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 /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경제연구실장

 

[특집 칼럼] 인플레이션의 공포

본 기획에선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확장재정정책을 펼치면서 나타난 인플레이션의 상황에 대해 탐색하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이어진 ‘금리 인상’과 ‘돈의 유동성’ 이슈를 직시하고 그와 관련해 우려되는 지점을 짚어보겠다. 이를 통해 경제를 다루는 면밀한 시각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편집자 주>

 

 

경기 불황 속 인플레이션의 의미와 대응 방안

 

주원 /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경제연구실장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끝이 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그것이 언제인지는 요원하기만 하다. 전염력이 매우 강한 바이러스의 확산이 가져오는 사회적 문제는 다양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적인 곤궁함이다. 현대사에서 오일쇼크,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 많은 경제위기를 겪어왔지만 대부분 그 충격은 단기간에 집중됐다. 반면 이번 코로나19 펜데믹이 유발한 위기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어지고 있다. 코로나 경제위기의 가장 큰 폐해는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자체를 막는다는 점이다. 즉 경제주체들의 이동성과 접촉면을 봉쇄하면서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다. 아무리 비대면 기술이 발전해도 경제활동의 핵심은 물리적 공간에서의 대면 거래이고 지금 경기 회복의 핵심 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 방향과 부작용

 

  경기 회복의 동력이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침체는 장기화돼 시장이 붕괴되고 민간주체들의 디폴트가 만연할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아니 정확히는 그 충격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한 거시정책적 조치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확장이다. 즉 돈을 푸는 것이다. 모든 국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그것도 통상 경기사이클에서의 유동성 공급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 지극히 비정상적인 유동성이 시중에 풀려 있다. 한국만 해도 낮은 수준의 기준금리에 장기간 머물러 있고 재정정책은 작년에 네 차례와 올해에만도 최소 두 차례의 추경 편성을 통해,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확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유동성의 팽창은 비록 경기를 진작시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취약계층이 힘든 상황을 버티게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의 유동성 공급은 양날의 칼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과 버블이다. 특히 언급된 바와 같이 최근의 유동성 공급은 이례적으로 매우 대규모이고 낮은 금리에 그 지속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당연히 과잉유동성에 의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것인데 그 폭발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가늠조차 안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이 압력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실물 경제가 회복 국면이라면 이러한 과잉유동성을 조절해 가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에 유동성을 회수할 수 있는 수준의 경기 회복 단계에 있는 나라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유동성을 방치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러나 심각한 부작용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가격과 물가 지표가 압력을 받아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유동성 압력이 커진 곳이 원자재 시장이다. 원자재 가격은 화폐와 원자재의 교환 비율이다. 예를 들어 원유는 배럴(Barrel) 당 달러, 농산물은 부쉘(Bushel) 당 달러, 광산물은 톤(MT, metric ton) 당 달러로 표시된다. 따라서 달러화 유동성이 갑자기 많아지면 원자재의 실제 가치는 크게 변하지 않는데 명목 가치만 오르게 된다. 화폐 환상이다. 최근까지의 원자재 가격 상승은 이 통화 유동성에 의해 뒷받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국내 수입 물가상승률은 올해 2월에 전년 동월대비 -0.3%에서 3월에 9%의 증가세로 전환됐으며, 7월에는 19.2%에 달하고 있다. 수입 물가의 급등은 기업의 생산자 물가를 통해 국내 소비자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올해 1월에 전년 동월대비 0.6%에 불과했으나, 7월에 들어서는 2.6%까지 급등해 있다. 경제가 어려운 침체 국면에서 2%대 중반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최근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저금리 기조를 탈출하겠다는 발언의 배경도 여기에 있다. 비록 한은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아닌 금융불균형을 그 이유로 들고 있지만, 이 또한 자산 시장에서의 인플레이션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또한 실물 시장에서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애써 축소하고 있지만, 이미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한은의 물가안정목표 수준인 2%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인플레이션을 방치할 경우 소비 심리는 더욱 위축될 수 있다. 소득은 크게 늘지 않는데 물건값이 비싸지면서 가계는 지갑을 닫게 된다. 가뜩이나 어려운 내수 경기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더욱 큰 문제는 버블의 붕괴이다. 인플레이션은 스스로 그 거품을 확대시킨다. 그리고 거품이 폭발하는 단계에 진입하면서 경제에 큰 충격을 준다. 따라서 지금 나타나는 인플레이션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고 중앙은행이 제대로 대응해야만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응이라는 것은 유동성의 회수인데 그러한 통화정책의 기조 변화는 반드시 대가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과거 경제위기가 끝나갈 무렵에서 정책전환이 이뤄지는 과정이 순탄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일부 경제 주체들이 적응을 못 하거나 정책의 정교함이 미비해 후행 위기를 불러온 적이 종종 있었다. 이번에도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금리를 올렸다가 다시 바로 내릴 수도 있다. 너무 늦게 금리를 인상해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할 수도 있다. 시장은 해외 경제·금융 여건, 시장 수급 상황, 유동성 흐름, 시장참가자의 기대심리 등이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럭비공처럼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언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더 심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주류라고 본다. 다만 그 과정에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 정공(正攻)은 통화정책에서의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이다. 실물 경제의 확장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정상화가 가져올 후폭풍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국가는 없다. 여전히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며 경기 회복을 방해하고 있기에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책당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경고는 지속돼야 한다. 특히 금리 인상에 대한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방역 상황만 좋아진다면 금리 인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기대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한다. 둘째, 생활물가 품목들에 대한 미시적 대응이 필요하다. 인플레이션이 만연하고 있다는 민간주체들의 부정적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서민체감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특히 풍수해에 취약한 농·축·수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시장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가격 급등 시 수입량을 확대하는 조치들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셋째, 금리 인상의 부작용을 대비해야 한다. 즉 민간의 부채를 축소시켜야 한다. 최근 국내외 코로나 상황을 볼 때, 비록 실물 경제가 회복 국면에 진입하더라도 그 속도는 상당히 미약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가계와 기업의 소득과 이익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증가하면서 한계 부문의 디폴트와 금융 부실화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통화량 증가율을 확연히 낮춰야 하고, 취약 부문의 부채 구조조정을 시작해야 한다. 넷째,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급격한 약세를 방지해 수입 물가의 추가 상승 압력을 막아야 한다. 최근 원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수입 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은 불가능하지만, 정책당국의 구두개입과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통한 환율 변동성 완화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간주체 스스로가 부채 관리에 나서야 한다. 최근 정부의 자산 시장 조정에 대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신용을 통한 과도한 ‘빚투’를 경계해야 한다.

  여전히 실물 경제는 불황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가세하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정부와 민간의 소통과 공감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민간에 잘못된 정책 시그널을 줘서는 안되고 민간은 합리적 사고를 통한 건전한 경제 활동에 주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국 경제가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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