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숙 / 만화평론가

[특집 인터뷰] '자유'의 불시착

웹툰계를 둘러싼 ‘표현의 자유’ 논쟁이 연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더불어 작품 검열에 대한 논의와 웹툰계 노동 환경 문제도 함께 떠오른 상태다. 인터뷰를 통해 일련의 이슈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특정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리에겐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조경숙 / 만화평론가

 

■ 최근 웹툰계에서 ‘여혐논란’ 타이틀과 함께 문제작들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왔다

   가장 크게 이슈가 됐던 건 2020년 8월 웹툰 〈복학왕〉의 ‘광어인간’ 에피소드다. 작중 여성 인물인 ‘봉지은’이 회사 팀장의 눈에 들기 위해 조개를 배에 놓고 쾅쾅 내려찍은 연출이 문제가 됐다. 많은 독자가 이 장면이 성교 행위를 은유한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해당 연출은 수정됐다. 그렇지만 이 장면뿐만 아니라 ‘광어인간’ 에피소드에서 봉지은이 이전 에피소드와의 일관성을 잃고 편향적으로 그려진 데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9월에는 웹툰 〈헬퍼〉가 논란에 올랐다. 사실 〈헬퍼〉는 이전에도 선정적인 연출뿐만 아니라 캐릭터 붕괴 등 여러 이유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었던 작품이다. 다방면에서 독자들의 비판이 상당히 오래 축적돼 왔는데도 특별한 피드백 없이 계속 연재가 이어지다가, 미성년자 성폭력 장면을 그리면서 그간 쌓였던 독자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터진 사례로 볼 수 있다.

 

■ 이번 이슈를 통해 웹툰 자율규제의 역사가 함께 조명됐는데

   만화계는 오랫동안 검열과 싸워왔다. 1961년 시행된 만화 사전심의제는 1990년대 중반까지 유지됐는데, 그중에서도 주로 검열의 칼날을 맞은 건 순정만화였다. 검열의 수준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정도였다. 한 컷 안에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으면 안 된다거나 치마를 반드시 무릎 아래 길이로 그려야 한다는 등 아주 세세하게 규정이 있었다. 이런 사전심의제는 1997년 청소년 보호법 개정과 함께 사후 검열로 바뀌게 된다. 그렇지만 오히려 규제는 더 심해지는 양상을 보였고, 심지어 이현세 만화가가 〈천국의 신화〉로 ‘음란 만화’를 제작했다며 검찰에 소환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만화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하위장르 문화 중 하나가 아니라 ‘청소년 유해 문화’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만화가 검열에서 다소 자유로워진 건 온라인 덕택이었다. 출판되지 않는 온라인 만화-웹툰의 특성이 그나마 검열에 있어서 자유를 마련해준 것이다. 그렇지만 2012년 방송통신심의 위원회가 ‘폭력 웹툰’을 규제하겠다며 나섰고, 1997년 청소년 보호법 개정 사태부터 지속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외쳐 온 만화계가 이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오랜 투쟁의 결과로 쟁취해 낸 것이 바로 지금의 자율규제다. 국가기관에 심의 · 검열을 맡기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래서 현재 웹툰계는 한국만화가협회 부설로 ‘웹툰자율규제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모든 작품을 발행하기 전에 이 위원회를 거치는 건 아니다. 웹툰자율규제위원회는 만화 플랫폼사의 자발적인 업무협약 참여에 기대어, 연령별 등급을 제정하고 적용하는 등 폭넓은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들을 일일이 직접 검수하거나 규제하는 역할을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런 점이 한계라고 볼 수 있다.

 

■ 현재 혐오표현과 관련된 문제는 자연스럽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 상태다

   〈뷰티풀 군바리〉(2015)를 중심으로 독자들이 여성 혐오 표현에 관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부터 웹툰에 대한 비판은 검열이나 표현의 자유 위반이라는 혐의로 직결됐다. 그러나 2015년 조익상 만화평론가가 지적했듯이, 본래 표현의 자유가 생겨난 건 국가기관에 의한 검열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국가권력에 의해 국민 개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표현의 자유가 하나의 권리로서 명문화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웹툰 독자가 작가에게 비판하는 것을 검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독자들이 ‘국가권력’을 가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비판들은 웹툰 속에서 독자와 작가가 나누는 상호소통의 특성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한편, 일부 독자들이 웹툰에 혐오 표현이 등장했을 때 청와대 청원 사이트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해당 웹툰을 고발했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는 댓글을 남기거나 SNS에 포스팅을 올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 고안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거쳐 온 만화의 역사에 비춰 봤을 때, 이런 방식은 다소 위험한 행동이 된다. 다시 국가권력에 검열을 요청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웹툰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라는 단어가 제기됐을 때, 우린 누가 그것을 왜 말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0년 8월 12일, 네이버웹툰은 〈복학왕〉 관련 논란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창작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고 있으나 (중략) 앞으로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작가들에게 환기하고, 작품에 대해서도 계속 긴밀하게 소통하겠다.” 여기에서 플랫폼은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는 주체로서, 그리고 나아가 ‘창작의 자유를 존중한다’라며 말하는 주체로 등장했다. 지금까지 웹툰 내 혐오표현 논란에서 ‘표현의 자유’는 일군의 독자들이 작가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 플랫폼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작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해당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을 짚으면, 현재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는 주체가 누구인지가 선명해진다.

 

■ 그렇다면 혐오표현 논란을 웹툰 작가들의 노동 환경 이슈와 엮어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사실 작가들의 노동 환경은 매우 척박한 편이다. 주 1~2회 연재, 60컷 이상 풀컬러로 연재가 끝날 때까지 계속 달리는 건, 끝나지 않는 ‘마감 기차’에 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실상 웹툰 작가들은 웹툰 연출에 대해 크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 것이다. 또한 웹툰 작가가 마감 시간에 맞추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웹툰을 관리하고 업로드하는 담당 PD 역시 작품을 제대로 검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좋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 작품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막상 연재에 들어가면 작가도, 플랫폼도 그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사실 이제는 이런 질문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주 1회 연재가 꼭 필요한가.’ 혹은 ‘매화 60컷 이상이 꼭 필요한가.’

   웹툰을 보다 보면, 특정 에피소드에서 작가가 이전의 분량보다 훨씬 적게 그렸다며 비난을 일삼는 댓글을 만나게 된다. 마감 시간이 조금만 넘어도 작가를 탓하는 댓글이 넘쳐난다. 그래서 실제로 배달의민족에서 런칭한 만화 플랫폼인 ‘만화경’에서는 작품에 따라 연재 주기를 유동적으로 조정했다. 장편의 경우 격주 1회 연재를 진행하는 식이다. 이런 시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작가들이 보다 퀄리티 있는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 그만큼 작업과 휴식 시간을 줬으면 한다. 결국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게 플랫폼의 책임이라면, 그 시스템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건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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