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선시집 영역본 발간

 

  한국 모더니즘 시 운동을 주도한 박인환 시인의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된 유일한 시집인 『박인환 선시집』의 영역본 『Park Inhwan, The Collected Poems』(2021)가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됐다. 이번 작업을 통해 독자들은 해방기 및 한국전쟁 시대 사람들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박인환 시인의 시를 영어로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박인환문학관 박인환 전집 발간 프로젝트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 강원도에서 태어나 1956년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해방기의 정치적인 혼란과 한국전쟁의 참상에 좌절하지 않고 모더니즘 시 운동을 주도하는 등 문단의 발전을 위해 앞장섰다.

  『박인환 선시집』은 1955년 10월 15일 산호장 출판사에서 처음 간행됐으며, 당시 제목을 『검은 준열의 시대』로 정하려다가 스펜더(Stephen Spender)의 『선시집』을 따라 바꾸게 됐다고 전해진다. 이는 스펜더가 박인환의 작품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드러내는 단편적인 일례다. 1909년 영국에서 태어나 1995년까지 활동한 스펜더는 ‘시를 쓴다는 것’이 순수한 개인의 문제였던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하며, 시의 사회적 효용성을 주장했다. 이와 같이 불안한 시대를 배경으로 사회참여시를 쓰고자 했던 스펜더의 모습은 박인환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번 영역본 재발간 프로젝트는 시인의 서거 56주기였던 지난 2012년 개관한 박인환문학관에서 ▲인제군 ▲(재)인제군문화재단 ▲박인환시인기념사업추진위원회 ▲경향신문 공동주관으로 시와 학술 부문의 ‘박인환상’을 제정하고, 이와 연계해 박인환 전집 출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문학관을 방문하는 관객들에게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박인환의 시를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외국인 독자들에게도 박인환의 시를 소개하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작업이다.

 

여국현 강사와의 인터뷰

 

  영역 작업에 참여한 본교 여국현 강사는 시인이자 번역가이다. 본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저서 『현대 미국소설의 이해』와 시집 『새벽에 깨어』, 『우리 생의 어느 때가 되면』 번역서로 『하이퍼텍스트 2.0』, 『크리스마스의 캐럴』, 『종소리』 등이 있다. 특히 초기 페미니스트 소설가로 유명한 케이트 쇼팽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케이트 쇼팽의 전작을 번역 중인 그는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 『그녀의 편지』 등 40여편의 단편을 번역, 소개했다.

  여국현 강사는 이번 박인환 시 영역 프로젝트가 박인환 문학관 주도 하에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박인환 전집 발간 사업의 일환이었지만, 개인적으로도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박인환 시인이 “목마와 숙녀(1955)” “세월이 가면(1956)” 같은 작품을 통해 흔히 모더니스트 시인 혹은 모던보이·댄디보이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모던’뿐 아니라 그의 시에 보다 깊고 예리한 현실인식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6·25 전쟁을 겪는 조국의 암담한 현실에 대한 슬픔이나 분노, 전쟁 중에 잃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식민지배를 경험한 다른 나라들과의 유대감, 그리고 미국에서 고국을 그리며 경험하는 조국애 등은 그의 시 세계가 당대의 현실에 얼마나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어떤 문학작품이라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는 상당한 부담이 되기도 된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작업”이라며 “우리 작품을 외국어로 소개하는 일에는 부담과 어려움에 더해 어떤 책임감과 함께 영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박인환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하게 될 영미권 독자들에게 박인환이라는 시인과 그의 시들이 잘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박인환 시인의 시를 영어로 옮기면서 순간순간 역자의 부족함을 느꼈기에, 결과물에 대한 조심스러운 두려움이 들지만 기쁨과 함께 보람도 느꼈다”는 그는 “박인환 시인의 시들을 꼼꼼하게 읽을 수 있었던 즐거움과 박인환 시인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문을 열었다는 뿌듯함”이 컸다고 했다. 역자가 경험했던 기쁨과 보람이 이 시를 읽을 독자들에게도 전해지고 우리 시를 외국어로 소개하는 적극적인 시도가 더욱 많아지기를 함께 기대한다.

김한주 편집위원 | auchetec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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