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1.10.5 화 23:30
기획
[중앙아카데미아] 식민지-제국전쟁과 근대 국제정치이경아 / 정치국제학과 박사
김한주 편집위원  |  auchetec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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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호]
승인 2021.10.04  22: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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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전쟁과 근대 국제관계 : 불균등결합발전이론의 관점에서 본 아이티 혁명·독립전쟁』 이경아 著 (2021, 정치국제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정치국제학과 이경아의 박사 논문 『식민지 전쟁과 근대 국제관계 : 불균등결합발전이론의 관점에서 본 아이티 혁명·독립전쟁』을 통해 탈식민주의적 관점으로 기존의 근대 국제정치 형성에서 주요 요소로 고려되지 않은 '식민지-제국전쟁'을 주목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식민지-제국전쟁과 근대 국제정치

 

이경아 / 정치국제학과 박사

  국제정치학은 유럽 역사에 기초하기에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을 견집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지난 몇십 년간 국제정치학계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고 보편적인 국제정치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방안을 모색했다. 특히 관련 연구는 지구적 차원에서 보편적인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근대 국제정치의 탄생과 형성과정에 대한 재이론화가 진행됐던 것을 주목해 볼 수 있다. 근대 국제정치이론은 해당 학문의 토대이며, 오늘날의 국제정치는 지난날의 역사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지구적 근대 국제정치이론 재정립을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근대 국제정치 형성의 주요 동인인 ‘전쟁’을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이에 아이티혁명·독립전쟁이라는 역사적 사례 분석을 통해 식민지-제국전쟁이 근대국가와 근대 국제체제의 형성에 주요하게 작용했음을 주장한다.

 

탈식민주의 시각에서의 전쟁

 

  일반적으로 근대로의 변환을 추동한 원인으로 크게 자본주의 경제와 전쟁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지목된다. 전자의 경우 자본주의 생산양식·구조·작동원리의 등장으로 근대 국제정치가 형성됐다고 설명하며, 후자는 전쟁의 빈발과 심화로부터 근대로의 변환이 일어났다고 해석한다. 이 외에도 혁명·사회적 이념·제도의 변화를 이유로 꼽기도 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요인 속에서 전쟁은 국제정치의 주된 변수로서 기능한다. 근본적인 변환을 일으키고 시대를 구획하며, 체제를 전환하는 구조가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다. 때문에 국제정치의 근대 탄생과 형성과정의 여러 동인 중에서도 전쟁은 면밀히 분석될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제정치에서 근대가 전쟁으로부터 형성됐다고 해석하는 이론은 ‘단위’와 ‘체제’라는 두 개념으로 분류된다. 단위 중심적 이론은 국제정치의 근대탄생과 형성과정을 근대국가의 등장으로부터 설명한다. 반면 체제 중심적 이론은 근대 국제체제의 형성으로부터 근대로의 변환이 일어났음을 밝히고 있다.

  단위 중심적 이론의 경우 미국의 역사사회학자 찰스 틸리의 이론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틸리는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한다”라는 명쾌한 명제로 전쟁과 근대 국제정치형성 간의 상관관계를 역설했다. 이는 유럽의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강력한 군사력을 요구하게 됐고, 이로 인해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징병과 징수와 징발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상비군·조세·관료 등의 제도와 조직으로 이뤄진 근대국가가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체제 중심적 이론의 경우 국제체제에 대한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이론과 같은 주류 이론과 역사 연구 대부분이 해당된다. 근대 국제체제에 대한 주류 이론과 역사적 연구는 강대국들이 전쟁으로 무너진 기존의 제도와 질서를 재편해 체제적 격변이 일어나면서 근대 국제체제가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이론은 전쟁을 대전쟁으로 한정했다. 즉, 기존의 연구는 정량적 및 정성적 연구 방법을 통해 전쟁과 근대국가, 전쟁과 근대 국제체제 형성 간의 상관관계가 시공간적 제약 없이 적용됨을 밝히고자 하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시공간적 분석대상을 확대했으나, 주권국가 간의 전쟁과 강대국 간의 전쟁만을 주요 요소로 고려하고 있는 경향이 나타나 연구의 한계를 보였다.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식민지와 제국 간의 전쟁은 ‘작은 전쟁’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예외적인 전쟁이라 별도로 개념화하고 이론화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본 연구는 식민지-제국전쟁을 근대 국제정치 형성의 주요요소로 재고했다.

 

아이티혁명·독립전쟁

 

  식민지-제국전쟁과 근대 국제정치형성 간의 상관성을 역사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19세기 근대론에 기반해 아이티혁명·독립전쟁을 살펴봤다. 19세기 근대론은 30년 전쟁과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근대 주권국가와 체제가 형성됐다는 전통적인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대표적인 수정주의적 이론이다. 해당 이론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가 돼서야 근대 국제정치가 형성됐다고 보는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이라 설명한다. 이중혁명과 함께 일어난 아이티혁명·독립전쟁은 18세기 후반 유럽의 가장 큰 노예무역 시장이자 프랑스의 최대 식민지인 생도맹그에서 일어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노예 반란으로 시작된 식민지-제국전쟁이다. 이는 제국과 식민지 간의 관계에 백인과 유색인·노예와 자유인·플랜테이션 귀족과 노동자 등 다층적인 갈등 관계가 복합 작용하며 근대국가와 근대 국제체제 형성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쳤다.

  첫째, 전통적인 근대국가형성론은 1793년 프랑스의 국민 총동원령으로 국민군이 등장하면서 근대국가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이면에는 아이티혁명 독립전쟁을 겪으며 식민지 흑인 노예군을 국민군으로 만들려고 하는 과정이 있었다. 여기에서 국민군과 국민의 개념·권리·제도 변화가 발생한다. 1792년 4월, 국민의회는 생도맹그 노예 반란을 진압하고자 자유 유색인에게 정치적 권리를 줬다. 이후 1793년 6월엔 판무관이 프랑스 공화국을 위해 무기를 든 흑인 노예들에게 프랑스 시민과 동일한 권리를 주겠다고 선포했다. 물론 이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10년도 안돼 나폴레옹의 원정으로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들에게 공화국에서의 병역 대가로 자유와 시민권을 주면서 아이티혁명·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프랑스혁명과 전쟁에 가려졌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근대적 국민 개념과 근대 정치적·사회적 권리 및 제도가 변화하고 발전한 것이다.

  둘째, 일반적으로 19세기 유럽협조체제는 프랑스혁명전쟁과 나폴레옹전쟁으로 유럽 대륙에서의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유럽 주요 세력들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아이티혁명·독립전쟁도 19세기 국제체제 형성에 긴요하게 작용했다.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 영토를 프랑스 식민지들의 공급지로 이용하면서 카리브해에 프랑스 제국을 재건하려 했다. 이를 위해 1802년 생도맹그 원정을 보냈다. 황열병과 같은 여러 요인이 작용하면서 식민지 군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던 나폴레옹의 르클레르 원정대는 식민지 군대의 변절과 탈영으로 대패했다. 이에 1803년 러시아 원정 이전 영국에 맞서 식민제국을 재건하려는 계획을 접게 되고, 미국에게 루이지애나 땅을 팔며 유럽 대륙 체제에 집중하게 됐다. 나폴레옹이 영국과의 경쟁, 무역과 산업 번창과 같은 목표들은 뒤로 하고 유럽 대륙 정복에 전념하자, 영국은 해양과 식민지에 대한 패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주요 세력들과 합의해 공동으로 유럽의 질서를 관리하는 패권체제를 수립했다.

  셋째, 아이티혁명·독립전쟁은 규범적 차원의 근대 국제질서 형성에도 작용했다. 대서양 노예 체제의 중심지이자 설탕과 커피의 최대 생산지인 아이티가 1804년 독립하자 쿠바가 생도맹그의 뒤를 이어 세계 최대의 설탕 생산지가 됐고, 브라질·쿠바 등 대서양의 노예제가 부활하며 왕성해진다. 무엇보다도 국제사회로부터 독립을 인정받기 위한 고군분투에도 아이티는 문명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권국가로 인정받지 못한다. 1814년 프랑스에서는 흑인이기 때문에 아이티가 스스로 통치할 능력도 없고 문명화되지 않아 다시 식민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고, 1835년 승인을 받으려는 아이티에게 교황청은 문명국가로서 인정할 수 없다며 인종을 문제시했다. 주권국가로서 인정받기 위한 아이티의 노력에도 국제사회는 충족시키기 어려운 인종 기준을 요구했고, 이외에도 인종적 위계를 내세우며 문명화시킨다는 명분으로 1834년 알제리가 식민화됐다. 이러한 인종적 위계의 국제질서 규범화는 19세기 말에 일반화된다.

 

19세기 근대국가와 근대 국제체제의 형성

 

  아이티혁명·독립전쟁은 19세기 유럽 제국 세력의 근대국가와 근대 국제체제 형성의 중요한 단계에서 발생한 식민지-제국전쟁으로서 19세기 근대 국제정치 형성과정에 주요하게 작용했다.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은 일정 영토 내에서 이뤄진 과정이라기보다는 제국과 식민지 관계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양상이 작용했다. 근대 국제체제의 형성과정에도 유럽 세력과 주요 세력들의 관계뿐만 아니라 제국과 식민지 관계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비록 본 연구가 단 하나의 사례만을 검토했지만,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근대 국제정치 형성과정에서 각각의 식민지-제국전쟁이 국제정치의 근대로의 변환 과정에 미친 영향과 의미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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