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여기에 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때 잠시나마 감소세에 접어들었던 신규 확진자 수는 여름 휴가철을 관통하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더해 기존보다 높은 전파력을 가진 델타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나 우려를 더욱 키우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백신을 접종함으로써 개인의 면역력을 증강시키고, 점차 집단면역 체제로 접어들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실제로 잔여 백신 예약이 순식간에 마감되는 것을 보면 백신을 맞은 후 건강해지고 싶은 욕구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본지에서는 백신 접종 현실에 대해 다뤄, 현재 원우들의 ‘안전’이 얼마나 ‘보장’받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학생과 연구원, 그 모호한 경계선

 

  대학원생은 사회적으로 특수한 지위에 해당한다. 먼저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매 학기 수업을 듣는다는 점에서는 ‘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실험실 소속으로 연구에 참여하며 일정 수준 인건비를 지급받는다는 측면에서는 ‘연구노동자’이기도 하다. 이렇듯 이중적인 소속은 불분명한 행정처리로 귀결되곤 한다. 예를 들어 전국적인 휴교 조치가 시행된 지난해 겨울, 학생이 없는 대학 캠퍼스에 연구노동자인 원우들은 매일같이 출근하고 있었다.
   특히 이공계열에서 이런 모습을 빈번하게 목격할 수 있다. 실험을 수반하는 연구실에서는 주로 도제식 교육을 통해 실험 관련 노하우 및 연구 설계 방법을 전수하게 된다. 그렇기에 활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방법을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대면으로의 만남이 요구된다. 또한 논문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선 직접 장비 및 실험체를 다뤄야 하므로 비대면 진행은 결국, 연구 진행에 있어 한계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대학원생의 대면 활동은 학문의 연구와 발전에 기여하는 ‘대학’의 필수적 존재이다. 아니, 적어도 연구에 있어서는 그러하다.

 

일은 받아도 백신은 받지 못하는

 

  교육부는 대면 강의 확대를 위해 대학 내 교직원에게 백신 접종 우선권을 부여해달라며 질병관리청에 요청한 바 있다. 이처럼 빠르게 학업 정상화를 이뤄내려고 하는 상황에서, 마침내 지난 7월 30일 교육부를 통한 서울특별시 관내 자율접종 관련 공문이 본교로 송달됐다. 서울시 자율접종 3회차와 연계된 이 공문에서는 접종대상자로 “18~49세” “서울 관내 대학의 교직원 및 종사자 중 백신 접종동의자”를 명시하고 있다. 이 문서를 근거로 본교 내 백신 접종 희망자 조사가 선행됐는데, 어쩐 일에서인지 “교직원 및 종사자”에 조교를 제외한 원우들이 배제된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각 학과 메일을 통해 공지 받은 원우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실험 참여가 많은 이공계열 석·박통합 과정생 A씨는 “당장 대면 강의를 시작한다면 실험수업 등 학부생들과 접촉이 많은 것은 우리가 아닌가”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또한 “평소에 학부연구생 관리나 대학원 소개 프로그램 등에 교육인력으로 운용됐는데, 정작 이럴 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처럼 원우들은 ‘외면당한’ 현실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 속하지 못한 씁쓸함을 느끼고 있다. A씨의 말에서처럼 ‘교육인력’이라는 말로, 혹은 연구 인력으로 열과 성을 다해 ‘일하고’ 있는 원우들의 정체성을 이제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대학원생은 ‘어떤’ 구성원인지 그 답을 듣고 싶다.

 

세심한 정책 수립을 바라며

 

  혹자는 국가적 정책 수립 시 한정된 자원 내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가 나눠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의 본질이 교육과 연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앞서 살펴본 사례들과 같이 여러 업무를 도맡아 수행하는 원우들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현 대학 시스템의 여러 톱니바퀴를 구성하는 원우들에 대한 보호가 우선되지 않는다면, 원활한 운영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은 자명하다. 정부와 대학이 원하는 대면 강의 시작을 위해선 이 순간에도 쉼 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며, 대학 운영에 기여하고 있는 원우의 중요성을 잊지 말길 희망한다. 온전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금의 ‘위치’가 움큼 서러워지는 여름이었다.

윤홍률 편집위원 | ryul08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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