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은 / 문화평론가

한국 대중음악의 허와 실 ① 연습생들의 현실

최근 몇 년 사이 K-POP의 성장과 해외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그중에서도 K-POP은 한류의 중심적인 콘텐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음악 시장이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일 터이다. 이러한 ‘K-POP’의 모습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돌아보며, 다음 세대에 대한 제언을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케이팝의 위상과 의의 ② 연습생들의 현실 ③ 한류에 대한 우려 ④ 음악과 음학, 그 사이에서


케이팝에 깃든 산업적·문화적 명암

윤광은 / 문화평론가

 

 
 

  현재 케이팝의 위상과 매출은 상당 부분 글로벌 시장에서 나온다. 케이팝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아이콘이며, 국내에서도 국가적 자부심을 재생산한다. 방탄소년단(이하 BTS)이 큰 성공을 거두며 아시아 시장이 서구로 확장된 후 이는 열광으로 변했다. 그러나 산업이 글로벌해진 만큼 이면의 구조적 리스크와 그림자도 진하게 드리워졌다.

 

동아시아에 편중된 매출 기반

 

  팬데믹 이후 케이팝 산업의 전체 매출액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다. 다만, 매출 비중이 큰 오프라인 콘서트 관련 수익을 음반 매출이 대신하는 상황이고 수출액 역시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해외 의존도가 더 커진 상황이다.

  작년 12월 17일 관세청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11월까지 미국 시장의 매출액은 성장세지만 아직까지는 해외 음반류 수출액의 14% 정도에 그칠 뿐이다. 이마저도 동기간 현지에서 연간 음반 판매량 2위를 차지한 BTS의 지분이 압도적이다. 북미 시장은 세계 문화산업의 중심지이고 케이팝에 글로벌 문화의 헤게모니를 주고 있지만, 아직은 실질적 대안으로 성립하지 못한다. 일본 시장은 음반 수출액의 50% 가량을 점유하고 현지 활동과 투어 공연, 연관 상품 판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몇 년 전부터 중국 팬덤의 앨범 공동구매(이하 공구)도 급격히 늘어났고, 이 현상이 음반 판매 인플레이션을 견인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미국 음반 수출액이 중국 음반 수출액을 추월했다고 보도한 바 있지만, 중국 팬덤이 공구를 진행하는 온라인 스토어 ‘케이타운 포유(Ktown4u)’의 판매량이 국내 앨범 판매량으로 집계된다는 사실을 누락한 오류였을 뿐이다. 이렇듯 산업적 측면에서 케이팝의 베이스캠프는 여전히 동아시아다.

  문제는 동아시아 정세의 불안정함이다. 중국은 권위주의 정부의 규제가 민간 부문, 심지어 아이돌 팬덤 문화까지 통제한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조치로 단행된 ‘한한령’ 이후 케이팝 아이돌은 중국 현지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올해 8월에는 중국 당국이 ‘무질서한 팬덤 관리 강화 통지’를 발표했다. 현재까지 이 때문에 중국에서 앨범 공구가 중단되거나 물량이 줄어들진 않았다. 하지만 지난 9월 BTS 지민을 포함해 한국 연예인 팬클럽 계정 21개가 한시적으로 정지당했고, 차후 앨범 공구에도 타격이 가해질 가능성이 잔존한다.

  더 큰 리스크가 잠재하는 곳은 일본 시장이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현지에서 한류가 역풍을 맞아 2017년까지 케이팝 매출액이 큰 폭으로 줄어든 전례가 있다. 재작년에도 한국 대법원의 일본 제철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오며 외교 및 무역 분쟁이 일어났다. 이는 정치와 문화가 밀접하게 연관됐음을 드러낸다. 현재 한국 여당과 야당은 대일 외교 노선에 차이가 있고, 차기 대선에서 어떤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한일관계도 요동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 이후 현지 활동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길목에 암초가 누워 있는 셈이다.

 

문화적 전유 논란의 핵심

 

  정치문화적 측면에서도 명암이 있다. 최근 몇 년 간 케이팝의 ‘문화적 전유’가 이슈가 됐다. 문화적 전유는 특정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의 문화적 요소나 정체성을 전용(轉用)하는 것을 뜻한다. 마마무의 ‘블랙 페이스’, 블랙핑크 뮤직비디오의 힌두교 신상 소품, 오마이걸 유아 뮤직비디오의 북아메리카 원주민 이미지 차용 등이 논란이 된 사례들이다.

  문화적 전유 자체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로컬 장르로 시작된 문화가 글로벌 장르가 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시행착오이며, 대부분의 사건은 단순한 무지에서 일어났다. 즉, 학습을 하고 교정을 하면 될 일이다. 해외 시장 의존성이 큰 기획사들은 비판이 나오면 대부분 사과하고 조치를 취한다. 진짜 문제는 개별 사례가 아니라 케이팝 콘텐츠가 창작되는 원산지이자, 사회적 차원에서 해외 여론과 소통을 하는 국내의 문화적·윤리적 관점과 경향성에 있다. 문화적 전유뿐 아니라 케이팝에 관해 윤리적·정치적인 글로벌 이슈가 발생하면 국내 팬덤과 여론은 비판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작년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벌어지며 미국 현지에서 케이팝 아티스트들에게 연대를 요청할 때, 국내에서는 그에 대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던 사례가 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보수적 경향과 케이팝을 둘러싼 국수주의, 나아가 케이팝의 정체성에 깃든 딜레마와 부정교합에서 빚어진다. 여론 차원에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으로 대표되는 마이너리티 이슈에 거부감이 존재하고 해외 여론의 비판 역시 그 연장선에서 받아들여진다. 또한 국제 사회에서 강대국의 입지를 점한 역사가 없기에 자국의 행위 주체가 타 문화권에 어떤 종류의 침해를 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한편 개별 아티스트나 콘텐츠에 대한 비판을 케이팝 자체, 심지어는 한국에 대한 비판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BTS의 성공 이후 케이팝은 다른 아시아권 문화산업과 차별화된 글로벌 메인스트림처럼 호명됐고, 거기에 국가적 자의식이 의탁돼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케이팝을 곧 국가적 위신으로 여기기에 비판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산업에 깃든 명암을 성찰하려 해도 외면되거나 기각되는 것이다.

  케이팝은 미국에서 이민자, 소수 인종 등 마이너리티가 향유하며 팬덤이 형성돼 왔지만, 한국에서는 국가와 민족 같은 메이저 집단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소비된다. 산업이 글로벌하게 확장될수록 국내에선 케이팝이 국수주의적 이념으로 변환돼 배타적으로 재정의되는 구조다. 로컬 산업의 성질과 글로벌 산업의 성질이 공존하는 동시에 서로 밀어내는 지점, 이런 엇물림이 케이팝이 울려 퍼지는 무대 아래 깔린 균열이다.

  이는 윤리적 차원을 넘어 산업의 기반까지 침식할 수 있는 문제 요소다. 최근 국내에서 반중·반일 여론이 고조되며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중국·일본 시장에 커넥션을 확장하는 데 견제와 압력을 받고 있다. 한편으론 미국이란 신대륙이 나타났고 이제 아시아 시장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투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낙관론마저 기사로 발행된다. 이런 동향은 케이팝에 걸린 국가적 자부심 및 인접 국가들에 대한 경쟁의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케이팝의 문화적 영향력은 충분히 커졌고, 산업적 기반은 더 다져야 할 빈틈이 있다. 이런 양면을 고르게 직시하고 케이팝을 문화나 산업 자체로서 좀 더 건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편이 문화를 매개로 세계인들과 평등하게 교류하는 데도, 산업 저변이 더 발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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