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연 / 문헌정보학과 석사과정

 

다시, 떠날 날을 기다리며

  역병이 창궐하면서 나라 밖으로의 발길도 묶인 게 1년이 넘었다. 이에 다시 나갈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옛 기억을 꺼내보려 한다. 장교로 군대를 갓 전역한 2019년 8월,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뭐든 잘 풀리리라 생각하고 떠났다. 여행의 끝은 코로나19로 인해 좋지 않았지만 나쁜 기억으로 남지도 않았다. 그 강렬했던 여행 말미의 순간을 잠시 되돌아보자면, 여행 중 전염병 확산으로 관광객 입국을 금지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마니아에 도착했을 때의 입국심사가 삼엄했다. 여차저차 입국엔 성공했지만 그 다음 날 바로 루마니아에서 국가비상사태가 발령됐다. 더는 여행을 할 수 없었다. 항공권 예약과 취소를 거듭하고 비행기만 3번을 탄 후에야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예상보다 이른 귀국 후 자가격리를 거치고 나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행 중 호기롭던 모습은 어딜 갔나 싶을 만큼 하릴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그때 문득 전역하고 여행을 끝낸 뒤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기왕 한국에 일찍 돌아오게 됐으니 대학원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주어진 시간은 두 달밖에 없었다. 입시 준비가 가능할지 겁부터 났다. 하지만 이내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겁부터 먹고 있는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뭐가 됐든 일단 부딪히고 봤던 지난 여행의 기억을 곱씹어보니 더욱 그랬다. 그러던 중 본교 대학원 접수 마감일이 다가왔다. 밤을 새워 자기소개서와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떻게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면접이 끝나고 다행스럽게도 합격증을 받게 됐다.

  비대면 강의가 지속되고 있기에 예상과는 사뭇 다른 학교생활의 연속이었지만, 벌써 대학원 2학차를 보내고 있다. 작년 9월, 입학 후 당시 조교 근무를 통해 만난 선생님들과의 교우도 지속되고 있다. 덕분에 적적한 학교생활에 잠시나마 활력을 얻을 수 있어 감사하다. 또 이번에는 다른 학교와의 학점교류를 신청하는 등 다양한 대학원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무언가를 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는 것 같다. 이처럼 매번 눈앞에 놓인 것들을 어떻게든 이뤄내기 위해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갈 길이 아득하게 느껴져 만족스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갈 길이 멀다보니 마음도 조급해지고, 쉬이 처지면서 여행의 기억만으로는 버티기 버거울 때가 있다.

  이에 하나의 기억을 더 꺼내 본다. 사관후보생 시절, 교육대장님이 러시아 기갑 전술 교범에서 가져왔다던 글귀가 하나 떠오른다. 적이 거세게 몰아붙일수록 더 강하게 반격하라는 내용이었다. 보통 기세를 감당할 수 없으면 퇴각해 다음을 도모하는 게 이치일 법도 한데 되레 역으로 몰아붙이라니, 그 말이 사관후보생 시절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오롯이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힘들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거냐’는 말과 통하는 것 같기에 재차 일어설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이처럼 힘들고 지칠 때면 이렇게 두 개의 기억을 꺼내 마음을 다잡는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삶의 힘겨움에 부딪히더라도 각자에게 소중한 추억을 통해 생활 속 소소한 즐거움이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다시 떠날 수 있을 날 역시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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