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1.4.7 수 01:33
기획사회
[사회] 왜 ‘일탈계’는 n번방의 온상이 됐을까유경 /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이희원 편집위원  |  ryuni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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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호]
승인 2020.12.01  1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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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부정당한 욕망, 그리고 피해

디지털 성범죄 문제는 정치적 무관심과 여성혐오적 사회구조, 가해자 중심의 사법적 조치, 사건의 본질을 흐린 채 자극적인 프레임만을 쫓는 언론 보도 등이 맞물려 튼튼한 토대를 마련한 덕분에 늘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비슷한 결과로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온라인상에서의 성범죄를 전시하고 방관하면서 그 몸집을 키워간 대한민국의 문제적 현실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모두가 공범인 역사 ② 왜곡된 프레임과 언론 ③ 디지털 기술의 비극 ④ 부정당한 욕망, 그리고 피해

 

   
▲ 홍대 거리에서 n번방 1인 시위를 진행하는 위티 활동가들 (사진제공: 위티)


왜 ‘일탈계’는 n번방의 온상이 됐을까

 

유경 /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공동비상대책위원장

 

  SNS에 ‘일탈계’라는 단어를 검색해본 적이 있는가. 가장 대표적인 SNS인 트위터에 해당 단어를 검색하면 무수한 계정과 함께 섹슈얼한 문구, 그리고 사진들이 주르륵 뜬다. 많은 이들이 n번방과 관련된 연속보도 이후 익숙해졌을 이 일탈계는, 자신의 신체 일부나 성관계 영상을 혹은 조건만남의 요구를 올리는 음지의 계정을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n번방으로 처음 알게 된 문화겠지만, 이는 음지의 SNS상에서 몇 년간 축적돼 온 문화이기도 하다. 굉장히 ‘놀랍거나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일탈계를 사회에 알린, 2020년 대한민국에 드러난 가장 거대한 카르텔이라고 할 수 있을 n번방을 살펴보자. 가해자들은 일탈계를 해킹해 계정 주인의 인적 사항을 알아내고는 경찰을 사칭해 협박하거나, 부모님에게 알리겠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적게는 수만 명부터 많게는 수십만 명이 피해자에 대한 협박, 지시 등을 통해 성착취영상물을 제작하고 시청했으며 유포했다.

  n번방 사건은 그 자체로 디지털 성폭력이 하나의 거대한 금전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회의 또 다른 거울이었다. 많은 대중이 n번방이 조직하는 거대한 산업에, 그 n번방에 가담하는 이들에게, 또 그들이 저지른 악마 같은 언행에 경악하고 분노했다. 시민들의 분노를 증명하듯 n번방 가입자의 신원을 공개해달라는 국민 청원은 손쉽게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이때 n번방에 대한 분노들은 대부분 ‘어떻게 어린 애에게 저런 짓을’이라거나 ‘악마 같은 인간들’이라는 말들로 표현되곤 했다.

  그러나 분노와 경악 이후 우리에게 여전히 남은 질문들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언론의 보도처럼 일탈계의 대다수 피해자였던 여성 청소년들은 정말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이며, n번방의 운영자 및 가입자들은 과연 ‘악마’인 것일까. 여성 청소년들은 왜 일탈계를 운영하게 됐으며, 일탈계를 부모님에게 알리겠다는 운영자들의 으름장은 어떻게 협박의 성격을 덧입게 됐을까.

 

누군가의 n번방, 또 누군가의 일탈계

 

  일탈계를 운영하는 성별과 연령층은 다양하지만, n번방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여성 청소년들이었다. 그렇다면 여성 청소년들은 왜 일탈계를 운영하게 됐을까. 특히 사회적으로 ‘성에 관해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른다고 여겨지는’ 여성 청소년들에게 일탈은 왜 필요했을까. 여성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성에 대해 상상하고 행위하는 방식은 왜 음지의 ‘일탈계’에서 이뤄져야 했나.

  ‘남자아이 중에 야동 안 보는 애가 어딨니?’ ‘남자애가 야동을 봐야 건강한 거지’ 누구든 일상에서 혹은 미디어에서 한 번쯤은 접해본 말들이다. n번방은 범죄로 규정됐지만, 실상 대부분 여성을 대상화하는 방식이나 야동을 보는 남성의 욕망은 ‘범죄’로 불리지 않는다. 오히려 권장되거나 미디어에 농담으로 노출되고, 밈처럼 소비되는 방식으로 사회에 자리 잡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남성의 욕망이 그렇다면, 반대로 여성 청소년의 욕망은 어떠한가. 그들의 욕망은 사회에 어떻게 비치는가.

  여성 청소년이 일탈계를 하는 이유는 친권자의 보호가 부족하거나, 그들을 둘러싼 가정이 불행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욕망의 실현이나 경제적 안정과 같은 그 무엇도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원인에 가깝다. 여성 청소년이 성에 대해 무지해야 한다는,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 사회의 편견은 그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성에 대해 발화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여성 청소년의 경제적 권리를 박탈해온 제도와 문화는 그들이 열악하고 불법적인 노동에 복무하게 만든다. 성을 욕망하는 여성 청소년에게는 익명성을 빌려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만이, 그러니까 그러한 ‘일탈’만이 허락됐던 것이다. 따라서 부모님에게 알린다는 식의 말은 그 자체로 부모가 청소년에게 제공하는 것이 ‘보호’가 아닌 ‘통제’와 ‘폭력’임을 반증한다. 실제로 정부 차원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청소년 피해자가 성착취 영상물 삭제 지원을 요청했을 때 부모동의서를 요구한 바 있다.

  n번방 사건을 통해 우린 청소년이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청소년 대상 성착취의 근본적인 원인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n번방 사건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더욱이 n번방 사건을 남성들의 불가항력적 욕구로 바라보는 시선은 성착취를 ‘폭력’이 아닌 ‘음란’의 문제로 축소한다. 우리는 이미 여성혐오에 동조하고 강간문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남성들의 얼굴이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얼굴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일상 속에서 평범한 얼굴을 가진 성차별주의자들과 맞서 싸워왔다. 그러나 그들 중 그 누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가해자 전원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요구는 우연히 살아남은 여성들이 스스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내거는 요구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강간과 섹스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n번방 사건은 강간과 폭력이 남성의 성적 욕망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됐던 유구한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반면에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에 부합하는 형태로 존재해야만, 자신의 성적 욕망을 사회로부터 승인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욕망은 n번방이 되고, 누군가의 욕망은 ‘일탈계’가 되는 현실이 고착화된다.

  여성 청소년은 ‘지켜주지 못한 딸들’도, ‘발랑 까진 문제아’도 아니다. 우리는 보호라는 명목으로 청소년에게 성을 격리하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또한 나이·젠더·사회적 권력 등의 위계에 기반해 이뤄진 성착취를 피해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시도에도 반기를 들어야 한다. 일부 여론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찍어 올린 ‘음란녀’의 책임도 있다는 식으로 피해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는 성폭력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문제의 원인은 피해자가 아닌, 공고한 성착취 카르텔과 강간 문화이기 때문이다. 강간만이 유일한 섹스의 서사인 지금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인정받는 것이 여성의 유일한 성적 욕망으로 치부되는 세계를 넘어서야 한다. 여성 청소년은 성적 욕망을 실천할 수 없다는 통념에 저항해야 하며 여성 청소년의 성적 욕망과 실천이 안전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n번방 이후의 새로운 세계를 위해

 

  지금 이 시각에도 n번방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가고, 그곳의 입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다.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이 거대한 카르텔은 이 세계의 굳건한 권력 구조를 드러내며 많은 여성과 피해자들을 절망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하기도 했다. n번방 사건은 전 사회적으로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존중받는 토대가 시급히 마련돼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줬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은 ‘내 몸을 지킬 권리’로 축소돼 왔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여성 청소년의 몸을 통제 및 억압해왔으며, 정조를 지켜야 하는 몸으로 인식을 심어줬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 청소년이 성적 주체로 존중받지 못한 채,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만 소비되는 현실을 낳았다. 성이 19금인 사회, 강간과 섹스가 혼동되는 사회에서 여성 청소년은 자신이 경험하는 폭력을 말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는 존엄한 권리이자,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다. 이는 원치 않는 섹스를 '거부할 권리'를 넘어, 자신의 몸에 대해 자유롭게 탐구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성적 만족을 얻을 권리다. 더 아나가 평등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성을 접할 권리이자,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운용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이기도 하다. 그동안 불온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자. 정조권을 중심으로 구성된 성교육 표준안의 폐기부터, 젠더 관점에 기반한 새로운 성교육의 이행, 청소년의 경제적 사회적 자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까지. 우리에게는 다양한 과제가 남아있다. 우리는 두려움에 위축되지 않고, 함께 분노하며 싸울 것이다. 강간문화가 빼앗아간 여성 청소년의 언어를 되찾을 것이다. n번방과 일탈계의 바깥에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 것이다. 새로운 세계와 다양한 언어를 만들고 있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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