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탈식민주의 근대 국제관계론

이혜정 /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이경아의 〈식민지전쟁과 근대 국제관계〉는 아이티 혁명을 역사적 사례로 삼고 있다. 아이티에서는 지난 7월 대통령이 암살됐고, 도쿄 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하며 한 방송사가 이를 언급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이티는 탈식민 독립 혁명의 역사적 선구와 제3세계 ‘후진국’의 대명사라는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아이티는 서구의 노예제,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에 무력으로 맞서 독립을 쟁취한 나라이다. 아이티 혁명(1791~1804)의 역사적 성취는 흔히 빈곤과 정치적 불안, 지진과 허리케인 피해 등 오늘날 아이티의 현실에 가려진다. 독립을 승인하는 대가로 구 식민제국 프랑스가 1825년 막대한 배상금을 부과한 이래 아이티는 지속적으로 서구의 부채에 시달렸다. 아이티 혁명의 와중에 루이지애나를 매입하며 영토를 배로 늘린 행운을 누린 미국은 노예제를 둘러싼 내전이 시작된 이후 1862년에야 아이티를 승인했고, 윌슨 대통령은 1915년 해병대를 동원해 아이티 중앙은행의 금괴를 미국으로 옮기고 아이티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지배를 감행하기도 했다. 소위 서구 ‘선진국들’의 지속적인 정치·경제·군사적 개입이 ‘후진국’ 아이티를 구속해 온 것인데, 이 점은 더더욱 잊혀 왔다.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아이티와 우크라이나 등 관련 ‘방송사고’는 사실 ‘선진국’ 진입을 자부하는 한국의 인류와 세계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어떤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한국의 지성계 혹은 학계 전반, 더 분명하게 따지자면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아이티 혁명에 대한 국내외의 다양한 연구들이 존재함에도 아이티 혁명의 의미에 대해서 천착하지 못한 한국 국제정치학계에 있다.

  이러한 지식사회학적·학제적 맥락에서 보면, 아이티 혁명을 사례로 한 이경아의 〈식민지전쟁과 근대 국제관계〉는 적어도 소재의 측면에서는 한국 국제정치학계의 획기적인 시도이다. 국제정치학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흔히 ‘작은 전쟁’으로 간과되는 식민지전쟁이 근대 국제관계를 형성했다는 주장도 그렇다. 전쟁의 본질을 권력의 유지와 강화를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과 관련된 폭력으로 보면, 식민지의 영토를 획득하고 식민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자원을 추출하기 위한 폭력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국제관계의 정상 상태이다. ‘식민지전쟁’을 ‘작은 전쟁’으로 만드는 것은 서유럽의 30년 종교전쟁 이후 영토주권을 국제체제의 기반으로 제도화한 것으로 이해되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다.

  근대 국제체제의 원형으로서 베스트팔렌 모델은 베버의 영토 내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근대 국가에 대한 정의 및 프랑스혁명 이후 민족주의와 국민군, 강대국협조체제가 형성됐다는 서구 중심적 역사적 해석과 결합한다. 그 결과는 영토주권을 기준으로 대내적으로는 주권국가의 정당한 물리적 폭력의 독점에 따라 경찰과 군대가 분화되고 대외적으로는 영토주권 민족국가들 간의 주권의 상호 인정과 ‘전쟁’이 발생하고 서구 강대국들의 ‘대전쟁’과 세력균형, 외교에 의해 ‘일반’ 국제제체가 운영된다는 국제정치학계의 ‘정설’이다.

  이경아의 〈식민지전쟁과 근대 국제관계〉는 근대 국제관계의 기원을 17세기 중반의 베스트팔렌조약이 아닌 18~19세기 전환기의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서구 제국주의의 지구적 확산으로 보는 ‘19세기 지구 변환론’의 수정주의적 맥락을 따르면서도, 전쟁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시각으로 근대 국제관계의 비유럽적이고 주권 평등이 아니라 인종적 위계를 규범화하는 ‘위선적’ 기원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경아의 〈식민지전쟁과 근대 국제관계〉는 두 가지 차원에서 문제적이다. 학계의 기존 정설에 도전하는 야심찬 주장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고, 그 주장이 충분히 체계적으로 논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사례가 아이티 혁명 하나뿐인데다가 그나마도 프랑스와 아이티 문헌 등을 직접 조사한 것이 아니라, 대서양사 혹은 지구사의 맥락에서 노예제에 주목하는 아이티 혁명에 대한 사학계의 연구들과 기존의 전통적인 유럽외교사와 근대 국가론 등 영문 이차문헌들을 짜깁기하다 보니, 일관된 시점에서 가독성 있는 아이티 혁명·독립 전쟁에 대한 내러티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언어적 제약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근대성의 기준이 민족국가인지 제국인지, 인종인지 등 이차문헌이 딛고 있는 상충되는 이론적·역사적 전제들을 이경아의 독자적인 ‘근대’와 ‘국제관계’에 대한 시각으로 종합하는 데 실패한 데서 연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의 책임에서 이경아의 석·박사 논문 지도 교수인 필자, 더 넓게는 한국 국제정치학계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박사논문의 기준이 절대적인 완성도가 아니고 기존 학계의 연구 지평 혹은 한계 내에서 독자적인 연구자로서 미래에 일가를 이룰 잠재력이라고 본다면, 이경아의 〈식민지전쟁과 근대 국제관계〉는 충분히 의미 있는 문제적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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