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찬석 / 사회학과 부교수

 

인권은 정답 찾기일까

 

서찬석 / 사회학과 부교수

 

  “사형제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온, 내 동기는 무척이나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인권을 불가침의 가치로 여기는 서유럽에서 사형제 찬성은 인권에 대한 무지나 무관심으로 여겨진다고 그는 덧붙였다. 나는 대답했다. “사형제를 옹호할 마음도 없지만, 사형제 폐지가 인권의 편에 서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지도 않아.” 당시의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사형제 폐지를 둘러싼 그간의 논쟁을 보며 인권을 위한 하나의 정답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인권의 편에 서는 것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고문하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개진을 막는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인권을 지키는 일이었기에, 투쟁은 두렵고 힘겨웠으나 적어도 논쟁의 여지는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35여 년간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돼 온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사형제를 둘러싼 논의는, 나아가 여러 인권 관련 의제들을 둘러싼 논쟁의 지형은, 단순히 선악을 가를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주요한 인권 의제에 대한 오늘날의 논의는 보통 두 가지 인권 중 어느 손을 들어 줄 것인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사형제를 선고받은 이들을 떠올릴 때 우리는 조봉암, 김대중 등의 정치적 반대자들이 아니라 유영철, 강호순 등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간 연쇄살인범들을 생각한다. 판결의 불공정함, 오판의 가능성, 정치적 이용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범죄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시각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어 간 이들의 인권, 또 앞으로 언제든 침해될 수 있는 시민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예외적으로 사형제를 선고할 수 있도록 하자는 다수 시민의 생각, 또 사형제가 헌법을 위배하지 않았다는 헌법재판소의 거듭된 판단이 오롯이 ‘반인권적’이라고 매도하기도 힘들다.
  인권은 올바른 입장 찾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권이란 단지 어느 편에 서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기준에 따라 어떤 사고와 판단 과정을 거쳐 그러한 입장을 형성했는가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에 대한 자의적이고 무분별한 사형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반인권적인 주장이 되겠지만, 무고한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한된 형태의 사형제 존치를 주장한다면 이는 시민의 고귀한 인권을 앗아간 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 피해자 중심으로 정의를 바로 세움과 동시에 향후 범죄예방을 위한 노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인권 중심적 시각일 수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또 우리의 정치에서 어느 편에 서는지만이 중요한 문제가 됐다. 정치적 양극화의 추세 속에 인권을 둘러싼 논의 역시 정답 찾기처럼 단순화됐다. 선명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입장은 양극화된 목소리에 묻힌다. 하지만 인권 의제를 둘러싼 논의는 그보다 복잡하고 또 복잡해야만 할 것이다. 상대 입장에 대한 딱지 붙이기가 아니라, 상충하는 입장들을 통합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때때로 충돌하는 인권들을 함께 보듬어 가는 인권 정책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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