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 문예창작학과 교수

 [교수칼럼]
 

소년원 아이들에게 용기를

이승하 / 문예창작학과 교수
 

  어언 6년 전이다.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소년원에 가서 시창작 특강을 세 차례 했다. 의기소침해 있던 아이들은 자기가 쓴 시가 외부 특강 선생님의 칭찬을 듣는 것은 물론, 상을 타고 시화전에 걸리며 시집에까지 실리자 용기백배하는 것이었다.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불화나 이혼으로 자존감이 많이 내려가 있었고, 지금껏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잘하는 게 있어야 칭찬을 받을 텐데, 이제껏 때리고 욕하고 빼앗는 등 말썽을 피우다 보니 이런 대우만을 받아 왔다고들 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시를 써보게 했더니 뜻밖에 곧잘 썼다. 그중 상을 받고 책에까지 본인의 시를 실은 아이는 면회 온 엄마에게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자존감을 드높인 이 사업은 2년만 하고 중단됐다. 그래서 소년원 아이들이 쓴 시를 모은 시집은 2권밖에 나오지 못했다.
  이 사업을 후원하던 모 재단에서 이런 모양새는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가 없으니까 중단하고 말았던 것이다. 수해가 났을 때 의연금을 내는 것조차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나오는 상황에 이런 사업은 일반인들이 모르기 때문에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재단은 리더육성장학사업·배움터교육지원사업 외에 청소년치아교정사업도 후원하는데,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 소년원 시창작 교육 사업은 2년만 하고 철수해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난다.
  한 아이가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엄마는 늘 내게 아버지 같은 분// 다른 애들은 아버지랑 주말에 놀러 가는데/ 난 가지 못해 늘 서운했다// 면회 오신 어머니가/ 내 모습을 보곤 함박웃음을 지어 주셨다// 뒤돌아서서는 몰래 눈물 훔치셨다/ 처음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들을 소년원에 두고 돌아가는 엄마의 가슴도/ 무너지고 있었나 보다 ㅡ〈엄마〉 전문
  준이라는 아이는 면회 온 엄마의 눈물을 보고 “처음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썼다. 훗날 엄마나 준이 힘겨울 때 이 시집을 펼쳐보면서 눈물을 글썽일 것이다. ‘이 녀석이 다 컸구나.’ ‘엄마 속 그만 썩이고 효도해야지.’ 이렇게 이심전심이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시가 가진 힘이었다. 준이 이곳을 떠날 때까지 가방 속에는 시집이 들어 있었다.
  한편, 신문사가 문화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일보사는 동인문학상(소설)을, 서울신문사는 공초문학상(시)을, 한국일보사는 팔봉비평문학상을 후원하고 있다. 또한 세계일보사는 5천만 원 상금을 건 세계문학상을 17회째 공모해 얼마 전 시상식을 했다. 동아일보사는 신춘문예 공모시 중편소설에 3천만 원 상금을 주면서 따로 동아인산문학상 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처럼 웬만한 신문사에서는 이렇게 한국의 문학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데 오히려 중앙일보사는 미당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신춘문예를 중단하고 말았다.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실천하는 중앙일보사로 거듭나기 위해 이 결정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건 아닐까.
  돈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고 했다. 중앙일보사의 문화사업 투자는 기업 이미지를 제고케 할 것이다. 해당 신문사 공모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기에 이런 말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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