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 한국아동권리학회 학술이사

 

방치된 목소리, 아이들은 어디로 ④ 훈육과 학대 사이의 침묵

사회는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들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가진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들 정도의 아동학대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아동을 주체적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미성숙함을 드러낸다. 이번 기획에서는 아동학대 사례를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해결방안을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찾아가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아동학대의 어두운 그림자 ② 육아의 전선 ③ 사회로부터 단절된 아동 ④ 훈육과 학대 사이의 침묵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

 

  아동학대는 최근 들어 갑자기 생긴 현상이 아니다. 학대 피해 아이들은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도 어딘가에서 우리의 무관심과 침묵 속에 학대받는 또 다른 아동이 있을 것이다. 아동학대는 아동에게 행해지는 폭력행위나 잘못된 양육 등을 모두 일컫는 개념이다. 영어 표현에서도 학대는 ‘Abuse’ 혹은 ‘Maltreatment’라 하는데, 부정적 의미의 접두사인 ‘ab’와 ‘mal’를 붙여서 ‘사용을 잘못했다’, ‘나쁜 처치를 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아동학대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아동에게 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학대는 신체적 학대·정서적 학대·성 학대·방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고, 방임은 다시 물리적·교육적·의료적·정서적 측면에서 구분된다. 이때 방임은 고의적·반복적으로 양육과 보호를 소홀히 함으로써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행위다. 한마디로 아동에게 해 줘야 할 마땅한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선 여러 유형의 학대와 방임이 중복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학대의 징후

 

  어느 날 학대를 당한, 피해 아동의 부모가 가해자 유형을 특정 지을 수 없겠느냐고 필자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학대를 자행하는 가해자들의 일반적인 특성을 골라내고,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을 아동과 분리함으로써 학대를 예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 범죄를 예측하고 이와 관련해 잠재성이 있는 사람을 미리 체포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권 측면에선 안 될 말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아동으로부터 학대의 징후를 찾아 분리하는 것은 어떨까. 피해 아동은 다양한 신체적·행동적 징후를 보이는데, 이는 학대의 유형이나 개별 아동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학대를 경험했을 때 지나치게 두려움을 느껴 유순한 반응을 하는 아동도 있지만 분노를 표출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학대받은 아이들의 특징을 간단히 하나로 특정 짓기는 어렵다고 느껴진다. 물론 학대를 유형화할 수 있는 징후도 있다. 신체적 학대는 시차가 있는 상처나 도구 모양이 그대로 나타나는 상처 등 비교적 징후를 찾아내기 쉽다. 특히 사타구니나 허벅지 안쪽, 귀 뒤쪽, 팔 안쪽의 멍과 같이 단순 사고로 발생할 수 없는 상처들이 보인다면 학대를 의심할 만하다. 집에 가기 싫어한다거나 부모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공격적 또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도 신체적 학대의 영향일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정서학대는 관찰하기 쉽지 않고, 그 피해의 정도 역시 확인하기 어렵다. 정서학대를 받은 아동은 위축되거나 우울 상태에 있으며 무력감, 자기비하, 낮은 자아존중감 등을 드러내는 극단적 감정의 경향을 보인다. 이는 때때로 아동의 성장발달 지연 혹은 히스테리, 강박, 공포로 나타내기도 한다. 방임의 경우에는 지속적인 배고픔, 나쁜 위생 상태, 부적절한 옷차림이 그 징후라 할 수 있으며, 적절한 때에 필요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또한 방임된 아동은 음식에 집착하거나, 이른 혹은 늦은 등하교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아동학대의 징후를 완벽하게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아동은 자주 넘어지고 다치며, 가끔 상상을 현실처럼 이야기하는 사례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누군가 이런 징후를 알아내야만 아픈 연결고리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학대 예방과 조기 발견을 위해선 사회적인 인식과 관심이 중요하다.

 

미안해’가 아니라 ‘고마워’로

 

  대부분의 학대는 가정 내에서 발생하며, 그중 친부모에 의한 학대가 그 비중을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주로 이슈화된 사건이 입양가족 혹은 재혼가정과 같이 사회적으로 ‘평범하지 않다’고 인식되는 범주에서의 학대였기 때문에, 우리는 친부모와 관련된 사건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기인한다. 사회에서 정상의 기준을 정한 후 이에 해당하지 않는 가족에서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하리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편견은 오히려 친부모에 의한 학대를 간과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동반하기에 빨리 지워낼 필요가 있다.

  이어 훈육을 바라보는 시선도 좀 더 엄격해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아동에게 가해지는 학대에 대해 관대한 경향이 있다. 여기에 남의 가정사에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성향까지 더해지다 보니, 아동은 가정 내 학대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경미한 수준이더라도 심각한 학대로 악화되는 것은 순간이다. 따라서 가정 내에서 행해지는 훈육이 어떤 형태와 의미를 갖췄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것이다.

  다행히 최근 아동학대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아동의 희생이 이런 변화의 촉매가 됐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마음이 복잡하기 그지없다. 또한 학대 문제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선은 이러한 변화를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을 하기보단 지금도 작은 울음으로 도와달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위해 ‘울어줘서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는 제도를 통해 아동보호체계를 계속해서 개선해야 하고, 각 개인은 적극적으로 아동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동보호는 모든 이들의 책임이며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TV 속 유명 연예인의 아이들, SNS 스타의 아이들에 주는 관심을 옆집 아이에게도 조금 나눠주길 권해본다. 그리고 아이의 작은 울음소리에도 귀 기울여 줬으면 한다. 학대받은 아동을 찾아내기 어렵더라도, 최소한 도움을 요청하는 아동의 구조 신호를 놓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니 말이다.


쉿! 방금 저 소리 들었어? // 무슨 소리?
잠깐만. 또 들렸어. 울음소리 같지 않아? 어린애 소리 같은데······ 확실해. 우는 소리야.
남의 집 일에 뭘 신경 쓰고 그래. 애가 울 수도 있지.
그렇긴 하지만······ 왜 계속 우는 거지? 이상하지 않아? // 도와주세요. -그림책 《울음소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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