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1.4.7 수 01:33
기획
[중앙아카데미아] 세계 최초의 우주문학 선언김영산 / 문학예술콘텐츠학과 박사
안혜진 편집위원  |  ahj3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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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호]
승인 2021.04.06  12: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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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태양의 시와 시학』 김영춘 著 (2021, 문학예술콘텐츠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문학예술콘텐츠학과 김영산의 박사논문 『음의 태양의 시와 시학』을 통해 우주문학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해당 개념을 선언하게 된 경위를 알아보고자 한다. 본 글에서 연구자를 지칭하는 이름은 필명인 김영산으로 통일한다. <편집자 주>

 

세계 최초의 우주문학 선언

김영산 / 문학예술콘텐츠학과 박사 

 

   
 

 

  우주문학 선언은 ‘음의 태양’의 시대를 선언하는 것이다. 이제 인류가 누려온 ‘양의 태양’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은하의 중심에 태양보다 300만 배나 큰 음의 태양이 발견됐다. 그리고 태양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제 지구만의 ‘태양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의 태양은 음의 태양을 2억여 년에 걸쳐 돌고 돈다. 은하 중심의 음의 태양이 우주의 중간지대다. 이때 1천억 개 우주 은하의 중심마다 우주의 중간지대가 있다.

  이 음의 태양의 발견은 우주문학의 현실화를 의미한다. 음의 태양은 은하태양이다. 푸른 빛을 띠는 푸른 태양이다. 검은 빛을 띠는 검은 태양이다. 이 초중량 블랙홀이 ‘음의 태양’임을 입증하는 과학적 사례는 많다. 인문학과 시의 영역에서도 음의 태양이 떠오른다. 우주의 중심의 ‘중심’이 음의 태양이다. 지구의 중심의 중심도 있다. 온갖 사상과 종교, 역사가 있는 한반도가 지구의 중간지대인 것이다.

  인류는 정확히 절대성과 상대성의 두 세계로 쪼개져 있다. 지구 위기도 거기서 온다. 그래서 상대성과 절대성의 세계가 하나인 ‘우주성’의 중간지대 발명이 절박하다. 양의 태양과 음의 태양이 동전의 양면인 것처럼, 음의 태양은 절대성과 상대성이 하나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모든 신과 인간의 문제도 여기서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음의 태양이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보다 빠른, ‘생각’이란 물질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생각이 물질이라는 걸 안다면 음의 태양의 물질도 작동된다. 이제 인류는 ‘양의 태양’의 사유 대신 ‘음의 태양’의 사유로 전환해야 한다.

  다른 표현을 빌려 오자면, 음의 태양은 ‘빛나지 않는 별’ 즉 초중량 블랙홀을 의미한다. 블랙홀이 별이라는 생각은 ‘보이지 않는 별’과 ‘보이는 별’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동양의 ‘음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은연중 태양은 남성성으로 이념화한다. 지금껏 인류의 사고는 태양 중심, 즉 남성 우주에 맞춰진 것이 사실이다. 태양에서 신성을 찾고, 왕의 권력을 찾고, 원만한 성품을 찾더라도 그 한 개의 태양 안에서만 우리는 꿈꾼 것이다. 다시 찾더라도 ‘보이는 태양’만을 그리는 것이다. 꿈에라도 왜, 태양의 태양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는가. ‘보이지 않는 태양’, 수백만 배나 더 큰 태양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했는가.

  천체우주론의 과학은 철학과 문학 등에 암흑물질과 광채로 동시에 다가온다. 우주의 광기, 즉 광기(光氣)와 광기(狂氣)는 하나로 작동된다. 보이지 않는 광기를 암흑물질이나 블랙홀이라 말한다면 보이는 광기를 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은 분리될 수 없는 우주의 신체를 지녔다. 우주의 몸은 보이지 않는 별과 보이는 별로 이뤄진, 어마어마한 별이다.

  본 논문에서 우주문학 선언은 총 5부로 이뤄졌다. 1부는 우주문학의 선언, 2부는 우주문학의 두 겹의 꽃잎, 3부는 샴쌍둥이지구의 탄생, 4부는 시의 비석 우주의 비석, 5부는 하얀 해와 숱한 푸른 해들이 발화한 우주문학이다. 이때 2부 우주문학의 선언은, 우주의 장소성이라는 꽃잎과 우주의 주술성 혹은 음악성이라는 꽃잎, 즉 두 겹의 꽃잎을 피우고 있다. 또한 3부의 우주문학의 선언은 샴쌍둥이지구의 극장(1)과 샴쌍둥이지구의 극장(2)이다. 그리고 4부의 우주문학의 선언에는 샴쌍둥이지구의 비석과 세 겹의 꽃잎, 총 네 겹의 텍스트가 있다.

 

우주문학은 신세계문학이다


  한국문학의 광기에서 우주문학은 발명된다. 그래서 한국 우주문학의 기원에 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문학과 지구문학의 발견과 발명은 서로 순환하는 우로보로스(Ouroboros)보다 큰 우주팽창이론으로 급속히 팽창할 것이다. 단순히 급팽창이 안 되려면 코스모스 문학(Cosmos Literature)보다는 카오스모스 문학(Chaosmos Literature)이란 이름으로 호명하는 것이 옳다. 우주문학은 작가의 내면에서 점화돼 쏘아 올려지는 우주선이다.

  한국 우주문학의 기원을 밝히고, 이를 선언하는 일이 먼저이지만 역으로 우주문학은 자국문학의 단계를 벗어나려 한다. 정과리는 《현대시》 1월호에서 “지금의 현실은 모든 문학들이 자국문학의 단계를 지나 세계문학으로, 다시 말해 지구문학으로 재편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사정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김영산은 대뜸 ‘우주문학’을 선언하고 나왔다”라고 했다. 정과리의 ‘선언적’ 글이 ‘선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우주문학은 전위이며 전복이며 시의 개벽이다. 지구 대지와 우주 대지의 ‘움직이는’ 영토(領土)와 영토성(靈土性)을 언어의 우주로 확장하고, 지구 대지에서만 자란 사상의 나무와 꽃과 열매에는 더이상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리란 것을 예견해야 한다. 초현실주의가 “‘노동하기로 동의’하지 않는” 손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파괴를 짚고 전장에서 나온 예술운동이라면, 우주문학은 지구 전체의 파괴를 짚고 전장에서 나온 그 무엇이다. 이제는 ‘지구의 인간공장은 실패했다’라는 선언이 필요할지 모른다. “태평양 복판 한반도 3배 쓰레기 섬”이 생겨나고, “5번 과거 대멸종, 생물 95% 사라져” “여섯 번째 대멸종 온다”고 “지질학자들”이 선언해서만이 아니다. 인류 탐욕 때문임을 예견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인류의 ‘걸음’은 우주로 확장된다. 사피엔스의 과학 기술은 우주가 땅이고 ‘움직이는 부동산’임을 알아버렸다. 중력과 척력, 암흑물질, 암흑에너지가 대지가 되는 공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중력의 우주에서 ‘중력파’의 발견으로 중력문명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우주 과학을 먼저 선점한 강대국에서 제국주의의 발상이 감지된다. 우주 제국주의가 도래하고 있다.

  지구의 불모성이 지구의 불구성으로 가는 동안 (구)세계문학은 무엇을 했는가. 지구의 불구를 모르고 푸른 청산 푸른 바다를 계속 훼손한다면 각 나라의 국경은 공동묘지 구획에 불과할 것이다. 불모성이 자유를 낳았다면 불구성은 기형의 자식을 낳는다. 이미 지구는 샴쌍둥이지구가 돼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구)세계문학이 하나의 양의 태양을 가졌다면 (신)세계문학 즉, 우주문학은 천억 개의 음의 태양을 가진다. 우주 화쟁은 음의 태양을 발명한 데서부터 비롯된다. 하나의 하얀 해와 우주의 숱한 푸른 해들, 우리네 청산별곡 같은 숱한 푸른 블랙홀인 음의 태양을 노래하고 그리는 것이 우주문학이다.

  화이트헤드(A.N.Whitehead)의 《관념의 모험(Adventures of Ideas)》(1933)에 나오는 ‘우주론’ 역시 한 개의 태양을 가진 인류의 관념인지 모른다. 마호메트교도와 불교도, 기독교도와 과학의 기도는 숱한 음의 태양들을 만나며 은하태양을 완성해 갈 것이다. 인류의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광기도 마찬가지다. 음의 태양은 우주의 완전함과 불완전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음의 태양은 양의 태양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린 남성우주, 여성우주, 중성우주 경계의 중심이 되는 ‘우주성’을 찾아야 한다. 지구 위기를 극복하는 일은 하나의 ‘양의 태양 중심주의’를 극복하는 데 있다.

 

음의 태양과 우주개벽

 

  우리 은하의 중심에 태양보다 3백만 배나 큰 음의 태양이 존재한다. 그 태양의 태양은 푸른 빛을 띠는 푸른 태양이자 은하태양이다. 우리의 태양은 그 거대 태양을 돌고 돈다. 우리 태양이 은하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2억5천만 년이 걸린다. 우리는 은하달력으로 보면 22은하년을 살고 있다. 우리 태양계는 그 음의 태양, 즉 은하태양을 돌고 은하태양은 은하단을 돌고 은하단은 대우주를 떠돈다.

  1천억 개가 넘는 우주 은하의 중심마다 1천억 개가 넘는 음의 태양이 존재한다. 이 보이지 않았던 태양이 인류에게 보이는, 음의 태양의 출현은 음개벽이다. 우주성은 ‘사람 중심’만이 아니라 온갖 생명과 비생명까지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우주의 블랙홀∙암흑물질∙암흑에너지가 생명체일 수도 있다. 인간이라는 암흑물질과 인간이라는 블랙홀 혹은 인간이라는 별은, 보이지 않는 별과 보이는 별이라는 점에서 다 같은 별이다. 즉, 음의 태양이다. 양의 태양에 가려졌던 우주성 역시 음의 태양이다. 이제 여성우주는 중간지대로 자리 잡아야 하지만, 남성성과 상대적인 대립이 아닌 포용과 평등의 우주성으로 이 시대를 개벽해야 한다. 그 음의 태양, 우주개벽이 우주문학이 될 것이다.

#우주문학 #김영산 #김영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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