞춰 걸어가는 방법을 배운 것이었다.

 

인연들과 함께 하는 길

 

  외국에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감정을 통제하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게이, 페미니스트, 비건 등 특정 소수를 ‘구별’하는 행위가 이상할 정도로 그들은 다른 사람의 성향이나 특성에 과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운 교육을 선호하신 부모님 덕분에 한국에서는 때때로 ‘겉도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사회에서 정해놓은 규칙을 따라가기 힘들 때마다 그랬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다양한 색깔을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나를 다양한 색깔로 채워 줬고, 무언가를 위해서인지도 모를 조급한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상대와 나 스스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 네덜란드의 현역 코미디언으로 30년을 넘게 일하다가 현재는 실외 모자이크 벤치를 만드는 사람을 만났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사람들이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벤치가 없다는 것에 주목해, 소외된 사람들에게 직업을 주고 그들과 함께 벤치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이였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신입인지라 계속해서 작품을 만드는 데 실패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열정적인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그렇다. 조급하던 나를 변화시켜 준 것은 ‘사람’과의 관계였다.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길, 그 길의 폭을 넓혀 준 것은 항상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의 여정이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관계의 소중함을 한껏 느낀다면 그 길은 즐겁기 그지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난 후 되돌아본다면, 이제껏 내가 지나온 것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 줄 것 같아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

  현재 대학원생이라면 나 또한 그랬듯, 몇몇 동기들이 나보다 빠르게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힘들어 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빠른’ 것보다 ‘천천히’ 나아가는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 멋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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