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훈 / 라이더유니온 서울지부(준) 사무국장

[K-방역 밖의 사람들]

코로나 팬데믹은 전 지구를 위협에 빠트렸지만, 그 충격은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일부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용했다. 누군가가 외출 때마다 마스크를 쓰고 밤 9시에 귀가하는 ‘불편’을 겪을 때, 다른 누군가는 기초적인 생활과 생존을 위협받기도 한다. 본 기획은 K-방역의 보호 안에 들지 못한 이들을 살피고, 그들이 처한 현실의 원인과 개선에 필요한 제도를 함께 생각하는 ‘더 넓은 방역’을 꿈꾸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거리두기를 지탱하는 배달노동 ② 팬데믹 속 장애인 인권 ③ 온택트라는 이름의 단절 ④ 시설 집단감염이거나 길이거나

 

플랫폼 노동의 사회적 관계
 

배재훈 / 라이더유니온 서울지부(준) 사무국장

 

 
 

 

  지난해 8월,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한 40대 배달 라이더가 배달의 민족 서비스인 ‘배민1’ 업무를 수행하는 도중 선릉역 교차로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지신호로 다른 차량이 대기 중일 때, 오토바이가 차간 주행으로 정지선 앞까지 나와 상위 차선에서 신호대기하던 트럭 앞으로 끼어들었고, 트럭 운전사는 높은 운전석에 앉아 이를 보지 못하고 바뀐 신호에 따라 출발하며 오토바이를 받아버린 비극적인 사고였다.
  수많은 배달 노동자들은 SNS를 통해 사건 소식을 공유하고, 이름도 알지 못하고 만나 본 적도 없는 동료의 죽음에 대해 마치 자기의 일인 것처럼 깊이 공감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들에게 선릉역 오토바이 사망사고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과실로 비롯된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연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사고 현장에 걸렸던 현수막의 “선릉역 오토바이 라이더는 우리의 모습이다”라는 문구는 어떻게 이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과실이 아닌 배달 노동자들의 연대를 이끌어 내는 사건으로 기억되는지 보여 준다.
 

인터페이스 뒤에 가려진 노동자의 현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비대면 배달 서비스 이용이 폭증했고, 요기요·배달의 민족·쿠팡이츠와 같은 관련 플랫폼 기업 역시 급성장했다. 그러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 라이더의 모습은 소비자들에게 스마트폰 앱의 인터페이스 상에서 움직이는 작은 캐릭터의 모습으로 표상될 따름이다. 첨단을 달리는 IT 기술이 적용된 배달 앱은 음식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면 관계를 최소화하거나 없애고, 편의성과 즉시성이라는 미명 아래 몇 번의 터치만으로 완전 조리된 음식이 30분 안에 도착하도록 만들었다.
  음식을 주문하는 소비자는 배달 라이더가어떻게 입직하게 되며, 어떤 노동 경험을 통해서 갓 조리된 음식을 식지 않게 30분 안에 배달하는 서비스를 수행해 내는지 이해할 필요가 없다. 마치 공장에서 만들어진 상품이 노동자의 땀과 고통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은 채 깔끔하게 포장·진열되는 것과 같다. 디지털 플랫폼은 배달을 앱 인터페이스로 매개된, 노동의 얼굴과 흔적이 지워진 하나의 서비스 상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반면 선릉역 오토바이 사고 이후 배달 라이더들의 연대와 추모의 물결은 스마트폰을 비롯한 미디어 기술이 감추려고 했던 플랫폼 노동의 사회적 관계에서 촉발된 것이다.
  배달 플랫폼 기업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서비스를 ‘익스프레스’, ‘번쩍배달’, ‘치타배달’이란 이름으로 광고해 왔다. 그러나 이것들은 이륜차가 교통이 혼잡한 상황에서도 차간주행을 하며 다른 운송수단보다 빠르게 음식을 배달할 수 있다고 전제해야만 성립한다. 빠른 배달을 위한 기업들의 경쟁은, 제한된 시간 안에 한 건이라도 더 많은 콜을 받아 수수료를 벌어야 하는 배달 라이더의 이해와도 맞물린다.
  개인사업자로 간주되는 그들은 일을 위한 운송수단과 장비의 구매·유지 비용, 보험료를 대부분 자부담한다. 때문에 기본경비를 제하고 시간당 최저임금 이상의 수익을 거두기 위해선 시간당 한두 건이 아니라 서너 건 이상의 배달을 해야 한다. 더욱이 건당 프로모션 수수료가 높이 책정되는 점심, 저녁 피크타임에는 더 많은 배달을 수행해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을 경험한다. 즉 편리한 스마트폰 인터페이스 뒤에 감춰진 교통법규 위반은 배달 노동자의 생산성과 직결되며, 구체적인 ‘산 노동’의 과정에 포함되는 셈이다. 이에 더해 ▲배달 플랫폼 간 속도 경쟁 광고 ▲도착 예상 시간을 안내하는 알고리즘 ▲GPS로 추적되는 경로를 모니터링하며 독촉하는 소비자의 요구는 배달의 속도를 높이는 것만을 최우선으로 두는 노동 통제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게 된다. 교통법규 위반에 따른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취약함이 플랫폼 기업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됨을 배달 라이더들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선릉역 사고는 그들 사이의 연대감이 불붙는 계기가 된 것이다.
 

플랫폼의 책임회피와 불안정한 노동의 양산


  배달 플랫폼 기업은 ▲배달 수수료를 결정하고 ▲AI 배차를 통해 배달 라이더들의 일감을 배분하며 ▲GPS 위치추적과 평점·패널티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노동과정을 통제하지만, 배달 라이더를 배달 파트너, 혹은 위탁배송 계약자라는 이름으로 칭한다. 이는 고용관계를 인정하지 않음을 통해 배달에 따르는 위험에 대한 책임과 비용을 모두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담론적 실천이다.
  플랫폼 기업의 디지털 기술은 누구든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들기에 시공간적 종속성에 기반해 있던 전통적 노사관계를 해체하고 배달 노동자와 플랫폼 기업이 합리적인 ‘계약’을 맺는 관계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는 지난 2019년 AB5(Assembly Bill No. 5)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기업의 실질적인 일감 부여와 노동 통제를 근거로 ‘우버’나 ‘도어대시’와 같은 노무 제공 플랫폼을 위해 일해 온 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유럽연합도 작년 12월 「플랫폼 노동에서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입법지침」을 발표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플랫폼 기업의 통제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입법 움직임의 초석을 다졌다. 플랫폼 노동을 둘러싼 각국의 움직임은 무엇보다도 사용자에게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자성에 대해 입증할 책임을 부과했다는 점에서, 플랫폼 기업의 책임 면피가 앞으로 지속가능하지 못할 것임을 예고한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어떨까. 고용노동부가 작년 발표한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에 따르면 배달·배송·운전을 주업으로 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주당 노동시간은 무려 48.4시간이다. 이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른 동월 상용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인 39.6시간에 비해 8.8시간 더 많은 수치다. 배달 라이더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의 많은 조합원들 역시 플랫폼을 통한 오토바이 배달을 주업으로 하면서, 휴게 및 대기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하루 10시간 이상, 주 5~6일씩 일하고 있다.
  장시간 플랫폼에 종속돼 노동함에도 불구하고, 배달 라이더는 명목상 계약자·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고용된 노동자들이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에 근거해서 누리는 보호의 범주에 들지 못하고 있다. 부상을 입을 경우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 배달 노동자는 산업재해 처리 비용을 사측과 절반씩 부담해야 하고,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휴업급여로 인해 깁스를 하고서라도 일터로 나가는 현실이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이들은 의료보험 지역가입자로서 소득에 따라 매달 30만 원 이상의 의료보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특수고용직에게도 적용되는 고용보험제도가 올해부터 실시되지만, 사고나 질병으로 실업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큰 배달 라이더의 현실을 봤을 때, 기존의 실업급여 개념으로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안전한 배달문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


  선릉역 오토바이 사고 이후, 인터넷 포털의 기사 댓글 창은 도로교통법 위반을 저지른 배달 라이더를 ‘딸배’라고 비하하는 몇몇 네티즌의 성화로 어지러웠다. 이후 몇 달간 경찰은 오토바이를 중점적으로 교통법규 위반 단속을 실시했고, 한 대선 후보는 이륜차 전면 번호판 부착을 의무화하고 소음 단속을 강화한다는 정책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배달 라이더의 잦은 사고와 관련해 어떤 정치인도 플랫폼 기업의 책임에 대해서 의미 있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위험한 노동문화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고 불안정한 노동을 양산하는 플랫폼 자본과의 관계에서 비롯됐음을 은폐한다면, 비난과 단속강화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고 배달 노동을 범죄화하고 낙인찍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선릉역에서 사고를 당한 배달 라이더에 대한 동료들의 연대감은 이렇게 노동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분위기로부터 나타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는 배달 노동자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아 마땅한 노동자라는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함일 뿐만이 아니라 안전한 배달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회적 연대의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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