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현재와 미래]

 

허락되지 않은 정체성

  2019년, 경북대 실험실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본 사건은 대학사회에 충격을 안겨준 것은 물론, 학생연구원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수면 위로 드러나게 했다. 특히 사후 처리와 관련해 학생연구원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지점이 문제시됐다. 이는 학위 과정 중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학업의 연장선일 뿐, ‘일’로 볼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실제로 경희대 대학원생 A씨는 “석·박사 연구(보조)원들은 대부분 연구 과제의 수행뿐 아니라 영수증이나 비품 처리, 자재 운반 등의 행정적 업무까지 맡고 있다. 가끔은 내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모르겠다”며 자조적인 웃음을 보였다. 이처럼 학생연구자들은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함과 동시에 학생이라는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과연 우리는 그들이 ‘하는 것’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할까. 본 글에서는 대학원생이 지닌 모호한 정체성과 관련해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한다.

대학원생이면 안 돼요

  작년 여름, 경기도에 아파트를 청약한 타교 대학원생 B씨 부부는 중도금대출이 나오지 않을까 봐 수개월 간 전전긍긍했다. 연구 과제를 통해 발생한 소득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은행에 제출해야 하는 소득증빙서류 목록을 보고 당황했다고 한다. 당시 근로소득자는 재직증명서 및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을, 사업소득자는 사업자등록증 및 소득금액증명원을 제출하라고 안내를 받은 가운데, B씨 부부의 ‘과제인건비’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작년도 신용카드 사용금액으로 추정소득을 산정해 겨우 대출을 받았으나 “대학원생들은 청약이 되더라도 대출조차 쉽게 받을 수 없는 것”을 깨달았다며 “부모님이나 본인이 집값을 낼 여력이 없다면, 대학원생 신분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임을 토로했다.
  대학원생의 연구 인건비는 대부분 기타소득으로 산정된다. 기타소득이란 강연료, 대학원생 및 프로젝트 연구원 소득, 경품 소득 등 일시적·비반복적 소득을 뜻한다. 실제로 대학원에 소속된 연구자는 개별 프로젝트에 따라 인건비가 책정돼 4대 보험을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수협은행 주택담보대출 및 중도금대출 담당자 C씨는 “기타소득을 통해서는 계속 일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짐작하기 어려워 대부분 신용카드 추정소득으로 전환해 대출 심사를 진행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전액 현금으로 집을 구입할 수 없다면 울며 겨자먹기로 신용카드라도 미리 사용해 실적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등록금·책값·교통비 등에 치이며 한 푼이라도 생활비를 줄여보려는 원생들은 ‘써야만 하는’ 상황에 난감하기만 하다.

빚조차 받을 수 없는, 빛없는 공간들

  2017년 6억 대이던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올해 11억 가까이 급등했다. 수도권의 상승률도 만만치 않아 수도권 평균 아파트값은 4억681만 원이다. 이처럼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갈수록 원생들의 주거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앞서 B씨 부부처럼 신용카드라도 사용해 추정소득을 산정할 수 있는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신용도가 낮거나 혹은 프로젝트를 수행하지 않아 기타소득조차 없는 원생들은 매매는커녕 당장 전셋집을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라고 호소한다.

  현재 본교에서는 일부 실험·실습·실기 수업을 제외한 모든 수업을 원격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취업 준비나 실험 등을 위해 학교를 찾는 원우가 여전히 많다. 기숙사 선발에서 떨어진 이들은 청년전용버팀목자금 등 정부의 전세 대출을 알아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해당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임차 전용면적 85㎡ 이하, 임차보증금 1억원 이하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 근처에서 이 금액으로 집을 구하기 위해선 대부분 반지하나 옥탑방에 해당하는 열악한 환경만 남는다.

  발품을 들여 맘에 드는 집을 찾아내더라도 ‘정부 대출’이라고 말하면 상대의 표정은 대부분 좋지 않다. 부채 공개에 대한 거부감, 서류 과정의 복잡함, 권리분석 확인 절차에 대한 시간 소요 등으로 집주인들이 계약을 꺼리기 때문이다. “전세 대출의 대기자들도 많고 안 될 것이 뻔해서” 고시원 입주를 결정한 본교 대학원생 D씨(석사과정)는 “방이 좁아서 답답하지만 학교 주변의 월세가 너무 비싸 어쩔 수 없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본지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난 원생들은 모두 씁쓸한 웃음이나 말끝에 깊은 한숨을 덧붙였다. 미래의 꿈을 위해 빚을 내서라도 공부하려고 하는 결심은, 빚조차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 앞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강사법,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고생 끝에 박사과정을 수료하거나 학위를 취득한 연구자들이 현실에 느끼는 불안감도 만만치 않다. 이들이 기관의 정규직 연구원이나 정식 교수가 되기 전까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로 선택하는 방법은 강의다. 그러나 일명 ‘강사법’이라 불리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여파로 대대적인 ‘강사 구조조정’이 발생해 학문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2019년 8월에 시행된 강사법은 ▲3년 이상의 재임용 절차 보장 ▲방학 기간 임금 지급 ▲퇴직금 및 4대 보험 가입 의무화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자 인건비 부담을 느낀 상당수의 대학에서 법적으로 교원의 지위를 부여받지 않는 겸임교수나 초빙교수로 채용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교육부의 ‘2019년 10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9년도 2학기 강좌 수는 지난해 2학기보다 5천815개 줄어든 29만71개로 나타났다. 당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2019년도 1학기에 약 2만 명이 해고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교육부가 1만 명으로 해고 인원을 추산한 것과 비교했을 때 두 배 이상의 수치로, 현장에서 일자리의 불안정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자 교육의 질 저하, 고급 인력 유출, 실업난 등을 우려한 정부는 사립대 강사 처우개선 사업을 제안한 바 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예산의 70%를 국고로 지원하고 나머지 30%는 대학이 사학진흥기금의 융자로 메우는 강사법 예산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해당 사업에 대한 국고 지원은 264억 5천1백만 원으로, 작년과 비교했을 때 전체의 38%가 삭감됐다. 코로나로 대학이 재정난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줄어든 국고 보조로 인해 강사들이 대거 실직을 당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과연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강사들은 행복할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의 박중렬 위원장은 “강사법 시행 이후로도 방학 중 임금은 연간 4주만 지원되고 단시간 근로자라 직장건강보험 가입대상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강사법의 미흡한 조처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교육부와 대학에서 강사들의 삶을 위한 후속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기에, “지나치게 재원에만 초점을 맞춰 강사의 일자리를 축소하기보다는 신진 연구자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행법에서 퇴직금은 주당 15시간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 적용되고 있다. 강사들이 한 대학에서 주당 6시간 이하의 강의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퇴직금을 받기 위해선 대학의 ‘배려’에 오롯이 기대야만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근로자의 권리인 퇴직금 제도는, 누군가에겐 눈치를 보거나 법리 공방을 벌여야 하는 일이 되는 형편이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면서 대학의 재정난은 심화되고 있다. 대학 측에서 경영난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인건비 절감이다. 그러나 신진학자들의 처우를 배제한 상태로 학계의 구조개혁이 이뤄진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적인 손실과 함께 학문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대학원생의 정체성조차 확립되지 못한 사회에서 우리는 정말 석 · 박사생들과 박사수료생 및 졸업생들에게 학문적 성취에만 전념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안혜진 편집위원 | ahj3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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