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논문 접근의 문턱을 낮추는 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15-18세 청소년에게 설명한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한눈에 봐도 최대한 읽기 편하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글을 요청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러한 요청사항이 ‘논문’을 싣는 학술지로부터 시작됐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누군가는 ‘뜻밖이다’라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위 내용은 KCI 등재 학술지 《보건사회연구》를 통해 2021년부터 실리게 되는, 이른바 ‘알기 쉬운 요약’ 작성지침의 일부 내용이다.
국내학술지에서 처음 시도되는 본 작업은 ‘일반인을 위한 요약(Lay Summary)’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국외 일부 학술지에서 시행되고 있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논문 저자가 해당 논문의 내용을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해 제공하는 것이다. 연구결과와 그 의의 등을 설명하라는 것에서부터 비전문가가 최종 요약문을 이해할 수 있는지 확인하라는 항목까지 모든 것은 ‘알기 쉽다’라는 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관련 학술지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러한 시도는 전문가의 지식 독점문제를 완화하고 타인이 연구 내용을 오독하는 것을 예방하며, 나아가 연구결과를 사회에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대중이 무언가를 ‘읽는다’는 표현에서 그 대상이 신문 기사나 도서가 아닌 논문일 때, 이는 생경한 느낌을 안겨주곤 한다. 그만큼 논문이라는 텍스트는 주로 관련 분야의 전문가 혹은 학자, 그리고 학문을 연마하는 학생들의 전유물이라는 개념이 뚜렷하게 잡혀있다. 그렇기에 한 개인이 평생 논문을 한 편이라도 읽거나 직접 작성해보는 경험은 특별한 영역의 것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논문이라는 개념에 대한 문턱이 높아질수록 연구의 의미 자체가 점차 폐쇄적으로 변하며 정보 접근적 측면에서도 불균형이 생긴다는 지점은 고려해봐야 할 사안일 것이다. 나아가 충분히 이해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자칫 잘못 해석돼 그 본뜻이 변질된 채로 대중에게 전달된다면, 학술적 가치가 훼손되는 새로운 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용어와 이론이 가득한 논문을 작성자가 다시금 명확히 설명하는 것은 새로운 첫걸음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는 해당 용어가 가지는 의미를 범용화해 보다 다양한 연구가 실질적으로 사회에 적용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부터 습득한 지식이 또 새로운 담론을 개진하는 데에 쓰인다면 비로소 지식을 전달하는 측면에서의 학문적 의의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물론 여전히 학문의 특성마다 특정 용어 및 이론에 내포된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관한 지점 등은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부디 이러한 작은 변화를 출발점으로 삼아 훗날 모두가 다양한 지식을 향유하고 적확하게 활용하는 것이 더욱 보편화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