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림 /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게임과 도반

서세림 /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그야말로 〈오징어 게임〉(2021) 열풍이다. 12년 전 난해하고 기괴하다는 이유로 반려됐다던 시나리오는 2021년 현재 암울한 현실을 닮은 의미 있는 드라마로 만들어져 환영받고 있다.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1억 1천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는 데에 불과 17일밖에 걸리지 않았고, 비영어권 시리즈물 중 처음으로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제는 〈오징어 게임〉 자체가 하나의 대중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CNN 뉴스 보도를 보는 것이 점점 익숙하게 느껴지고 있을 정도이다.

  이 흥미로운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는 또한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된다. 나날이 힘을 더해가는 한류 콘텐츠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치열한 경쟁 이야기를 친숙하게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우리 현실에 대한 씁쓸한 마음도 생겨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단 한 명의 승자 외에는 모두가 패배해야만 한다는 룰을, 나 외에는 아무도 살려둬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곱씹어야 하는 것이 진정 현실이라면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아직 남아 있을 것이다. 징검다리 게임의 승자는 결국 누구였던가. 아슬아슬한 다리 위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실은 승자 없는 루저들의 이야기라는 감독의 인터뷰를 상기해 볼 때, 아마도 우리는 사람의 도움 없이 사람 혼자 설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그럴 것이다. 혼자서 끙끙거린 많은 밤들을 지나고 난 후, 다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으리라.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질 때, 서로를 들여다봐 주고 조금만 시간을 나눠 줄 수 있는 정도의 여유만 있더라도 훨씬 나아질 것이다. 내가 아닌 당신들을 계속해서 죽이고 살아남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또 그 이후 삶을 이어가게 될 모든 순간이 숨 막히는 고통이 아니겠는가.

  벌써 여러 해 전, 대학원 답사를 통해 들렀던 선운사의 아름다운 경내를 걸으며 우리는 모두 ‘도반(道伴)’, 함께 걸어가는 벗이라고 이야기하던 선생님의 나직한 목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한때는 책을 사 모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나고 보니 남는 것은 사람이었다는 어느 선배의 이야기도 귀에 남는다.

  결국 우리의 귀를 울리는 이야기와 그 목소리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종종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떤 황홀한 게임이나 규칙보다도, 내 곁의 그 사람을 통해 전해져오는 목소리들이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다. 학문에 대한 열정도 게임이나 승부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지점에 놓여 있다. 대학원에서 우리를 만족시켜 줄 진정한 재미도 역시 단지 승패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도 답을 모르는 미래를 앞에 두고 아무도 믿지 말고 또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로 외로운 유리 다리를 건너는 것이 삶이라고, 우리 학문의 길도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해야 한다면 너무 서글퍼진다. 가끔, 아니 자주 누군가와 같이 걷고 싶다. 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면 벌을 받으라고 다그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괜찮으니까 다시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격려해주고 싶다. 서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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