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 / 문학평론가

 

‘음의 태양’ 발명의 의의와 시의 미래

신수진 / 문학평론가

 

  김영산은 〈우주론과 현대시론의 상관관계 연구〉(2016)에 이어 〈음의 태양의 시와 시학〉(2021)까지 우주문학의 명제를 반복적으로 논의해 왔다. 우주문학 선언의 요지는 ‘음의 태양’의 출현이다. 논문에 따르면 음의 태양은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초거대 블랙홀을 의미한다. 이를 바탕으로 양의 태양에서 기인한 인류의 사유와 문학을 전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의 태양과 우주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고 있으며 문학 역시 국지주의를 넘어 지구문학과 우주문학이 도래하고 있다.

  연구자는 〈샴쌍둥이지구〉, 〈푸른 해〉, 〈폐쇄병동〉 등 52편의 창작시를 게재하고 그 이미지 분석을 통해 양의 태양의 한계성과 그 대안으로서 음의 태양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우주문학론에 대해 전망한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제가 ‘병원’이었던 것처럼 논문에서는 이 시대 역시 불구적 상태에 처해있다고 진단한다. 지금까지 한 개의 태양을 중심으로 한 사고는 남성과 여성, 유와 무, 양과 음 등 이분법적 도식으로 전개돼 권력 체계를 생성했는데 음의 태양은 이 대립항들을 관장한다. 천체의 원리를 문학적 상징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이 시도는 ‘초중량블랙홀=검은 블랙홀=검은 태양=푸른 블랙홀=푸른 해’라는 공식으로 도출된다.

  한편, 김영산의 시 쓰기는 《詩魔》(2009)에서 《하얀 별》(2013)로 그리고 미완성 시집 《푸른 해》로 통합되는데, 이 기획 속에서 십 년 넘게 한 인물과 조우해 왔던 것을 주목할 만하다. 시인 묘지기는 시 속의 여러 등장인물의 화신인데 “그 시인, 처녀 묘지기의 묘지기 애인, 하얀 별의 죽은 애인, 웹툰 작가의 아버지 시인, 폐쇄병동 시인 강규식, 그리고 그 시들을 쓴 김영춘(필명 김영산)”까지도 동일인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 또 “피아니스트 소녀, 갈래머리 소녀, 공동묘지 피아니스트 묘지기 처녀, 상복 입은 여자, 하얀 별”로 순환하는 시 속의 여성 인물들의 계보 역시 한결같이 시인이 지명하는 ‘푸른 해’ 즉 음의 태양으로 수렴될 것이다. 이렇게 변주되는 묘지기 시인의 ‘폐쇄병동’ 이야기가 ‘푸른 해’를 지향하는 ‘샴쌍둥이지구’의 현실태다.

  정과리에 의하면 우주문학은 “문학의 사담화, SNS, 문학의 존재 이유 상실, 세계문학의 확산” 등의 상황에서 탄생했다. 우주문학은 지구의 파괴를 딛고 전장의 폐허에서 나온 대안 운동인 것이다. ‘주술의 문학화’라든지 ‘성 해방’ 또는 ‘육체와 관념의 전도’ 같은 새로운 생각과 어법의 창출을 그 방법론으로 삼아, 이성 중심주의로부터 소외되고 추방돼 문학의 경계 바깥에 선 존재들을 명명하고 우주문학의 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그 목적이며 의의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우주문학의 핵심으로 음의 태양을 “발명”한다. 그것은 “관념의 기호가 아니라 실재하는 태양의 태양”이자, 태양보다 300만 배나 더 큰 질량을 가진 블랙홀을 뜻한다. 그러나 “빛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별인 블랙홀 모두 ‘음의 태양’이 아니라 우주 은하의 중심에 있는 거대 블랙홀만이 ‘음의 태양’”이 된다. 연구자는 이를 ‘푸른 태양’으로 호명하는데, 온 우주의 중심이 되는 거대 중력이 거대 척력과 밀고 당기며 사랑하는 바로 이 지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연구자가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시문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태양을 비롯한 우주 과학적 지식을 문학적 상징으로 변환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다. 연구자는 우리 은하의 중심에 태양보다 큰 음의 태양이 발견됐고 양의 태양은 음의 태양을 2억 5천만 년에 걸쳐 돈다고 설명한다. 이때 “양의 태양의 사유는 ‘음의 태양’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지구만의 ‘태양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융합을 통해 팽창하며 빛과 열을 발산하는 태양은 초신성이 돼 폭발하거나 블랙홀이 되는 운명을 내재하고 있다. 그중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 블랙홀을 연구자가 음의 태양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양의 태양과 음의 태양이라고 지칭하면 그때 음과 양은 동등한 개체나 성질이 서로 대립하는 항으로 이해될 것이다. 이를테면 N극과 S극이나 여성과 남성처럼 양과 음의 태양도 그런 대비적 속성을 지니고 양립해야 한다. 그러나 음의 태양이라 칭한 중심 블랙홀을 양의 태양이 공전하고, 그 질량이 300만 배나 차이가 난다면 동일 사건의 양면에 존재하는 음양의 대립 관계라기보다는 주종 관계가 성립된다.

  태초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축적해 온 인문·사회·과학·예술 등 전방위의 이론들을 발췌하고 있는 이 우주문학론의 결론은 결국 통섭적 사고의 맥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과학적 사실과 문학적 대입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태양의 지배하에 이분화돼 온 역사를 넘어서 태양의 태양격인 음의 태양의 패러다임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자가 본인의 시적 재능을 우주문학이라는 광대한 전략과 결합함으로써 현재의 병폐를 치유하고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그 도전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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