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구 /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

세상을 움직이는 실리콘 ④ 국가핵심기술 지정과 기술 유출에 대한 고찰
손톱보다도 작은 반도체칩 때문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나날이 커지고 있는 반도체의 영향력은 단순히 산업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차원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반도체 경쟁에 대한 현주소를 이해하고, 미래기술의 핵심인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미래핵심 산업으로서 국가적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국가 경쟁력으로서의 반도체 ② 메모리 반도체의 오늘과 내일 ③ 미래기술의 핵심 비메모리 반도체 ④ 국가핵심기술 지정과 기술 유출에 대한 고찰

 

통합적 산업기술보호의 필요성

이일구 / 성신여대 융합보안공학과 교수

 
 

 

  작년 기준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 대비 약 3배 정도 성장했다. 한국의 경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58%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이 발간한 시스템반도체산업 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비메모리 반도체는 10년째 3% 점유율로 제자리걸음 중이다. 따라서 지금은 반도체 산업 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반도체 강국이 돼야 하는가. 이는 반도체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최첨단 반도체를 제조하는 것은 막대한 설비비용이 투자되지만, 한번 개발하게 되면 기술 개발 장벽이 높아 쉽게 경쟁자들이 진입할 수 없다. 또한 이 과정에서 수립된 노하우 역시 국가 경쟁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반도체는 단순 경쟁을 넘어 기술 주권 문제이며 산업 패권과 안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반도체 분야에서 산업보안의 필요성


  비메모리 반도체는 주문형 제작 시스템 반도체를 의미하며 메모리 반도체 대비 수익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사물인터넷·자율주행차 등 미래산업의 핵심 부품이 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고의 공정으로 만든 반도체가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과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고, 자체 칩을 개발하거나 자체 반도체 생태계 구축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시스템 반도체는 지식재산(Intellectual Property, 이하 IP) 기업이 팹리스(Fabless)를 통해 시스템을 설계한다. 이때 팹리스는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으로, 제조 설비를 뜻하는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과 리스(Less)를 조합해 만든 용어다. 업계에서는 주로 반도체 생산시설 없이 설계와 개발을 수행하는 회사를 말한다. 이어서 디자인하우스는 생산 공정에 맞춰 팹리스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의 설계도면에 따라 칩을 제조할 수 있는 파운드리용 설계도면으로 새롭게 디자인해준다. 다음 단계인 파운드리에서는 반도체 설계 데이터와 설계도면에 기반해 칩을 위탁 생산한다. 마지막으로 칩 검증 기업이 칩을 테스트하고 제품 제조사가 검증된 칩을 이용해 조립 및 제품화한 뒤 최종 판매단계로 이어진다.
  메모리 반도체는 한 회사에서 ▲초기 설계 ▲파운드리용 설계 ▲생산 ▲검증 ▲제품화를 모두 다 진행하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IP ▲팹리스 ▲파운드리 ▲검증 ▲조립 ▲제품화를 담당하는 기업들이 협업하는 구조다. 뿐만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 비교할 때, 구조가 복잡하고 종류가 다양하며 지식재산 가치가 높은 설계도에 바탕해 구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충분한 설비를 구비한 업체들 간 공생하는 환경이 구성될 수밖에 없고, 오랜 기간 연구개발한 기술들이 집적된 IP 중심 설계 및 최첨단 노하우를 기반으로 구축된 산업이기에 산업보안이 더욱더 필수적이다.


정부차원에서의 기술보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의원이 요청하고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우리나라 산업기술 112건이 해외로 유출됐으며 그 중 국가핵심기술은 35건에 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출 사례를 살펴보면 업종별로는 반도체가 15건에 해당됐으며, 국가핵심기술 중에도 반도체가 5건이 포함됐다. 반도체가 모든 산업의 글로벌 패권을 결정하는 핵심이 된 현시점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세계 최상위 수준으로 도약 및 축적된 국내 반도체 기술은 여러 경쟁국으로부터 호시탐탐 노려지고 있으므로 우리 기술을 지키는 노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부가 발표한 K-반도체 정책의 핵심인 ‘국가핵심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 법안’은 경쟁력 강화 및 지원 대책,기술 인력 보호대책, 지원 추진체계를 담고 있다.
  국가핵심기술에서의 유출 문제는 전 국가 산업 및 국민의 경제적 후생과 직결돼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에서는 2006년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래로 법률 개정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정보원을 중심으로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고 있으며, 산업기술보호위원회 및 산업분야 별 전문위원회를 통해 국가핵심기술 보유 판정, 국가핵심기술의 지정·변경·해제, 수출 신고 및 승인 등의 보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올해 고시 개정을 통해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자동차·철도 ▲철강 ▲조선 ▲원자력 ▲정보통신 ▲우주 ▲생명공학 ▲기계 ▲로봇의 12개 산업분야와 71개의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확장했고, 지정 고시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은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그뿐만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국가핵심기술을 보유 및 관리하는 기관이 지켜야 할 보호조치 사항과 세부 이행지침을 제시해 국가핵심기술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고시 제2021-12호에 기술된 세부 이행지침에는 ▲보호구역 설정 및 출입 허가 ▲국가핵심기술 보호등급 부여 및 보안관리규정 제정 ▲국가핵심기술 취급 전문인력 이직관리 ▲정보처리 과정 및 결과 자료 보호 ▲통신시설 및 통신수단 보안 ▲국가핵심기술 관리책임자 및 보안전담인력 지정 ▲국가핵심기술 취급 전문인력 구분 및 관리 ▲국가핵심기술 취급 전문인력 보안교육 ▲기술유출 사고 대응체계 구축 등이 있다.
  이러한 국가핵심기술 확대 지정과 산업기술보호지침 제정은 국가안보와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불법 산업기밀 유출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2개의 산업분야 중 가장 많은 개수의 기술을 포함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은 지속적인 개정을 통해 최첨단기술을 조항에 직접적으로 명시함으로써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최근 개정된 내용에서 첨단기술 유출방지를 위한 세심한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2021년도 국가핵심기술 지정 등에 관한 고시 개정에 따르면 메모리 기술의 범위를 확장했고, 이미지 센서와 시스템 반도체 패키징 기술로 보호 범위를 확장했다. 또한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관련 모든 적층 조립 및 검사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고, 5G 베이스밴드 모뎀 설계기술도 추가됐다. 이는 4차 산업 발전과 함께 고도화되고 있는 최첨단 반도체 설계 공정 소자 기술의 해외 기술유출을 선제적으로 방지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강력한 법적처벌이 필요하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른 산업기술은 국가핵심기술과 국방과학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을 포괄한다. 방위산업기술 보호법 제21조 제1항, 제7항에 따르면 “방위산업기술의 해외유출시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병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산업기술보호법 제26조 제1항에 근거한 산업기술관련 처벌은 “국가핵심기술의 해외유출의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15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이는 기존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 이하의 벌금’에서 수위를 강화한 조항이지만, 여전히 방위산업기술에 비해 처벌 강도가 약해서 보호 효과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살펴봤을 때 반도체가 가지는 위상과 잠재력에 비해 그 가치를 지켜 낼 현실적 방안은 취약한 상황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개발 10년, 유출 1초”라는 말이 있듯이, 개발만큼 중요한 것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오랜 시간 동안 피땀 흘려 연구개발한 기술을 한순간에 빼앗긴다면, 그리고 이로 인해 국가 산업에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면 그 피해는 우리 구성원 모두가 겪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보안 이슈를 다룰 시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방법의 일례로 국가안보와 산업기술보호를 연계하는 입법적 체계를 구축하고 국가핵심기술, 방위산업기술, 국방과학기술 보호관리 법제를 통합해 국가산업기술을 보호·육성·활용하는 것을 제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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