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연 / 교육학과 박사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정책 논의가 함축한 학교교육과 교육기회 공정 배분의 의미 검토』 구소연 著 (2021, 교육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교육학과 구소연의 박사 논문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정책 논의가 함축한 학교교육과 교육기회 공정 배분의 의미 검토』를 통해 학교교육 및 교육기회 배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교육기회’와 ‘공정’에 대한 논의를 확장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수능에 담긴 학교교육과 공정 배분의 의미

 

구소연 / 교육학과 박사

 

  한국 사회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은 고등학교까지의 학력을 평가하고 대학의 교육기회를 배분하는 잣대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학교교육과 관련돼 있고, 또 다른 지점에선 그것이 과연 대입 적격자를 선발하는 타당하고 공정한 자료인가를 두고 논란하게 된다. 수능이 시행된 지 곧 삼십 년이 돼 간다. 지금의 수능이 되기까지는 여러 정책적인 변화가 존재했다. 그 변화는 우리 사회에서 수능을 두고 해 온 이야기들에 따른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수능이 ‘대학입학적성시험’이라는 말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1985년부터 2020년까지의 신문 기사들을 중심으로 관련 정책 변화와 구체적인 논란의 역사를 정리했다. 수능 정책과 담론의 역사를 짚어보는 것은 수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점과 그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책 담론 문제 삼기


  영국의 교육사회학자인 볼(Ball)에 따르면, 정책은 텍스트가 아니라 담론이다. 정책은 공표된 문서의 내용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처음 논의될 때부터 실제로 만들어져 공표되고 시행되기까지, 그리고 시행되는 과정에서 계속 회자된다. 그러면서 처음의 의미에서 벗어나 수정과 변형을 거쳐 구성돼 간다. 따라서 정책은 담론이고, 담론의 흐름을 따라 나름의 궤적을 그려간다. 이 때문에 어떤 정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공표된 내용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해당 문제가 왜 제기됐는지, 그리고 그 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는 과정에서 어떤 논란들이 있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정책학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몸이 아프듯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고, 정책은 이를 ‘해결’하는 치료제와 같다. 그러나 정책을 담론으로 이해한다면, 정책 연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 접근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정책 자체, 그것이 다루는 문제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수능 정책을 본다면, 수능으로 인해 생긴 문제점 혹은 부작용들의 해결책을 찾기보다 그 문제들이 ‘왜 문제가 됐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수능 담론의 역사 속에서 으레 다뤄 온 학교교육과 교육기회 배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이야기를 해 왔는지, 그 안에 담긴 전제가 무엇이고 그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온당한지, 혹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는 없는지 등을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수능은 지금껏 어떤 모습으로 변모해 왔을까. 1994학년도 대학 입학시험(이하 대학입시)에 처음 등장한 수능은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이는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조장한다고 비판받던 학력고사와 다르게, 사고력을 측정해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었다. 따라서 시험 준비에 특별히 매진하지 않아도, 평소 학교 수업에 충실히 참여하고 독서를 많이 했던 학생이라면 충분히 풀 수 있도록 고안됐다. 당시 수능이 학력고사와 달랐던 또 다른 특징은 해당 시험 결과가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대입 정책에서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수능은 여러 전형자료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됐다. 이처럼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암기력이 아닌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이 새로이 등장하면서, 이제 입시 위주의 주입식 수업에서 벗어나 공교육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의 입시 부정이 드러나면서 수능의 비중이 커지게 됐다. 시험 문제의 출제 방식과 구성도 달라졌다. 1993년에 치러진 첫 수능은 사고력을 측정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문·이과 계열 구분없이 통합교과적으로 출제됐다. 그러나 고교에서 계열별 심화과정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듬해부터 계열별 출제로 바뀌었다. 시험 문제도 통합교과적 출제에서 점차 개별교과 내 출제 방식으로 변했다. 게다가 학생들의 시험 부담을 완화하고 공정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EBS 연계 정책을 시행하면서부터 학력고사처럼 암기력을 측정하는 시험이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능은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새롭게 등장했지만, 이를 추구하다 오히려 과거의 학력고사와 유사한 형식으로 회귀하는 모순된 역사를 갖게 된 것이다. 한편, 입시 정책이 다양화돼 그 영향력은 점차 낮아졌으나 최근 수시에 비해 정시가 교육기회를 공정하게 배분한다는 여론에 따라 수능의 비중이 점차 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공정한’ 시험 속 모순은


  이처럼 수능이 본래 목적 중 하나인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시도하다 결국 학력고사와 같은 성격으로 변모한 것은 학교교육의 ‘정상’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시험 과목을 축소하는 것이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이라 했다가, 때론 수능에 더 많은 과목을 넣어 교육과정에서 소홀히 되는 과목이 없게 하는 것이 학교교육 정상화라 했다. 같은 목표를 두고 전혀 다른 방향의 정책이 시행된 것이다.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것이 학교교육의 정상적인 모습이고 수능이 학교교육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매년 수능의 목표로 명시되는 학교교육 정상화가 허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시험으로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킬 수는 없다. 시험으로 학교교육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은 ‘평가위주’의 사고방식이다. 가르치는 일을 개선하기 위해선, 시험이 아니라 그 일 자체를 손봐야 가능하다.
  한편, 수능을 둘러싼 논란의 다른 한 축은 과연 수능이 공정한 입시전형 자료인가 하는 것이다. 수능이 공정하다는 주장에는 ‘객관적인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는 어떤 시험이든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공정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통념에 불과하다. 아무리 좋은 평가도구라도 응시자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배제하고 온전히 그가 가진 능력만을 재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경쟁하는 대학입시에서 객관식 시험의 근소한 점수 차이가 곧 그들의 절대적인 실력 차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때 더욱 깊게 다뤄야 할 것은 우리 사회가 합의하고 있는 ‘공정’의 개념이다. 최근 대입과 관련된 논의에서 공정은 ‘점수로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수능 위주 정시전형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속칭 금수저가 유리한 ‘깜깜이’ 수시전형 대신에 개개인의 격차를 투명하게 드러내 대학 교육기회를 서열에 따라 배분하는 수능이 공정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정의 의미는 개인적인 수준에 그친다. 이제 교육에서 공정의 의미는 롤스(Rawls)의 ‘다름의 원칙’에 근거해 사회적인 수준으로 확장 및 논의돼야 한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교육기회가 돌아가야 하는데, 이는 단지 입학시점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정한 교육기회 배분의 의미를 보다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

 

기존의 담론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본 연구에서 살펴본 결과, 수능 담론에서 학교교육 정상화와 대학 교육기회를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각각의 전제에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이 상충하고 있었다. 해마다 수능의 목표는 두 가지를 함께 지향하는 것으로 명시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수능의 난이도를 낮추고, 절대평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능이 공정한 잣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난이도를 유지하고 상대평가를 지향하며, 입시에서의 비중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합의가 불가한 정반대의 입장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제는 기존의 수능 담론에서 탈피해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학교교육의 정상화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구체화하고 공정의 의미를 사회적 수준으로 확대해, ‘모든’ 학생이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누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시점이다. 먼저 시험만을 통해서는 학교교육을 정상으로 이끌 수 없음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공정하게 나눠야 할 것은 대학, 그중에서도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한정된 교육기회가 아니라 학교교육을 통해 마땅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회여야 함을 분명하게 드러내 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능 담론 속 평행선은 언제까지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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