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진 / 건축가

 

도시적인 삶의 형식화 ④ ‘무지개떡’ 건축을 분석하다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아파트에 대한 전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아파트는 한국의 현대 주거 문화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건축공학적 관점에서의 아파트가 가진 본질, 나아가 그곳에 반영된 사회상에 대한 고찰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아파트의 구조, 방식, 역사 등을 살펴보고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아파트가 위치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한국의 미래 주거 형태를 예측해 바람직한 도시 재생 방안을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아파트의 구조와 방식 ② 도시의 작동 원리 ③ 장수명주택, 미래의 주거 형태 ④ ‘무지개떡’ 건축을 분석하다

 

 

‘회색 도시’를 벗어난 공간
 

  무지개떡 건축의 핵심은 직장과 주거지가 가까운, 즉 ‘직주근접’의 가능성을 높이고 일상의 이동 거리를 줄이는 데에 있다. 한마디로 활기찬 보행자 친화적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이에 무지개떡 건축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개의 기본 조건으로 구성된다. 첫째, 이는 최소 용적률 250%, 층수 5층 이상이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소’라는 단어다. 따라서 그 이상의 용적률과 층수를 갖는 경우도 무지개떡 건축에 포함된다. 그간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지개떡 건축은 5층 내외의 유형이라는 오해가 일부 생겨났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 이상의 용적률이 필요한 경우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으며, 무지개떡 건축은 이러한 고층화의 경우까지 포함하고 있다.

  둘째로 해당 건축에선, 주거와 다른 도시 기능의 층별 구분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무지개떡 건축은 저층부·중층부·상층부로 구성되는데, 이 개념들에 대한 각각의 접근 논리를 다르게 해 주거가 상층부에 들어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러한 개념적 특성에서 비롯됐다. 세 번째는 외부계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앞의 두 가지 조건에 비해 그 이후의 조건들은 무지개떡 건축의 세부 조건에 해당된다. 여기서 외부계단이란 지하 및 지상 2, 3층 정도를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외부계단은 내부계단에 비해 심리적 거부감이 덜하며, 건물과 전면가로와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연결해 주는 장점이 있다.

  다음으로, 최소 500평방미터 이상의 필지를 요한다. 이 조건은 주차에 대한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필지에서는 자주식 램프에 의한 지하 주차장의 설치가 가능해진다. 이는 지상에 주차장이 설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규모다. 이 조건 역시 앞서 살펴본 세 번째 조건과 마찬가지로, 건물과 가로와의 관계를 보다 밀접하게 하고 가로의 보행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옥상마당의 설치가 조건에 해당된다. 무지개떡 건축은 옥상정원과 옥상마당을 구분한다. 옥상정원은 수직 동선인 옥탑을 제외하고는 외부공간만으로 옥상이 구성된 경우다. 반면 옥상마당은 한옥의 마당처럼 실내와 실외가 한 층에 공존하고 있다. 이는 외부를 생활공간의 연장으로 보는 것이다. 설계 초기부터 용적률과 건폐율을 동시에 조율해야만 얻어지게 되는 결과다.

 

보편적 도시 주거와의 관계성


  위의 기본 조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무지개떡 건축은 ‘보편적 도시 주거’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바탕으로 한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옥은 무지개떡 건축의 일차적 관심 대상이 아니다. 건축적·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지만, 법과 제도에 의해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도시의 밀도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극히 일부 지역에 불과하며 도시 평균보다 밀도가 낮은 전용주거지역의 단독주택 유형 또한 그러하다. 교외의 전원주택, 유서 깊은 마을의 단층 전통 주거 역시 무지개떡 건축이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다.

  무지개떡 건축은 도시 지역의 아파트나 다세대·다가구·연립주택 등과 거의 동일한 수요자 집단을 전제로 하며, 동시에 바로 이들 건축 유형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반면 위에서 열거한 건축 유형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모두 주거 단일 용도라는 것이다. 이를 무지개떡 건축과 반대되는 의미에서 ‘시루떡 건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주거 이외의 다른 건물들도 단일 용도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한반도 건축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시루떡 건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그 이외에도 무지개떡 건축에는 ‘다공성’과 ‘중첩된 기하학’이라는 부수적인 내용이 포함된다. 전자에 나열된 조건들이 건축의 도시적 특성을 규정한 것이라면, 후자는 건축의 조형 원리에 관한 것이다. 이때 ‘다공성’의 개념은 무지개떡 건축 자체가 상당한 고밀도의 유형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압박감을 완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러왔다. 또한 층별로 다른 기능에 대한 공간적·구조적 대응 논리로서 ‘중첩된 기하학’의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다. 특이하게도 다섯 개의 조건과 달리, 이 두 가지 요소는 한옥의 조형적 특성에서 상당한 영감을 얻은 것임을 밝힌다.


코로나 이후의 도시와 건축


  무지개떡 건축은 대학생 시절 과제를 진행하며 착안한 것이었다. 그리고 건축가가 된 이후, 대략 2005년부터 이 개념을 정리해 가면서 관련 프로젝트를 하나둘씩 진행하기 시작했다.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으며, 2015년에는 같은 이름으로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했다. 무지개떡 건축이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 유통되기 시작한 지 이제 6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이를 소개하고 난 이후 다양한 찬반양론을 접했다. 반대론의 경우 밀도에 대한 것이 많았다. 실제 밀도는 낮지만 체감상으론 밀도가 높은 대한민국 도시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그 이상의 밀도를 제시하는 데에서 오는 부정적 반응이었다. 또 다른 반대론은 복합에 대한 의문이었다. 사농공상의 전통적 가치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상가와 같은 일반 도시 기능 위에 주거가 자리 잡는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최대의 반론은 사람이 아닌 자연으로부터 왔다. 코로나로 인해 무지개떡 건축의 핵심이면서 도시 문명의 근간인 ‘밀도’와 ‘복합’에 관해 근본적인 회의가 제기된 것이다. 실제로 로마나 파리 같은 세계 굴지의 관광도시는 하루아침에 텅 빈 모습이 됐다. 이러한 사진들이 연일 매체에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이 이제 우리가 알고 있던 도시 문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도시는 쇠락할 것이며, 교외로의 이동이 필수적이라고 하는 주장도 등장했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사건에 대해 역사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전형적 오류에 불과하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병이 발생할 때마다 도시가 텅 비었으나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도시 문명이 복귀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지금은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대응 능력 역시 만만치 않게 발전한 상황이다.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도시는 머지않아 이전의 일상을 대부분 회복할 것으로 예상해본다.

  한편 이 과정에서 도시의 기능적 분화가 인구의 대량 이동을 촉발하고, 이에 따라 감염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주장이 제시되면서 오히려 그 반대의 개념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본래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핵심 이념인 직주근접이 재조명됐고, 주거를 비롯한 다양한 도시 기능이 가까운 거리에 밀집해 있는 새로운 복합 도시계획 개념으로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작년, 파리 시장 선거에서 안느 이달고(Anne Hidalgo) 캠프가 제안한 ‘15분 도시’가 있다.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와 보행으로 일상의 삶을 장거리 이동 없이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 개념은 선거 전략의 대표적 아이콘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무지개떡 건축 또한 이제 단일 건물을 넘어 커뮤니티 차원으로 그 개념이 확대되고 있다. 영국의 김정후 교수팀과 공동으로 진행한 바 있는 역세권의 미래와 관련한 연구가 특히 그러한 사례다. 해당 연구는 도시 외곽이 아닌 도심 내부에 역세권을 거점으로 하는 다수의 고밀도 미니 신도시를 개발하고, 이를 무지개떡 건축 개념으로 풀어내는 것을 주 골자로 한다. 이외에도 무지개떡 건축의 다음 단계와 관련된 연구 또한 순수한 건축 공간론적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무지개떡 건축은 여전히 공간과 기능 간의 관계가 고정적인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그다음 단계가 되면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단일한 공간이 시계열적으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상황이 가능하다. 이때 물리적 구조나 공간과 같은 전통적 건축 요소가 아닌, 가구와 설비가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제공해 주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구조나 공간은 시시각각 변하는 기능으로부터 어느 정도 분리돼, 오히려 하나의 장소와 분위기를 만드는 항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를 잠정적으로 ‘동적 기능주의’라 부르기로 하며, 향후 보다 체계적인 연구 성과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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