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인 /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문화_지속가능한 도시문화]

문화체육관광부의 연구에 따르면 ‘문화도시’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시민이 공감하고 함께 즐기는 그 도시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 현상 및 효과가 창출되어 발전과 성장을 지속하는 도시”를 의미한다. 과연 현재의 도시 사업은 정말로 시민이 도시의 고유한 ‘문화’를 공감하고 함께 즐길 수 있다 말할 수 있는가. 해당 기획을 통해 도시 사업에 대한 모습을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문화도시, 도시재생 ② 세계의 도시사업과 한국 ③ 우리의 과거와 현재 ④ 앞으로의 도시는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박찬인 / 충남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우리나라 인구의 대다수가 사는 도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거대해졌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상호소통과 협력을 기반으로 하던 우리의 전통적인 공동체 지역사회를 해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대도시를 넘어 전 국토에 이르도록 아파트 단지가 개발돼 오랫동안 행정적·경제적·문화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던 구도심은 신도심과 ‘단지’라는 공동주택지역에 모든 주도권을 넘겨주는 상황이 됐다. 원래의 주민은 이른바 마르크 오제(Marc Auge)의 “비장소”로 내몰리는 형국이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 20여 년간 정부가 선택한 전략은 경제 추동적인 재개발 사업이다. 하지만 개발주의 정책은 여전히 환경을 훼손하고 지역의 기존 정체성을 파괴하면서 이를 새롭게 재수립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구나 이러한 재개발 사업은 개별적인 문화적 감수성과 조건 모두 고려하지 못했다.

  도시의 문화정책과 사업은 바로 ‘건강한 삶’ ‘위엄 있는 삶’ ‘존중받는 삶’과 같은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면서 주거공간과 삶의 질을 높이며, 지역문화도 살리고, 지역의 공동 체도 회복해야 한다는 자성이 일어났다. 2017년부터 시작된 ‘도시재생뉴딜’은 기존의 관행적인 중앙주도(Top-Down)방식이 아니라 현 거주민의 참여확대와 역량강화를 통해 지역주도(Bottom-Up)로 낙후한 구도심지역을 되살려 보자는 개혁도시 개념이 핵심이다.

시민과 도시의 상생을 위한 제언

  도시재생정책이 지역 안으로 스며들어 주민들의 직접적인 삶의 질과 가치를 높이는 촉매가 되려면 그들과의 소통과 공유가 최우선적이라 할 수 있겠다.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창한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도 도시에 대한 권리의 선행조건 중 하나가 시민 참여라고 갈파했다. 즉 ▲지방자치 당국 ▲도시재생 전문가 ▲시민활동가 ▲시민 등 모두가 도시재생이 가는 길 어디에 핵심가치를 부여하고 사업을 기획 및 실천할 것인지 조율하며 사업을 도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시민권적 문화복지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도시재생지역을 지역문화의 중심으로 만드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역공동체 문화를 활성화한다든지, 마을 혹은 동네의 일상공간을 문화공간으로 바꿔 나간다든지, 마을이나 동네 중심의 다원적인 문화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마을미디어’ 사업이 그중 하나다. 미디어의 중심에 공동체를 자리매김하는 이사업은 다양한 매체의 확산과 스마트폰 등의 활용에 발맞춰 많은 거주민을 기자·리포터·크 리에이터로 만들면서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이와 같은 ▲기존 미디어의 변화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역의 공동 관심사와 애향심 증폭 ▲주민의 화합과 참여 유도 ▲지역의제 발굴 ▲문화다양성 확산 등 선순환적 기능이 입증되고 있다.

  둘째, 지역의 가치를 발굴하고 공유 및 확산해 문화적으로 재생해야 한다. 이것은 부수고 뒤엎고 새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살리는 도시재생을 의미한다. “변화의 순간을 경험한 모든 나라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역사와 전통에 따라 지난 과거를 새롭게 보고자 한다”라는 피에르 노라(Pierre Nora)의 《기억의 장소》(1984~1992, 7권)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 인간은 기억을 먹고 산다. 굳이 역사라는 거창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그 동네, 그 마을, 그 지역의 내력, 혹은 기억을 되살리면 주민들의 실제 삶이 활력을 얻게 되고, 아울러 문화적 도시재생을 활성화하는 기반도 마련될 것이다.

  일례로 2012년 서울시에서 마을공동체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한 이후 마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역사와 문화, 거주민의 기억과 흔적 등에 대한 마을 단위 아카이브 구축이 이뤄지고 있다. 그와 함께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로 ‘마을박물관’이 만들어지고 구성원들의 만남과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마을박물관은 단지 박물관의 기능뿐만 아니라 마을문화 보존을 통한 지역정체성 확립의 기능, 주민들의 만남과 소통공간 기능, 지역 홍보와 문화향수 촉진을 통한 문화권 보장 등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 마을박물관’, 성북구 ‘장수마을박물관’, 부산 수영구 ‘수영성마을박물관’ 등 전국에 산재한 마을박물관은 이미 천 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문화적 특화를 고려하면서 균형 있는 도시발전, 즉 지역 격차를 해소하는 도시발 전을 인양해야 할 것이다. 곳곳에 특화된 소규모의 문화지역과 권역별 작은 문화벨트를 조성하며, 문화 레저망도 촘촘하게 시도해 봄 직하다. 전국적으로 많아지는 작은도서관 혹은 마을도서관의 건립과 확산, 이에 따르는 책 읽기 운동의 확대, 독립출판과 독립서점 지원이 대안으로 작용될 수 있다. 이런 사업은 자연스레 거대한 상업논리에 매몰돼 소외되는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발전시키며 시민 문화향유 수준을 제고하고, 영세 작가나 창작자를 지원해 지역공동체의 상생으로 나아갈 것이다. 서울 용산의 ‘고요서사’, 연희 로의 ‘유어마인드’, 제주의 ‘소심한책방’과 같은 독립서점들, 부천의 ‘북페스티벌’이나 인천의 문학 페스티벌 ‘신바람, 동네책방’ 등이 좋은 본보기이다.

  넷째, 위와 같은 사업이 이뤄진다면 자연스럽게 창조적 지역관광이 활성화될 것이다. 작은 문화거점이 관광거점의 역할을 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체험형 관광활동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물론 모든 도시나 마을이 관광객을 불러들일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스토리텔링에 열을 올릴 까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각 도시의 형성 과정과 내력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장소가 있기도 하며 근대에 형성된 도시도 있다. 바닷가의 도시가 있고 산속의 도시가 있다. 이 다양한 지역에 어떻게 천편일률적인 정책이나 전략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지역문화 중심의 도시재생

  “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라는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의 말을 상기하면서 우리는 자문한다. 과연 도시는 무엇인가. 인간은 왜 도시를 만드는가. 인간 에게 도시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세월의 나이테와 더불어 인간은 공유공간으로서 도시라는 생활의 터전에 끊임없이 각기 다른 욕망을 투영하면서 자연을 개척하고 극복하려 노력해 왔다. 이러한 과정 속 이뤄낸 성취로, 삶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시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무늬를 새기면서, 그야말로 여러 도시들을 탄생·성장시키기도 했고, 쇠락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는 도시를 개척해 온 역사라 볼 수 있다. 이는 곧 인류 문명의 역사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인 우리에게 도시는, 소유개념이나 자본주의의 과도한 폭거로 인해 단순한 거주의 대상이거나 투자의 대상이 되곤 한다. 요즈음 신도심을 중심으로 급격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 지역적인 학군 간 편차, 지역 간 빈부격차 등 대도시의 병폐가 창궐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도시민은 주민과 관계하며 함께 어울려 살기보다는 도시의 익명성 속에서 개인주의적인 삶을 영유하기 급급한 모습 또한 살펴볼 수 있다. 이미 백이십 년 전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 경고한 것처럼 대도시를 휘젓는 돈과 지고의 자본주의는 가치 창조의 가면을 쓰고 오히려 가치를 왜곡하며 착취해 왔다. 우리는 가격이 곧 가치라는 최면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소수의 거주자만 지역 사회에 관여했고, 대다수 주민은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어 ‘주민자치’나 ‘생활권 단위의 공동체 문화’ 형성 등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제 지역 중심의 삶이 다가오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문화 환경을 조성하고 누구나 쉽게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느 지역에서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침 지역 단위의 공동체적 삶과 돌봄의 네트워크 형성 등 여러 요인으로 서로의 관계 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지역을 기반으로 살아가기’는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됐다. ▲지역문화진흥 ▲생활문화육성 ▲지역문화진흥 기반 체계 구축 ▲문화도시 형성 ▲문화 격차 해소 등 지역별로 특색 있는 고유문화의 발전, 주민의 삶의 질 개선 등을 추구하려는 커다란 전환을 위해서 지속적인 노력과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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