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기 / 사단법인 시니어벤처협회 수석부회장

 세상을 움직이는 실리콘 ② 메모리 반도체의 오늘과 내일

손톱보다도 작은 반도체칩 때문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나날이 커지고 있는 반도체의 영향력은 단순히 산업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차원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반도체 경쟁에 대한 현주소를 이해하고, 미래기술의 핵심인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가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미래핵심 산업으로서 국가적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국가 경쟁력으로서의 반도체 ② 메모리 반도체의 오늘과 내일 ③ 미래기술의 핵심 비메모리 반도체 ④ 국가핵심기술 지정과 기술 유출에 대한 고찰

 

메모리 반도체의 오늘과 내일

 

홍재기 / 사단법인 시니어벤처협회 수석부회장

 

 
 

  '산업의 쌀' 반도체가 핵심 안보자원으로 부상하면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반도체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쟁의 포화가 난무하는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1위 생산국인 우리나라도 깊숙이 참전 중이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지만 중장기적 준비를 위해선 앞으로 1~2년의 행보가 중요하다. 자칫 반도체 전쟁의 전략전술이 잘못되면 지금까지 쌓아놓은 아성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이룩한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70%라는 압도적 점유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국가안보적 차원에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현재 대한민국의 메모리 반도체산업은 일본, 대만,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산업이 됐다. 이런 상황 속 메모리 반도체의 현재 상황과 미래 전망을 통해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효자산업


  반도체는 대한민국이 디지털 선도 국가로 올라서게 한 1등 공신이다. 제조업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자동차, 선박, 가전 등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메모리 반도체는 대한민국을 선진국 대열로 끌어올린 주역이라 할 수 있다. 반도체는 단일품목으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비중 20%를 차지하여 6년 연속 수출 1등을 기록하고 있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4년 256메가바이트 D램을 세계 최초 개발한 이후 27년간 부동의 1위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지배력을 쥐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는 현재에도 두 자릿수 성장이 진행 중인 산업이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지난 8월 올해 전 세계시장 규모를 5천5백9억 달러, 메모리 반도체는 천6백11억 달러로 전망했고, 내년에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두 자리 이상 성장할 것으로 바라봤다.
  이런 이유로 주요 경쟁국들은 자국 반도체 공급망 유지와 거점 확보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 5년간 527억 달러를 투자하고 중국도 2025년까지 170조 원의 투자를 검토 중이다. 이에 발맞춰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510조 원+α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와 같이 반도체산업 주도권 다툼이 심화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산업의 중요성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의 주역인 자율주행차, AI, 로봇 등이 현실화되면서 그 존재감이 더욱 드러났다. 반도체 없이는 어떤 전자제품도 만들 수 없어짐에 따라 전 산업에 걸쳐 반도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자동차 산업이 있다. 자동차 핵심 부품이라고 할 수 있는 시스템 반도체의 공급 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자동차 업계에서는 반도체의 수량에 맞춰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사실 자동차가 전자산업에 종속될 가능성은 2012년부터 살펴볼 수 있었다. 그해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인 소비자가전쇼(이하 CES)에 자동차 전문전시관이 최초로 마련됐고, 작년 CES는자율주행차, 플라잉카 등 미래 자동차 기술의 공개로 주목받으면서 ‘라스베가스 모터쇼’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반도체는 한국의 최대 수출품인 동시에 최대 수입품이 됐다. CPU나 자동차에 필요한 ‘시스템 반도체’는 우리가 앞서지 못하는 분야이기에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확장성이 큰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기술·시장·생태계라는 3대 핵심 경쟁요인이 고려된다. 이에 대한 최적의 해결방안은 우리의 강점인 메모리 반도체 성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어테크놀로지 선제적 투자

 

  낸드플래시는 상당히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기술이다. 저장공간을 아파트처럼 쌓아 올려서 저장하는 이 기법은 무려 176겹 적층이 가능할 정도로 고도화됐다.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에서도 DDR5, LPDDR5 램 시대를 새로이 열어가고 있으며, 지능형 메모리 반도체, 차세대 낸드플래시, 2나노 기술이 속속 메모리의 성능을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디지털 초강국으로 자동차, 가전, 5G통신 등의 초격차 기술의 시험대를 가지고 있다. 어느 경쟁국보다 비옥한 텃밭을 가지고 있어 글로벌 경쟁력에 있어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반도체산업이 재편되면서 전체적으로 시장에 교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일본의 반도체, 핀란드 노키아 휴대폰이 시장에서 도태하게 된 이유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메모리 반도체의 선제적 기술투자가 왜 필요한지를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일본은 1980년 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 50.3%의 정점을 찍었던 바 있다. 하지만 재작년 10%까지 추락한 후 회복하지 못하면서 결국 글로벌 경쟁력을 잃었다. 핀란드 노키아 또한 2008년에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점유율 41%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장기집권 과정에서 조직 개편과 기술 투자를 게을리했고, 결국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이 두 회사의 흥망성쇠 역사는 정보통신 분야의 급속한 기술변화 속도, 그리고 이에 발맞춰야 하는 투자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또한 이런 경쟁 속에서 초격차 신분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되새기게 하며, 나아가 환상에 젖어 현실을 바라보지 못했을 때 패망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보여 주는 사례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현시점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지배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꼽아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 기술’을 지켜내야 한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 발전과 코로나로 인한 데이터 처리 수요 폭증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최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기술로 ‘저장용량과 대역폭’, ‘저전력’에 대한 격차를 높이는 미세공정 외에 친환경과 연결성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기업으로서는 상당한 비용부담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후 점진적인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해 ‘메모리’, ‘시스템’ 투 트랙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 기술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산업 및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소비시장’을 점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70%를 공급하는 국가로서 대표적인 소비국가인 미국과 중국 간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 두 나라 반도체 전략에 진영논리보다는 경제적 논리로 대응해 중국 매출 비중은 잃지 않으면서도 기술격차를 유지해야 하고, 동시에 판매물량과 가격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 물론 기술 및 인재 유출 방지도 중요하다. 미국은 그동안 부가가치가 높은 시스템 반도체 중심으로 투자해 오다 최근 차세대 메모리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또한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5.9%에 불과한 자국 내 생산비율을 2025년까지 자급률을 70% 수준으로 올린다는 ‘반도체 굴기’ 전략을 세웠다. 이는 자국 기술의 한계를 알고 메모리 반도체 사업 쪽으로 방향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셋째. 전 세계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코로나로 전 세계 공급망의 취약점이 드러났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요인으로 인해 부품에서 최종 제품에 이르기까지의 공급망이 중단될 수 있음을 각인해야 한다. 따라서 해외 공장의 생산 차질에 대비하는 등 공급망 리스크 관리시스템이 고도화돼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미·중간 반도체산업 디커플링이 확대되면서 제3국의 소재나 장비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 불화수소와 같은 핵심소재 수출규제와 같은 정치적 요인도 상존하는 점이 위험요소이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반도체 전쟁의 위기를 이용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축적돼 온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최첨단 기술력과 높은 시장점유율 등 우리나라의 장점을 극대화할 최선의 방안을 기업과 정부 간 긴밀한 협력으로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 글로벌 산업계가 처한 위기를 오히려 경쟁국과의 격차를 벌릴 기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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