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 / 사회학과 박사과정

오늘 들려준 이야기

조연 / 사회학과 박사과정

   박사 과정 진학 이후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인터뷰를 통해 여러 부정의에 대한 경험과 인식을 담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어떤 질문을 할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언제 어디에서 자리를 마련할지 준비했고 때로는 면담자가 돼 참여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1~3시간 정도 진행하는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은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와 관점에서 해석한 삶의 한 조각을 들려주곤 했다. 견디는 삶에 대해서, 부당함에 대해서,막막함에 대해서, 희망에 대해서. 어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줄어들게 될 거라는 걸 예감했고, 어떤 이는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내 삶은 다른 사람은 다치지 않았으면, 다음 사람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처음 인터뷰를 했을 때 참여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론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다양하고도 복잡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았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의미’라는 게, 나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터뷰 자리를 정리하며 참여자에게 오늘 들려준 이야기를 꼭 끝까지 전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보고서에 이야기를 충분히 담을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이 글이 수신인에게 잘 닿았는지,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잘 이해하고 공감했는지, 어떤 변화를 약속할 것인지. 알 수도, 확인할 수도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낼 때면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디로 사라진 건지 궁금해졌다.

   가끔은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어떤 마음으로 모르는 이에게 기꺼이 시간과 삶을 내어줬을까. 이들도 그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 만남은 어떤 의미였을까. 기대했을까, 기다렸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연구자로서 어떤 부당함을 더 잘 살펴보고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야기를 요청했지만 나만 사람들에게 앎과 힘을 얻고 사라진 것은 아닌지 묘한 죄책감이 해소되지 못한 채로 마음에 켜켜이 쌓여 있다. 학생과 연구자 사이,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불안정한 위치에서, ‘정상적인’ 생애 경로를 이탈한 ‘여성’으로 나 또한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줄어들 것이라 예감한다.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 또한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 그들의 마음이 닿아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싶어서. 마주쳤던 눈빛이 힘껏 전한 그 이야기를 더 알리고 책임을 함께 해달라고 요청한 것 같아서. 버티면서 만나고 듣고 기록하고 기억하고 전하는 책임을 놓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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