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 조선대 글로벌비즈니스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지속가능한 도시문화] ② 세계의 도시사업과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의 연구에 따르면 ‘문화도시’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시민이 공감하고 함께 즐기는 그 도시만의 고유한 문화가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 현상 및 효과가 창출되어 발전과 성장을 지속하는 도시”를 의미한다. 과연 문화도시 사업은 정말로 시민이 도시의 고유한 ‘문화’를 공감하고 함께 즐길 수 있다 말할 수 있는가. 이번 기획을 통해 해당 내용의 개념과 모습을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문화도시, 도시재생 ② 세계의 도시사업과 한국 ③ 우리의 과거와 현재 ④ 앞으로의 도시는

 
 

지속가능한 문화도시

 

  인류 문명은 도시를 매개로 발전해 왔다. 도시는 문명의 플랫폼이기에 문명권마다 서로 다른 특성이 존재한다. 산업혁명이 도시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변화시키면서 개성 있는 유럽도시들은 획일화된 근대도시로 변모했다. 하지만 도시는 작위적으로 조작할 수 없다. 도시는 시민공동체의 공간으로 하나의 생명체처럼 작동하는데, 근대에 시행된 도시화는 소외된 공동체 보호와 지속가능한 미래의 보장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든 도시가 거대도시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본다면 역사문화도시·생태도시·스마트시티 등 각각의 환경에 맞는 방식으로 후기산업사회에 적응해 왔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도시의 지속가능성이다.

 

도시 개발의 세계적 흐름

 

  차일드에 따르면 도시의 등장은 산업혁명과 견줄 만큼 혁명적이었다. 도시화는 인류에게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했고, 도시를 기능적 공간으로 인식시켜 공동체의 본질을 잊고 개발에 매진하도록 유도했다. 이에 따라 산업사회에서 개발지상주의를 외치며 성장한 도시들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자 각국에서는 대규모 도시 재구조화 사업이 시작됐는데, 하워드가 제시한 전원도시 이론은 사업에 많은 영향을 줬다. 미국도 1893년 시카고엑스포를 계기로 도시 재구조화 사업을 시작했으며, 재개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신도시주의 이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도시재개발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친환경적이고 문화적인 재생사업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문화도시에 대한 논의는 1985년 ‘문화유산의 보존’과 ‘유럽의 문화적 통합에 기여한 도시’를 문화도시로 지정하자는 유럽의회 논의에서 비롯됐다. 근대적 시각의 도시개발이 후기산업사회에 맞게 전환된 것이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도시공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생산 중심 공간이 주거·휴식·문화·소통공간으로 전환된 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문화공간을 단순히 소비만 하는 공간이 아닌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도시경쟁력을 강화하는 공간으로 인식했다는 것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아테네에서 시작된 유럽문화도시 프로그램은 1999년 유럽문화수도 프로그램으로 전환됐고, 각국은 앞다퉈 문화도시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도시의 개념이 세계도시로 대표되는 성장 중심에서 문화·사람·역사 등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문화만큼이나 다양한 형태의 문화도시가 제시된 셈이다.

  영국의 랜드리는 도시의 역사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창조도시를 주장했다. 창조도시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미국의 도시경제학자인 제이콥스 또한 “대량생산 시스템과 소규모 기업의 유연한 생산시스템의 네트워크에 초점을 맞춘 도시의 창조성”을 언급했다. 도시기획자 플로리다 역시 기술(Technology)·인재(Talent)·관용(Tolerance) 등이 창조도시의 핵심 요소라고 말하며 지식·기술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창의성이라 주장했다. 이처럼 도시전문가마다 시각은 다르지만, 과학과 문화예술의 창의성이나 창조적 시민의 상상력을 문화와 산업에 접목해 새로 개척해 나가자는 의미를 가진다.

 

문화다양성 실천을 위한 문화도시 사업

 

  유럽에서 시작한 문화도시 열풍이 1996년 카이로, 2000년 메리다를 거쳐 2014년 동아시아 문화도시 네트워크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동아시아 3국은 ‘각국의 문화다양성을 존중한다’를 전제로 ‘동아시아의 의식·문화교류와 융합·상대 문화의 이해’의 3대 전략을 실천하기로 합의했고, 2014년부터 매년 한·중·일의 도시를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해 문화교류를 추진했다. 올해에는 순천·사오싱, 둔황·기타큐슈가 지정됐다. 또 유네스코는 2004년 도시 간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경제·사회·문화의 발전을 지원하는 유네스코창의도시네트워크를 발족시켰다.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문학·디자인·영화·미디어아트·음식·공예· 음악 7개 분야 중 하나에 지정돼 창의도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도록 지원받게 된다. 해당 사업의 목표는 창의산업 육성을 통한 문화다양성의 가치 실현인데, 도시집중으로 인한 도시소멸이 종다양성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판단으로부터 시작됐다. 후기산업사회에 등장하는 도시문제들, 즉 제조업의 침체·대량 실업·환경 등의 문제를 세계적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하고 지속가능하며 다양성이 확보된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산업사회의 한계를 자각한 지구촌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시모델을 제시하고 방치된 도시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전환했다. 문화도시 사업은 낙후된 도심 재생을 통해 역사문화 자원을 복원하고 도시인의 삶에 집중했다. 이렇게 확보된 공간은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소이자 도시인의 삶과 유리될 수 없는 공공장소들이었다. 기능 중심으로 배치됐던 장소가 소통 및 어메니티(Amenity) 중심의 도시경쟁력을 키우는 공간으로 변해갈 수 있게 됐다.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생산이론에 따르면, 도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공간들이 사회경제적 변화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도시와 도시재생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재구조화 사업이 성공하려면 도시의 본질과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화유산을 활용한 세계도시 사례

 

  성공적인 문화도시로 알려진 리버풀은 아프리카와 신대륙의 교역 중심지로 성장했지만 산업사회가 한계에 이르자 가난한 철강도시가 됐다. 해당 도시는 타이타닉호가 등록된 항구였지만 세계 최대의 노예무역항이라는 오명을 같이 가지고 있었으며, 리버풀FC나 비틀즈 정도가 그나마 남은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했다. 이와 같이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이미지를 지닌 리버풀은 2008년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며 변신을 꾀했다. 이 과정에서 비틀즈와 리버풀FC의 명성과 문화페스티벌 개최 및 문화인재 유출 방지를 위한 민관의 협력, 앨버트 독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사업이 문화도시 견인에 큰 역할을 했다. 리버풀은 인프라가 부족하더라도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잘 생산하고 순환시킨다면 성공적인 문화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글래스고는 문화를 기반으로 한 도시재생을 창조산업으로 전환시켜 기존의 사회 및 경제시스템을 개혁한 사례다. 문화예술이 ICT와 결합해 창조산업의 중심으로 들어와 도시의 산업구조를 개편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라인강 일대의 몇몇 도시들도 2010년 유럽문화수도 계획을 통해 유사한 성공사례를 보여줬다. 이들은 쇠락한 공업시설을 생태계 보전이 가능한 도시공원으로 조성해 도시의 미래 담보 공간을 확보했다. 이처럼 지속가능 한 문화도시는 역사문화유산을 활용하고 쾌적함을 향상시켜 시민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만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 속 돈의 논리에 충실한 공간이 도시를 지배하게 되면서, 조상의 얼이 깃든 역사적 장소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과거와 현재가 단절된 도시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각 도시가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문화도시가 되길 꿈꾼다면, 역사와 전통이 담긴 공간을 현대적으로 변용할 줄 알아야 한다. 도시를 지탱해 온 경제적·사회적 구조의 변화는 도시경쟁력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기에 시대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도시공간의 확보야말로 미래를 담보하는 핵심이다.

 

앞으로 문화도시를 위한 바람

 

  결론적으로 문화를 기반으로 한 도시재생은 산업도시 쇠퇴 원인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평가를 바탕으로 시도돼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선정된 도시들은 차별화 된 문화자원에 기반을 두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시아의 정체성과 문화다양성을 증진시킬 비전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3국에서 진행하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업의 의의이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에 정해진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쇠퇴 요인을 파악해 대처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공간의 탄생은 철저히 도시의 경제적·사회적·환경적 가치와 상응해야 한다. 미래의 문화도시는 제3의 공간을 포함한 도시공간의 역할이 도시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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