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석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간사

[K-방역 밖의 사람들]

코로나 팬데믹은 전 지구를 위협에 빠트렸지만, 그 충격은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일부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용했다. 누군가가 외출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밤 9시에 귀가하는 ‘불편’을 겪을 때, 다른 누군가는 기초적인 생활과 생존을 위협받기도 한다. 본 기획은 K-방역의 보호 안에 들지 못한 이들을 살피고, 그들이 처한 현실의 원인과 개선에 필요한 제도를 함께 생각하는 ‘더 넓은 방역’을 꿈꾸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거리두기를 지탱하는 배달노동 ② 팬데믹 속 장애인 인권 ③ 온택트라는 이름의 단절 ④ 시설 집단감염이거나 길이거나


당연한 재난, 당연하지 않은 삶


박주석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건강권위원회 간사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장애인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필자가 겪었던 일을 전하고 싶다. 노트북이 고장 났던 시기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회의가 있을 때면 대학교 앞 PC방에 들려 온라인으로 참여하곤 했다. 그곳에서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헤드셋 속에서는 장애인이 겪는 문제에 대한 해결법을 치열하게 토론하는 목소리가 가득하지만, 동시에 헤드셋 밖에선 “이 병신아”라는 욕이 아무렇지 않게 들려오기 때문이다. 하루는 회의를 마치고 헤드셋을 내려놓자마자, 특정 장애 유형을 언급하며 옆자리 친구를 비난하는 욕을 듣기도 했다. PC방이라는 공간에서 전장연 회의에 참여하는 필자는 헤아릴 수 없이 멀리 떨어진 두 사회의 교차점에 있었다. ‘저들이 살아가는 사회와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과연 맞닿을 수 있을까’, 고민 속에서 너무나 무력한 일주일을 보냈다.


우연하지 않은 재난


  팬데믹 초기인 2년 전, 코로나 사망자는 정신병원에서 처음 발생했다.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4년간 의료급여 및 장기입원환자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정신병원 장기입원환자 비율은 74.5%에 달한다. 퇴원 후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코로나 사망자는 병원에서 20년 이상 생활한 이였다. 죽은 몸으로 병원을 나왔을 때의 그는 고작 42kg에 불과했다.
  정신병원은 만성적으로 인력이 부족하다. 때문에 입원환자에게 청소를 시키거나, 이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기도 한다. 재작년 3월 19일자 시사인의 기사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중앙임상위원회가 처음 청도대남병원 폐쇄 병동에 방문했을 때 환자들은 버려진 음식에 손을 대거나, 복도 바닥에 소변을 본 뒤 쓰레받기로 물기를 없애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작년 4월 장애계의 끝없는 요구로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이 겨우 마련됐다. 지침은 장애인이 선별진료소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을 지원하고, 특히 시각장애인에겐 이동지원 인력이 차량 목적지까지 함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지침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지난 2월 22일에는 중증시각장애인 한 분이 PCR 검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혼자 길거리에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시민들의 신고로 병원에 이송했으나 이미 심정지가 온 상태였던 것이다. 그는 죽은 후에야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유족들은 코로나 확진으로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장애인 활동가들이 대신 상주로서 장례식장을 지켰다.
  장애인은 평소에도 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어렵다. 보건복지부의 「2018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선별진료소인 보건소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은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었다. 파출소·지구대, 우체국, 교정시설의 적정설치율 역시 전체 설치율보다 낮게 나타났다. 정부는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8년 5월부터 ‘장애인 주치의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장연은 작년 4월에 장애인 주치의 제도를 점검하기 위해 장애인 주치의 신청 운동을 전개한 결과, 당시 진료를 받지 못한 사례가 70%에 달함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진료를 거부당하거나 애초에 그 의원에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원에 대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여부조차 제대로 조사되고 있지 않은 현실이다. 법적으로 장애인 편의시설이 의무화된 의원은 2005년 7월 이후 신축·이전되고, 500평방미터 이상인 곳에 한하는데, 2018년 기준 전체의 6.3%만이 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들만이 조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연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의 건강검진 수검률은 절반을 조금 넘는 55.7%에 불과하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지원을 24시간 보장받지 못함과 동시에 이들에 대한 돌봄마저 민간에게 떠넘겨져 있는 상황인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진단·검사, 치료, 돌봄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은 배제돼 왔다. 코로나는 이미 존재해 왔던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켰을 뿐이다. 이들이 맞이하는 재난은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점점 방치하는 방향으로 코로나 대응을 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유행 이후 위중증 환자가 델타 변이 때보다 적고 중환자 병상 가동률 여유가 있다고 하지만, 사망자 수가 치솟고 있다는 사실은 잘 얘기하지 않는다.
  지난 2월 21일 국회에서 제1차 추가경정예산이 의결되며 장애인을 위한 자가검진 키트가 배포됐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데엔 키트가 아니라 사람이 필요하다. 작년 3분기 정부는 장애인 방문 접종을 계획했지만 의료인력 부족을 이유로 시행되지 않았다. PCR 검사 대상에 장애인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보건소 인력의 한계로 인해, 오직 나이만으로 고위험군을 분류하는 방향으로 오히려 축소됐다. 돌봄에 대한 공적 체계도 부족하다. 장애인 당사자가 확진됐을 때 활동지원인을 구하지 못해 활동가들이 방역복을 입고 들어간 일도 있을 정도다. 자가검진을 비롯한 재택치료, 수동감시는 생명에 대한 방치다.
  장애인 코로나 사망률이 비장애인의 여섯 배에 다다르는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선별진료소, 의료기관들에 대한 장애인 편의시설 정보조차 아직도 공개되고 있지 않고, 장애인 전담 병상은 전국에 국립재활원 한 군데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족들이 그 돌봄을 부담하고 있는데, 가족이 확진됐을 경우 홀로 남은 장애인에 대한 대책은 실제로 전무하다.
  지난 2월 26일 경북에 위치한 장애인 거주시설 성락원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났지만 코호트 격리 외에는 어떠한 대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사실 많은 사람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들이다. 장애인이 활동지원인을 구하지 못하듯 아픈 가족을 돌볼 사람을 구하지 못해 요양병원을 알아보거나 직장을 관두는 이들이 많고, 장애인이 자가검진 키트를 이용하기 어려워하듯 자가검진 키트를 구하고 이용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장애인 전담 병상이 전국에 한 곳밖에 없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병상이 없어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돌봄과 의료의 공공성 부족은 이처럼 우리 모두가 함께 겪고 있는 문제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속도


  작년 말부터 대선 정국 동안 전장연은 지하철 탑승 투쟁을 진행했다. 단순히 혜화역에서 열차를 타는 방식의 선전전을 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와 혜화역장은 시위를 예고한 당일, 시작하기도 전에 휠체어 승하차를 ‘불법 시위’로 규정하며 엘리베이터를 폐쇄했다. 수많은 비장애인이 열차에 타고 내리는 일은 ‘당연’한 일상이 되면서도, 장애인의 승하차는 열차를 ‘지연’시키는 시위로 남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이어진 시위에 불편을 표하고 사무실에 찾아오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대 10분의 연착조차 기다리기 힘든, 계속해서 달려야만 하는 현실에서 산다. 하지만 그 속도에 장애인은 함께 달릴 수 없다.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속도가 필요하다. 장애인의 속도로 함께 가는 일은 왜 불편하고, 한편으로 또 불안하기까지 할까. 지금의 이 속도는 누구의 속도일까. 느린 속도로 걷는 것이, 늦는 것이 두려운 당신이 겪는 문제는 장애인이 겪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언제든지 해고되거나 임금을 위협받을 수 있는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음이다. 그렇기에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돼 있다.
  전장연에는 많고 많은 부고가 전해져 온다. 정말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난다. 필자가 활동을 시작한 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지만, 이곳의 활동가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뭘 좋아했는지, 살아온 과정은 어땠는지 잊지 않고 서로에게 전해 준다. 어쩌면 가족도 모를 만한 이야기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를 갈라놓은 벽을 깨고 함께 살기 위해 손 내밀고 삶을 기억하는 투쟁의 과정이 가끔은 너무나 힘들지라도, 함께 살고자 한다. 함께 가자.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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