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책임이 필요한 ‘이름’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명제로부터 시작됐지만 이젠 모두가 일상적으로, 어떤 맥락에서든 사용하는 표현으로 굳어져 있다. 그만큼 현대사회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 즉 지식을 터득하고 소유하는 행위에 큰 가치를 부여하곤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문의 영역을 구성하는 요소는 보통 신성시되고, 더불어 학자 혹은 지식인 역시 사회적 권위를 확보한 자들이 된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가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대중의 신뢰도는 결정돼 해당 주장은 진리이자 객관적인 것이라는 신화마저 탄생시킨다.
  최근 학계를 중심으로 몇 달간 지속되고 있는 논란 하나가 있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램지어의 논문을 두고 일어난 연구윤리 위반 및 역사 왜곡에 대한 문제다. 일본군‘위안부’가 전쟁 성노예가 아닌 자발적 계약에 의한 매춘부라는 부적절한 내용이 주가 된 가운데, 이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것은 물론 피해 사실을 부정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심지어 해당 논문에서 사용된 핵심적인 논거인 한국인 ‘위안부’의 계약서는 당시 실제로 사용된 계약서와 전혀 다른 것으로, 지금껏 관련 논의를 개진해 온 모든 노력과 헌신을 외면하는 의도적 행위로도 읽을 수 있다.
  한편 재작년 가을, 한국에서도 한 대학교수가 강의 도중 일본군‘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였다는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이에 해당 교수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최근 진행된 2차 공판에서 그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 사건마저 언급하며 이 모든 것은 ‘학문의 자유’라고 재차 강조했다. 나아가 일련의 상황을 “민주 사회의 폭거”이자 “권력의 남용”이라고까지 표현한 상태다.
  이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한 ‘존재’를 버젓이 지우는 행위는 비극적이게도 우리가 처음 마주하는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도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나 특정 단체들의 입을 통해 역사는 난도질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 대해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는 그들이 지닌 사회적 정체성과 이로부터 나오는 권력의 무게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자의 언행은 결코 모래 위 글씨처럼 작은 물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만한 것이 아니다. 램지어의 논문은 왜곡된 자료를 바탕으로 충분한 검토마저 부재한, 허황된 주장에 불과했지만 그가 가진 ‘이름’으로 인해 이는 누군가에겐 좋은 구실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행위는, 곧 다양한 지배 이데올로기 및 혐오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자 폭력의 재생산 그 자체가 된다. 학문적 권위를 가진 이의 펜 끝은 쉽게 칼날이 되는 것이다. 이제 ‘학문의 자유’라는 말조차 모욕적인 표현으로 만들어버린 그들에게 고한다. 그런 ‘자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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