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동 / 조형예술학과 석사과정

 갈라테이아와 함께 춤추고 싶다면


김영동 / 조형예술학과 석사과정

Actual Situation_4944, 101.8 * 57.1(cm), Digital print on Paper, 2021
Actual Situation_4944, 101.8 * 57.1(cm), Digital print on Paper, 2021

  공이 내게로 온다. 이와 동시에 상대 공격수도 전속력으로 달린다.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의 응원 소리는 턱 끝까지 찬 숨소리와 고함소리에 묻혀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공이 공격수의 귓볼을 스칠만큼 가까이에 있다. 나와 공격수는 동시에 발을 구른다. 공을 사이에 두고 우리 둘의 방향은 서로를 향해 있다. 있는 힘껏 공을 향해 목을 돌려 보지만 헤딩을 하려는 상대의 머리가 나의 가슴팍을 통과해 반대쪽으로 튀어나왔을 때,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넘어진 몸을 일으켜 세우니 경기장의 격정적인 환호와 절망의 울부짖음이 나의 피부로 들려왔다. 공격수와의 경합에서 진 것이다. 나는 더욱 열심히 뛰어야 한다. 가슴팍에서 느꼈던 찝찝함은 다시금 거친 호흡과 관중들의 뜨거운 마음에 의해 뒤덮인다.
  인간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려움 속에서 버팀목이 됐던 그것은 끔찍한 현실의 충격 앞에서 살얼음처럼 변한다. 세계관을 바꾸는 ‘사건’을 맞이하면 우리는 잠시 멈추고 이전의 잘못을 반성하며 방향을 전환한다. 그러나 위의 수비수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가 경합에서 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관중들의 탄식 때문일까. 이유는 그가 게임 속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수비수의 가슴팍을 뚫고 나간 공격수의 머리는 게임 속에서 분명한 에러상황이지만,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는 의도되고 묵인된다. 그것은 유저의 원활하고 극적인 체험을 위해, 모바일 게임의 효율적인 메모리 관리를 위해 허용된다. 이는 우리에게 특정한 기시감을 준다. 이런 상황을 단지 게임 속 상황이라 단정할 수 있는가.
  암호 화폐와 AI, 클라우드 서비스 등의 발전에 힘입어 현실과 가상의 가치가 역전되고 있다. 굳이 ‘메타버스’라는 거창한 말이 없어도 현실은 이미 가상세계의 모습과 닮아간다. 가상세계에 가치를 두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인간의 감각은 가상세계에 맞추어 재편된다. 몸이 결여된 가상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전기의 속도로 이루어지기에, 고정된 ‘나’는 사라지고 피상적인 감정이입과 이해들만 점멸등처럼 번쩍인다. 우리가 이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사건이 주는 영향력이 희미해지고 있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도 에러 상황이라며 무덤덤하게 지나친다. 어쩌면 우리는 피그말리온처럼, 그가 사랑하는 조각상 갈라테이아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화의 내용에 따라 에로스의 축복을 받아 생명을 얻은 그녀와 행복한 날들을 보낼지는 미지수다. 갈라테이아와 함께 춤을 추고 싶다면 수비수의 당위와 효율의 삶에서 벗어나 그녀가 하는 말들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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