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희 / 육아정책연구소 소장

 

방치된 목소리, 아이들은 어디로 ② 육아의 전선

사회는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들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가진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들 정도의 아동학대가 잇따르고 있다. 이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아동을 주체적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미성숙함을 드러낸다. 이번 기획에서는 아동학대 사례를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해결방안을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찾아가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아동학대의 어두운 그림자 ② 육아의 전선 ③ 사회로부터 단절된 아동 ④ 훈육과 학대 사이의 침묵

 

어린이라는 존엄한 세계를 지키는 힘

 

박상희 / 육아정책연구소 소장

 

 

 

  전 세계적인 감염병이 해를 넘기며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하고 있다. 혹자는 코로나19 사태를 일컬어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도 한다. 방역에 앞장선 의료 인력들이 군인이고, 중앙대책본부는 사령관인 셈이다. 개인들은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바이러스라는 총알을 피해 숨어있는 사람들이 되겠다. 무릇 전쟁이란 인류가 누렸던 모든 것을 잃게 하고 파괴된 생활의 터전에서 한뎃잠을 자게 만드는 재난이다. 이 가운데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다. 한편, 불안으로 강퍅해진 각자도생의 시대에 삶을 의탁해야 하는 어려움은 전쟁과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연일 보도되는 아동학대의 사례들 또한 그런 경우다.

  아동학대 사건들을 보며 사람들은 개탄한다. 아이 한 명이 귀하고 귀한 초저출산 사회에서 도대체 아동학대가 웬 말인가 하는 우려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아이가 귀해진 시대와 아동학대가 빈번히 발생하는 시대의 기저에는, 불안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안정되지 못한 현재의 삶에 ‘연약하고, 보호해야 하고, 양육해야 하는’ 어린이라는 존재를 품기 두렵다는 성인들의 판단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만큼 내 한 몸 건사하기에도 힘든 지금, 가정을 이뤄 부모가 된다는 건 생각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경제적·환경적 어려움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힘든 환경이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때 결국 힘없고 어린 존재의 고통은 마치 재난에 처한 상황이 된다.

 

아동학대라는 불행의 사이클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가부장제 질서로 살아오면서 자녀에 대한 훈육을 미덕으로 알아왔다. 예전에는 엄동설한에 아이를 내쫓았다거나, 연이어 낳은 딸이라는 이유로 아동을 방치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가부장적 문화에서 부모가 자녀를 학대 혹은 방임하는 것은 남의 집안일쯤으로 치부됐다. 여기에 우리 사회가 처한 아동학대의 본질이 있다고 본다. 아동학대는 재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친권주의의 한계가 가져오는 특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동학대는 더이상 ‘집안일’이 아니다.

  폭력이란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행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동의 지위는 헌법상 제31조 제2항의 보호자의 자녀교육 의무, 제32조 제5항의 연소자의 근로 보호, 제36조 제1항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존엄과 평등을 말하고 있는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헌법은 ‘아동’이라는 용어 대신 ‘자녀’ ‘연소자’라는 용어로 적시하고 있다. 즉, 가족생활에서 보호의 대상이나 객체로 표현해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아동복지법 제4조 제3항에서는 ‘원가정 보호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아동이 가정에서 양육될 수 없을 때는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치하며, 가정에서 분리해 보호할 땐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아동복지법 제15조 제2항에 의해 보호자가 아동학대행위자에 해당될 경우에는 그 의견을 듣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여전히 친권제한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과 민법 사이에 차이가 있어 법률상 보완을 통해 아쉬움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친권주의’로 인한 ‘원가정 보호’를 원칙으로 아동학대 사후 조치가 이뤄지는 현실은 아동에 대한 폭력의 본질을 도외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폭력에 비춰볼 때, 대부분의 아동학대 가해자가 보호자인 것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슬픈 현실이다. 2018년 아동권리보장원의 분석에서도 가해자가 부모인 사건이 77%에 해당하며, 피해아동이 원가정 지속보호에 해당하는 경우는 82%다. 심지어 재학대로 신고되는 사례도 10%를 상회한다. 부모가 가해자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은 재학대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인생 초기에 받았던 부정적 양육이, 평생을 안고 갈 상처의 기억이 된다는 진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동학대의 트라우마는 말할 수 없이 깊게 남기 때문이다.

 

아동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


  한편, 가난이 고드름처럼 달렸던 시절에도 폭력은 있었고 어느덧 부자나라 반열에 오른 지금도 매 맞아 죽는 아동들이 있다. 빈곤이 무조건 개인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아동학대의 배경에는 빈곤이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빈곤아동이 겪는 어려움은 의식주에서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빈곤아동의 경제적 어려움은 불공정한 분배구조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 때문에 선대에서부터 이어온 뿌리 깊은 일일 수 있다.

  1965년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선언한 ‘빈곤과의 전쟁’의 일환으로 헤드 스타트(Head Start)가 도입됐다. 이는 저소득층과 같은 사회 취약계층 중 3~5세의 취학 전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취학 전 교육 기회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교육을 통해 빈곤의 대물림을 해소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결과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유아교육의 뿌리가 됐다. 또한 세계 제일의 유아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일컬어지는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 프로그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지역사회를 살리려는 사회운동의 일환이었다. 이처럼 빈곤과 불평등 속 남겨진 아동들을 돕겠다는 사회의 움직임에 그 사회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온 인류의 역사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런 움직임들에서 사회를 질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만드는 태동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적 불황과 비정규직화, 무한경쟁은 불안한 기층민의 삶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게다가 코로나19는 인간들의 연대와 접근을 금하고 있다. 이때 홀로 남겨진 아이들을 찾아내고 빈곤과 불평등이 어떻게 아동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냉정한 고찰과 함께,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먼저 아동학대의 예방을 위한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신고의무자들을 특정하고 그들에 대해 예비적 교육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고단계에서 아동학대 전문가가 판단할 수 있도록 대응체계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아동학대의 가해자가 보호자인 경우가 많다는 특성에 비춰볼 때 재학대 방지를 위한 가해자 치료 및 교육, 아동학대 신고 의무 강화, 피해아동을 보호할 시설과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아동학대 관련 예산 확충 등의 해결책을 제시해 본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존재에게 당한 폭력의 트라우마는 길고도 깊어서 전 생애주기에서 그 상처가 반복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를 온 힘을 다해 막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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