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원 /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2021, 블랙리스트의 현주소] ① 국가검열의 어제와 오늘
 
2019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가 간행되며 블랙리스트 사건 자체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전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의 현장복귀 또는 인사이동과 관련해 최근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블랙리스트 사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짐작하게 한다. 따라서 이번 기획을 통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련의 사건을 다시 짚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더듬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국가검열의 어제와 오늘 ② 대한민국 문화정책 톺아보기 ③ 문화예술, 국가지원과 공공성 ④ 현재진행형 블랙리스트
 
 
 
 

 

  블랙리스트는 반복될 것인가

 전성원 /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블랙리스트의 사전적 의미는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의 명단’을 뜻하지만,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살생부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 낙점(落點)만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시대의 살생부란 말 그대로 생과 사의 갈림길을 나누는 명부책이었다. 역사 속에서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의 등장은 1649년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찰스 1세(Charles I)의 아들 찰스 2세(Charles Ⅱ)가 아버지의 원수이자 자신의 정적으로 분류한 58명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 그 시초였다.
 
 우리 역사에도 그 명칭이 다를 뿐 숱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해 왔다. 1950년 한국전쟁 기간 중 발생한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은 그중에서도 최악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 · 헌병 · 반공단체 등이 보도연맹원으로 분류된 인사들을 불법적으로 학살한 해당 사건의 희생자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4천9백34명을 제외하고도 대략 10만 명에서 최대 2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아가 1975년 3월 17일엔 자유언론을 주장한 동아일보 기자 160여 명이 강제해직 당했고, 이들은 이후 권력기관의 감시와 탄압으로 재취업이 불가능해지자 출판사에서 번역 · 기획 일을 하거나 전집외판원 등을 전전하게 됐다.
 
민주주의 시대에 재현된 블랙리스트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 ‘블랙리스트’란 명칭은 윤석양 이병의 육군보안사 민간인 사찰 활동 관련 양심선언을 통해 다시 등장했다가 한동안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블랙리스트. 이처럼 두렵고 혐오스러운 이름이 재등장한 것은 이명박 · 박근혜 정권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이들 수구세력은 정권을 빼앗긴 원인을 언론과 학계, 문화예술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상실한 탓으로 분석했다. 사실 김대중 · 노무현 정부 이래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수구 · 보수주의 세력이 내세운 문화정책은 그 표현만 놓고 본다면 그리 문제 삼을 것이 없어보였다.
 
 창조적 실용주의를 국정기조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문화향유권 확대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산업 육성이라는 두 방향의 문화정책을 제시했다. 두 정책은 국내 유일한 예술지원금인 문화예술진흥기금이 어려운 상황에서 복권기금 수익금 중 일부를 사업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등장한 박근혜 정권이 내세운 문화재정 2% 달성 공약 역시 경제민주화 공약과 더불어 큰 기대와 주목을 받았고, 문화정책 국정목표로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을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문화정책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이 문화예술과 문화예술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인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각각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2008)과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 기반 정비〉(2013)라는 전략을 세웠는데, 이 두 가지 정책 문건은 이후 블랙리스트 입안 문서가 됐다.
 
 이명박 정부의 균형화 전략에 따르면, 좌파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조직적 지원하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중심으로 문화권력의 주도세력이 됐고, 제도권을 통해 문화예술계의 좌파세력화를 진행했다. 이에 대한 근본적 대응 전략으로 이명박 정부는 “우파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좌파 집단에 대한 인적 청산을 소리 없이 지속적으로 실시”해 그 세력을 고사시키려 한 것이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촛불 시위를 기점으로 급격히 우경화됐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실상 2007년 12월 인수위 당시 문화관광부를 통해 언론사 주요 간부들의 정치성향 파악을 지시한 바 있었다. 결국 이를 바탕으로 2008년 8월 11일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이자 노무현 정부 시절 KBS 사장으로 임명됐던 정연주를 배임혐의로 강제해임 시키기도 했다.
 
한편,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기반 정비 정책 역시 이명박 정부 균형화 전략과 인식 차이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창의교육’은 ‘역사국정교과서 사태’가 됐고, 모두가 누리는 ‘문화구현’은 ‘블랙리스트’가 됐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각종 시국 사건에 대한 성명서나 선언 등에 이름을 올리는 행위를 문제 삼거나 그들의 창작활동에서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관련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명단을 정부기관이 작성해 이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했다.
 
 이명박 · 박근혜 정권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계 지원사업 대상자 선정 시 정권비판인사 · 단체가 포함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보고서, 그리고 그들의 동향을 파악한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작성 및 청와대에 보고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그 결과 2016년까지 모두 348명이 이른바 문제예술가로 분류됐다. 나아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 백서》(2019)에 의하면 당시의 블랙리스트 문건 현황과 그 규모는 개인과 기관을 포함해 모두 9천2백73건에 달한다.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고토 카즈코의 《문화정책학》(2004)에 따르면, 예술은 그 자체의 순수한 경쟁력만으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현대의 국가들은 체제나 이념의 차이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저마다의 방식과 경로로 예술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국가의 공적지원이 예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J.M.Keynes)는 “정부는 돈은 대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이른바 팔걸이원칙을 제창해 민간 전문가 집단의 구성으로 예술분야에 대한 예산을 분배하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게끔 했다. 이 원칙은 이후 영미식 민주주의를 수용한 대부분의 국가가 추진하는 문화정책의 대원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 정부 역시 이와 같은 방식을 따르고 있으나, 이명박 · 박근혜 정부는 문화예술지원정책을 권력자의 시선에 따라 재단하고 사유화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블랙리스트에 명단이 오른 문화예술인들의 표현행위는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에 근거한 예술적 · 정치적 · 사회적 표현 행위로, 국가에 어떤 위험을 초래하거나 감시당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국가권력에 의해 공공연하게 작성되고 자행된 블랙리스트 사건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손상시켰다는 점에서 국가의 존재의의를 훼손시키는 반헌법적 범죄이자 반인권적 행위였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담보하는 헌법 가치를 수호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는 더이상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법적 ·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이를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호한 결의와 태도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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