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1.4.7 수 01:33
기획사회
[사회Ⅱ] '이상하다'는 말 아래 속뜻신교정 / 서수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한주 편집위원  |  auchetec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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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호]
승인 2021.04.06  11: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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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안녕하신가요?] ② 시간과 시선에 따른 변화들

정신건강이란 단어에 새겨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정신의 불편을 말하면, 왜인지 모를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게 된다. 정신질환 진료와 관련해서 양지보다 음지에 있다는 편견이 더 크고, 그렇기에 이와 관련해 마음 편히 논의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건강한 정신을 위한 본질적인 해결책으로는 무엇이 있을지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낙인이라는 굴레 ② 시간과 시선에 따른 변화들 ③ 미디어에 담긴 정신건강 ④ ‘건강한’ 정신을 위해

 

   
 

 

‘이상하다’는 말 아래 속뜻

 

신교정 / 서수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필자는 정신과 의사다. 필자가 처음 ‘정신과’에서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도시락을 싸들고 말렸다. ‘거기 가면 같이 미친다’는 게 이유였다. 심지어 큰아버지께서는 호적에서 파겠다는 엄포까지 놓으셨다. 그럼에도 필자는 정신과를 선택했고 다행히도 근 20년째 미치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아마 큰아버지께서 살아계셨더라면, 당신의 그때 협박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싶다. 큰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정신과에 대한 편견은 이제 거의 없다. 과거에 비해 정신과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부정적인 생각들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남아 있다. ‘쟤 좀 이상해. 정신과 가봐야 하는 거 아냐?’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이 말엔 정신과란 ‘비정상인’이 가는 곳이라는 뜻이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정신질환이란 무엇인가

 먼저 정신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신질환은 크게 신경증(Neurosis)과 정신증(Psychosis) 그리고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로 분류된다. 둘의 성격이 크게 달라 분리하긴 했지만, 신경증과 정신증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뤄져 있다. 둘 다 신경 전달 체계의 이상이라는 뇌의 구조적 이상으로부터 온다. 또한 약물 치료를 원칙으로 하며, 여기에 ‘면담’으로 알려진 정신치료를 추가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이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 추세이기도 하다. 실제로 두 질환은 종종 동시에 오기도 한다. 이에 동반된 우울 혹은 우울증에 동반된 정신병적 증상처럼 말이다. 다만 최근 정신병이라는 단어는 조현병으로 이름이 변경되기도 했다. 여하튼 우선 이 글에서는 필요상 정신증과 신경증을 구분해 설명하고자 한다.


 신경증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우울·불안·불면 등이 속해있다. 어떤 사건을 겪고 난 뒤에 오는 경우가 흔하다. 그 사건이란 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쉬이 마주치게 되는 것들이라, 신경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에 비해 정신증은 좀 다르다. 이 증상은 특정 사건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생기는 건 아니다. 정신증의 특징은 현실 검증력이 깨지는 것, 간단히 말하자면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것’이다. 환청·환시·환후처럼 외부자극이 없는 감각을 느끼거나 실제로 없는 것을 있다고 믿으며, 이에 대한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시켜줘도 깨지지 않는 믿음을 품는 게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당사자에게 이러한 증상은 굉장히 두렵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를 원인삼아 종종 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생각보다 낮은 확률이지만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면에 성격장애는 이 둘과 확연히 다르다. 다른 말로 ‘기질’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한 쪽 다리가 짧은 친구, A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A가 넘어져 짧은 다리가 부러졌다. 병원에서 수술도 하고 깁스도 해서 ‘완치’됐다고 했을 때, 누구도 A의 다리가 길어질 것을 예상하지 않는다. 설령 다리가 짧아서 반복적으로 넘어지고, 그걸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자꾸 부러진다고 해도 다리 길이를 고쳐줄 수는 없다. 여기서 ‘짧은 다리’가 의미하는 게 기질이며, 정신과에선 이 부분을 성격장애로 본다. 성격장애는 최근 겪은 사건으로 갑작스럽게 생기는 게 아니다. 보통 15세쯤에 성격 형성이 시작되고 한 번 자리 잡으면 거의 변화 없이 인생을 통틀어 전반적으로 지속된다. 본인이 크게 이상을 못 느끼고 자신의 생각을 ‘누구나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이질적으로 느끼지도 않고 그래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경과가 썩 좋은 편도 아니다.
 

치료와 입원에 대해
 

 신경증에 대한 오해는 이제 거의 없어진 것 같다. 연예인들이 TV에 나와 자신이 어떤 질환으로 무슨 약을 먹고 있으며 현재는 어떤 상태인지 가감 없이 이야기를 할 정도다. 그들의 용기 있는 고백 덕분이기도 하고 그런 고백이 가능하게 된 사회적 인식의 변화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신증과 인격 장애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해가 심하다. 앞에 들었던 예시에서 ‘치료’로 다리가 길어지지는 않았다. 소위 사회가 규정한 ‘정상’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질감이 들지 않는 건 치료는 사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질병’엔 치료를 통해 돌아가야 할 원래의 모습이 있다. 여기에 비춰 보면 정신증은 질병이다. 그래서 치료를 하면 돌아갈 본래의 형상이 있다. 그러나 인격 장애는 아니다.


 몇 년 전부터 끔찍한 사건들이 보도됐다. 그때마다 기사 제목에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라는 단어들이 달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저런 건 정신과에 넣어야 한다’ ‘영영 꺼내주면 안 된다’는 내용의 댓글이 있었다. 그러나 실상 ‘저런 사람들’은 정신과 입원실에 없다.‘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는 기질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도 정신과 진료를 받았을 수는 있다. 외래에서 수면제나 우울증 약을 먹었을 수 있다. 때로는 술이나 약물 오남용으로 사고를 일으켜 입원을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니 기사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내용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저 기질을 치료 받았다는 의미로 통하기는 힘들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신증 같은 정신과적 질환은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입원이 이들의 사고 예방을 위해 사용되니 입원 환자들 중 ‘위험한’ 사람이 있는 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질환’이고 치료를 해서 돌아갈 본 모습이 있다. 본 모습은 여느 누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운전자가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고 사고를 냈을 때 이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질환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환자들도 그렇다.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지만 ‘가둬야 할’ 만큼의 비난이 마땅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또 아무리 재발이 잦은 질환이라 해도 완치가 되면 퇴원하는 게 맞다. 때로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을 수도 있지만 ‘영영 갇혀 지내야’ 마땅한 것은 결코 아니다.
 

변화는 아직인지 모른다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말은 이 글을 청탁받기 전부터 자주 들었다. 그런데 변화라는 것은 환자와 의사보단 ‘주변인’에게서 벌어진 일에 가깝다. 주변인들이 바라보는 진료실 안, 환자와 의사에 대한 시선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필자는 진료실 안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잘 모르겠다. 감기에 걸렸다고 바로 병원에 가지 않듯 환자들은 진료실 문까지 오기가 제일 어렵다. 버티다 정 죽겠을 때 병원에 간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일단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땐 ‘죽겠어요!’가 주된 내용이다. 정신과도 그렇다. 그래서 이들이 여기 오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걱정들을 하다 병원에 내방했는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들을 길이 없었다.


 다만 TV에 나와 연예인들이 본인의 정신과 치료력에 대해 언급하는 모습과 ‘소아정신과’가 유행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아 뭐가 나아지긴 했나 보다’ 싶을 때가 있다. 브라운관에서 스스로 자신의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실을 언급할 수 있게 됐으며 부모가 아이들을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게 된 모습을 보면, 정신과라는 개념이 그렇게 혐오스러운 건 아닐테니 말이다. 정신과를 찾는 인식은 앞서 필자가 언급하고 느꼈던 것보다 훨씬 긍정적으로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변화는 입원실이 아닌, 아직 외래에만 멈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최근의 사건들을 언급한 바 있다. 이제는 그보다 훨씬 전인 2018년, 〈곤지암〉이란 영화가 화제된 그때를 마지막으로 회상해보려 한다. 당시의 정신과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보다 긍정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멀쩡한 사람을 가두는 곳’에 가까웠다. 그 사이 입원실 안 사람들은 크게 변한 게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일련의 극단적 표현들을 보면 아직도 그 옛날, 우리 큰아버지 생각에 머물러 있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쟤 좀 이상해. 정신과 가봐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소리에 가슴 한편이 더욱 아리게 다가오는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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