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원우말말말]


페미니즘 관점에서 기본소득


이지은 /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내가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복지국가가 지닌 근본적 한계’를 시정할 수 있으리라 봤기 때문이다. 현대의 복지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자들을 보호하며, 근로유인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자산조사를 통해 수혜 대상을 선별하고 가구 단위로 혜택을 지급한다. 이러한 특징들은 여성들에게 태생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돌봄과 같은 부불노동(unpaid work)을 하며 불안정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고 대부분 가구주가 아닌 가구원에 속하기 때문이다.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체제는 남성 노동자인 시민을 주요한 수혜대상으로 삼는다는 점과 동시에 보장단위가 주로 가구이기 때문에 가부장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처럼 기존의 사회보장제도가 조건성을 가지며 가구 단위로 지급이 이뤄진다는 점에 반해,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게 자산 및 소득조사 그리고 근로능력과 관계없이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정책이다. 즉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은 ‘공유부의 평등 배당’을 통해 ‘사회적·생태적 지속가능성’을 꾀하려는 목적과 지향을 가지고 있다. 이때 공유부(common wealth)란 토지, 공기, 천연자원과 같이 이미 모든 사람에게 귀속돼 있는 자연적 공유부와 지식, 기술, 빅데이터 등의 인공적 공유부를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본소득은 현대의 ‘시민권’을 심문한다.


   기본소득이 ‘젠더 정의’에 기여하는 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개인의 경제적 독립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소득을 지급하기 때문에, 특히 불안정한 노동 지위에 속한 여성들은 고용주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으며 남성 생계부양자에 대한 경제적 예속을 완화할 수 있다. 둘째, 결혼·가구·성적지향 등과 관계없이 지급되기 때문에 가구 내 협상력을 높이며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보장한다. 셋째, 유급노동의 의존을 줄여 개인의 재량시간을 증진시킬 수 있다. 노동소득과 무관해 시간 빈곤에 처한 대다수 여성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기획할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하고 공적 영역에서의 참여 기회를 높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측면에서 눈덩이 효과를 낳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도에서 배제됐던 시민들을 비로소 하나의 ‘정책수혜자’로 묶으며 이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된 복지국가는 새로운 보편복지의 장을 마련할 것이다. 유급노동이 여성의 재생산노동에 무임승차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기본소득의 도입은 우리의 실존을 값싸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될 것이다. 나아가 공통의 자원을 발견해 동등하게 나눔으로써 불평등을 시정하고, 값싸게 매겨진 유급노동에 대한 의존을 줄이며 ‘삶’에 대한 자율성을 찾으려는 운동의 산물일 것이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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