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현 /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장

우리가 잘못했다 ① 인간이 자초한 불행

순식간에 퍼진 바이러스로 전 세계는 여전히 자연을 건든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는 경각심을 갖고 현재의 재난은 인간이 자초한 일임을 알아야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자연이 보내온 신호들과 생태환경의 현주소를 다룬다. 이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생태학적 가치관의 필요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또한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 우리를 위한 길임을 상기시키려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인간이 자초한 불행 ② 생태중심시스템으로의 전환 ③ 환경범죄 바로알기 ④ ‘자연’과 거리두기

과학적 데이터와 생태위기에 대한 신호들 

 

박숙현 / 지속가능시스템연구소장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널리 회자된 말은 아마도 ‘재난’이 아니었을까. 과거에는 재난이 지진이나 태풍, 폭우 등 갑작스러운 자연의 변화로 발생하거나 화재, 화학물질 유출처럼 부주의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인류 활동의 결과물이 지구 환경을 바꾸는 시대,즉 인류세(Anthropocene)가 도래함에 따라 전염병과 기후변화의 영향이 직접적 원인이 되는 재난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얼마 전에는 인도 북부의 우타라칸드 주(Uttarakhand)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떨어져 댐이 파괴되고 이로 인한 급류가 쏟아지면서 2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근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은 폭설과 폭우, 눈사태 등의 기후변화로 인해 홍수가 잦아진 탓에 댐 건설에 대한 우려와 반대가 있는 상태였다.
 
  기후변화는 이제 ‘기후위기’라는 말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기후변화라는 단어만으로 그 위험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위기와 재난은 서로 닮은 듯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말이다. 위기는 재난으로 가기 전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땐 재난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후위기를 정말 ‘위기’로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위기는 대부분 징조를 동반한다. 과거에는 예측 불가능했던 문제들을 현대에 와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된 통계나 모델을 통해 사전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이러한 과학적 데이터를 신뢰하고 그렇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균형이 무너지는 토양
 
  1972년에 제출된 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는 인간의 생산과정에서 발생되는 환경오염과 자원의 손실이 결국 부정적인 되먹임 과정을 통해 성장의 한계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다.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를 활용한 최초의 데이터 기반의 예측인 셈이었다. 무한한 자원제공이라는 풍요로움의 환상이 깨지고 인류문명 성장에서의 제한을 가져올 요소가 자연자원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실제 약 50년이 된 이 시점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식물성장에 대한 최소량의 법칙을 말한 것으로 알려진 19세기 유기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V.Liebig)는 영국의 산업화된 농업이 토양열화 현상을 일으키는 약탈적 시스템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시라큐스 대학의 제이미 워킹거(Jayme L.Workinger) 연구팀은 “필수 미네랄 가운데 특히 마그네슘은 인간 신진대사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데 미국인의 45%가 마그네슘 결핍 상태”라고 분석했다. 자연에서 얻었던 미네랄의 균형이 산업화된 농법에 의해 불균형 상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칼 맑스(K.Marx)의 자본론에도자본주의적으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방식이 장기적으로는 토양의 기반 자체를 파괴하는 과정이라고 소개된 바 있다. 
 
  윌리엄 코키(K.William)는 《제국 문화의 종말과 흙의 생태학》(2020)에서 “흙이 지구라는 생명체의 내장이자 주요한 소화기관”이며, 유기체들의 살아있는 공동체로 이뤄져 있음을 강조한다. 즉 영속농업을 일컫는 퍼머컬쳐(Permaculture)의 스승인 빌 모리슨(B.Morrison)의 말처럼, 토양 내에는 50%의 균류, 20%의 박테리아, 20%의 효모와 조류, 원생동물, 그리고 나머지 10%의 동물상들이 살아 숨 쉬는 흙을 만들고 있는데, 녹색혁명을 거치고 토양의 균형이 붕괴되면서 영양의 순환고리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넬 대학의 농학자인 수잔 랭(S.S.Lang) 박사가 시행한 조사에서는 토양유실 속도가 자연회복의 10배 이상이며 미국 내에서 이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376억 달러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발표된 바 있다.   
 
  위기가 재난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적 데이터에 대한 신뢰와 대책강구가 필수다. 2020년 4월 8일, 네이처(Nature)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물다양성의 영향이 점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붕괴로 나타날 것이라는 논문이 게재됐다. 이 연구의 대표저자인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알렉스 피곳(A.Pigot)은 1850년부터 2005년까지의 기후모델 데이터를 바탕으로, 3만652종의 조류 · 포유류 · 파충류 · 양서류와 다른 동식물에 대해 교차 참조한 결과, 특정 범위 내의 생물들이 버틸 수 있는 임계점까지는 어느 정도 견디다가 그 지점을 지나면 일순간 붕괴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는 2100년까지 4℃ 상승을 가정할 경우 전체 생물 군락의 15%가 이러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우려했다.
 
 
 
생물 다양성과 생명공동체
 
  생태계 서비스의 대부분은 여전히 자연에 의존하고 있다. 그중 생물다양성은 인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서비스 중에서도 핵심 요소다. 생물 서식처가 파괴되고 빠른 기온상승으로 인해 생물다양성이 붕괴될 경우, 인간이 미래의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도 급격히 감소할 것이다. 이미 단일경작 등으로 농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이 75% 감소됐다. 조류의 1/8, 포유류의 1/4, 침엽수의 1/3이 멸종위기에 있는 와중에 인류는 재난을 피해 갈 수 있을까. 
 
  2020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건설과 관련한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인용재결 판단으로 이 지역의 갈등이 다시 점화됐다. 산양, 담비, 하늘다람쥐 등 멸종위기종의 중요 서식지임에도 불구하고 개발압력이 거세기만 했다. 여전히 다수의 행정기관에선 생물다양성 보존이나 서식지 보호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를 찾아보기 어렵다. 형식적인 환경영향평가서로 인해 그린벨트가 무너지고, 멸종위기종이 사라지고 있다. 한번 사라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 생물다양성이다. 이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서식지를 보호하고, 기후와 환경을 지켜주는 일이다.
 
  산림과학원은 산림의 공익적 가치가 연간 221조(2018년 기준)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때 산림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는 이산화탄소 흡수, 홍수나 산사태 예방 등이 있다. 과연 우린 어떻게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개인의 자산 증대를 위한 산림파괴와 난개발을 저지할 수 있을까. 다수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유재산 보장이라는 제도에 발이 묶여서는 안 된다. 현재의 위기를 대응하는 데 급속한 전환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생물다양성의 붕괴와 함께 인류의 대재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연구의 결과가 보여주는 시그널을 기후위기 시대의 등대로 삼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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