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희 / 중앙대 트라우마스트레스연구실 박사과정 연구원

[정신, 안녕하신가요?] ① 낙인이라는 굴레
 
정신건강이란 단어에 새겨진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제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정신의 불편을 말하면, 왜인지 모를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게 된다. 정신질환 진료와 관련해서 양지보다 음지에 있다는 편견이 더 크고, 그렇기에 이와 관련해 마음 편히 논의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건강한 정신을 위한 본질적인 해결책으로는 무엇이 있을지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낙인이라는 굴레 ② 시간과 시선에 따른 변화들 ③ 미디어에 담긴 정신건강 ④ ‘건강한’ 정신을 위해
 
 
 
 

변화를 위한 ‘돌아가 보기’


 조동희 / 중앙대 트라우마스트레스연구실 박사과정 연구원
 

 코로나 블루.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요동치는 가운데, 이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다. ‘블루(Blue)’는 역사적으로 우울한 감정을 비유하는 단어로 활용돼 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단어는 예측할 수 없었던 광범위한 재난 대처 중에 발생하는 우울감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현재 국가차원에서도 이러한 감정에 대해 널리 알리며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미 OECD 국가 중 1, 2위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자살률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코로나19라는 감염병으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의 추가적인 정신적 손실이 예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코로나 상황에서 우울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여전히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내재적으로 존재한다. 재난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 혹은 불안이나 우울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혹시나 내가 미쳐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염려는 일반적이다. 소위 ‘미친다’는 표현은 ‘정신질환 상태에 놓인다’라고도 바꿔 말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정신질환 상태는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이토록 염려하고 불안감을 느끼는 것일까. 이에 대한 논의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을 역사적 맥락에서 톺아보면 이해할 수 있다.
 
정신질환, 그 인식의 흐름
 
정신질환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질환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하기 시작한 것은 1883년으로, 독일의 정신과 의사 에밀 크래펠린(Emil Kraepelin)이 근본적인 생리적 증상을 암시하는 증상 패턴, 즉 증후군을 중심에 두고 포괄적인 심리적 장애 체계를 발표한 시점에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그전까지는 아주 오랫동안 정신질환에 대해 ‘광기와 저주’라는 인식이 있었다. 한마디로 정신질환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시작과 함께 공존했다고 바라볼 수 있는 가운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이론에서 더욱 구체화시킬 수 있다.
 
 초자연적, 신체적, 심리적 입장의 세 가지 이론을 짚어보자. 우선 ‘초자연적’ 이론에서는 정신질환을 악마 또는 귀신에 씌인 것, 일식과 중력으로부터의 영향, 신의 저주 혹은 죄로 간주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또한 ‘신체형성’ 이론의 경우 신체적 질환, 유전, 뇌 손상이나 불균형으로 인해 정신질환이 발생된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심인성’ 이론은 외상, 스트레스, 부적응적인 학습, 왜곡된 인식에 중점을 둬 이를 질환의 원인으로 파악한다. 이때 이러한 원인들을 각각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치료방법이 결정되는 것이다.
 
 앞서 확인할 수 있듯, 역사적으로 긴 기간 동안 초자연적인 원인이 정신질환을 둘러싼 인식을 지배해 왔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로 영혼(psyche)을 의미하는 단어와 치료(iateria)에서 파생돼 이후 치료행위를 뜻하는 ‘-iatry’가 합성돼 만들어진 ‘Psychiatry’, 즉 정신과를 일컫는 용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에서 정신질환은 악마, 주술 또는 분노한 신에 의해 발생했다는 식의 신념이 공유됐고, 이러한 인식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있다. 이는 정신질환 치료가 발전하고 확대된 현대사회에서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질환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굿을 하거나 부적을 쓰는 등의 해결방법이 공유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관찰된다.
 
 물론 오랜 역사와 함께 정신건강에 대한 패러다임은 변화해 왔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양이 거의 없었고, 이들은 대개 감옥, 구호소에 감금을 당하거나 가족들의 부적절한 돌봄으로 학대받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정신건강에 대한 현대적 접근 방식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윌리엄 스위처(William Sweetser)에 의해 정신위생(Mental Hygiene)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제시되면서, 정신건강의 긍정적인 방향 증진을 위한 초석이 만들어졌다. 이후 다양한 심리적 이론들과 생물학적 치료법들이 생겨남에 따라 정신질환 치료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했다. 하지만 정신질환과 그 주체에 대한 낙인(Stigma)이 남아있기에 의학적 측면에서의 발전과는 별개로 해당 분야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낙인 속 깊어지는 차별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중 7%만이 병원에서 치료받는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온다. 이는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를 받는 일에 사람들이 크게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례로 유교문화를 기반으로 가족의 명예가 개인보다 우선시되는 한국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의 의지와 자기수양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의해 질환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려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일 역시 생긴다. 또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료보험 기록에 있는 정신과 진료에 대한 낙인을 피하기 위해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현금을 지불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위와 같은 낙인은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있는, 혹은 치료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실행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낙인은 종종 이해 부족이나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이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나에게 안전한 사람을 구분하는 뇌의 특성에서 나왔다고도 볼 수 있다. 낙인 발생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사람들은 서로 간의 차이점을 구별하고 분류하는 단계, 즉 라벨링(Labeling)을 거치게 된다. 두 번째로 이러한 차이점에 의해 구별된 사람들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식의 부정적인 고정관념으로 연결된다. 이후 ‘우리’와 ‘그들’이라는 범주에서 ‘우리가 아닌 그들’이라는 범주에 배치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된 이들은 곧 사회적인 지위의 상실과 차별을 경험하며 불평등한 결과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처럼 낙인은 차별성을 식별하게 만들고, 고정관념을 구축해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별개의 대상으로 선긋게 만드는 것이다. 해당 과정을 거쳐 형성된 ‘나와 다른 대상’이라는 인식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오명과도 그 맥락을 같이해 지속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또한 그런 오명에 대한 방지대책을 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인 차별과 편견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축적을 거쳐 학습된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한 문장으로 테스트 해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나 정신병원 다녀’라는 말을 듣게 된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정신병자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을 테고, 또 ‘정신과에서 일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물음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제시했던 ‘정신병자인가?’라는 생각에서 본능적으로 어떤 벽을 느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혹시 초점 없는 눈으로 하얀 독방에 격리돼 있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지는 않았는가.
 
경계 없는 인식의 필요성
 
 정신질환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 성인 5명 중 1명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심각한 우울증을 경험할 만큼 정신질환은 매우 흔한 개념이다. 또 정신건강에 대한 예방과 치료 과정에서 상황이 악화될 것이라는 편견 역시 앞으로 더욱 달라져야 하는 지점이다. 특히 정신질환은 우리가 해결하기 어렵고 아무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이는 오히려 차별을 극대화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인식의 전환점 마련을 위한 방법으로 ‘돌아가 보기’를 제안한다. 낙인이 형성되는 그 시점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봤을 때 ‘우리’와 ‘그들’이라는 차별된 그룹을 만드는 것은, 인간을 간소화된 기준으로만 바라보기에 일어나는 일일 수 있다. 지금껏 인류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치열한 사투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신질환은 그 개념만이 부각된 채 이를 경험하는 존재는 배제되기 일쑤였다. 우리는 정신질환이란 모든 인간이 경험할 수 있으며, 질환 자체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또 단순화된 개념으로 정신질환을 보기 전, 그 안에 있는 ‘한 사람의 존재’를 파악하고, 나 또한 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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