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주 /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③ 국경의 정치학 

현실은 온갖 것들로 가득 찬 곳이자 사물들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하는 철학적·사회적 공간이다. 이 공간 속에서 개개인은 권력으로 구획된 축들의 교차점 위에서 억압하고 저항하며, 생성·작동·소멸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공간의 정치적 의미를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실천적 의미를 찾아 적용하며 인간의 신체에 이르는 지리학적 정치의 의미를 에둘러 항해한다. 지면 관계상, 인용표기는 온라인 기사에만 명시했음을 밝혀둠.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공간에 숨은 정치, 비판지정학 ② 21세기의 한반도와 탈식민성 ③ 국경의 정치학 ④ 지리-신체적 공간의 페미니즘

정치적으로 전유되는 국경 '되기'

최은주 /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

 

 
 

   대한민국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 2015년 11월 테러리즘과 난민 위기를 주제로 한 G20 정상회의 업무 만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시리아 사태 장기화 등으로 인한 대규모 난민 위기가 국제 인도주의 체제 전반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면서, 난민 발생국은 물론 경유지와 최종 목적지 국가들의 부담과 책임을 국제사회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다음 해 인천공항의 송환대기실에는 한국 법무부의 정식 난민심사 회부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리아인 28명이 자국 송환 결정을 기다리며 구금 중이었다. 박해 위험으로부터 급박하게 탈출해 대한민국에 곧바로 비호를 신청한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2018년엔 제주로 유입된 561명의 예멘인들을 자국에 수용할 수 없다는 국민 청원이 쇄도하기도 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미국 입국 차단을 명목으로 이라크, 이란, 소말리아 등 7개국에 대한 미국 비자발급 및 입국을 90일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리고 2018년 초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영국과의 국경보호조약 개정과 프랑스의 난민시설에 대한 영국 측의 분담금 인상을 영·불 정상회담에서 요구할 계획이었으며, 칼레 인근의 난민수용시설을 방문해 불법 이민문제에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착과 수용의 한계

   국내외적 사례를 살펴봤을 때 국경선은 그 자체로 접근과 거부, 이동성과 고정, 규율과 처벌, 자유와 통제 사이에 상응하는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국경은 국가적 공권력의 범위를 확장할 만큼 중요한 문제로 상이한 영토를 나누는 지리적 분리선일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한 유기체의 외형인 집단 공동체, 즉 ‘민족의 외피’로 이해됐다(S.Kaufmann, 2006). 현대사회의 정체성을 자본의 유입과 유출, 네트워크의 연결과 같은 은유를 통해 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해도 국경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국경은 위기의 사태가 닥칠 때마다 민족 중심적 국가주의를 부활시킴으로써 흐름의 공간이 아닌 ‘벽’의 이미지를 강화해 최초의 해결방안을 ‘이주자에 대한 배제’로 상응한다(N.Genova, 2015).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요청으로 난민 수용이 권고되고 있지만, 난민에게는 ‘환대’ ‘보호’ ‘감금’이라는 어휘들이 영구히 따라다니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경, 인구조사, 세금과 같은 어휘들로 형성되고 구조화된 민족국가 내에 머문다 해도 이방인, 희생자, 범죄자로 분류되는 난민은 내부 중에서도 구분되는 공간에 놓이는 것이다. 이처럼 ‘수용’에도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세계화나 지구화의 근간에는 결국에 ‘민족적 영토’가 있으며, 이 영토는 개별 국가가 자국을 공간적으로 확인하고 재형상화하는 데 경도되게 만드는 이유들 중 핵심으로 부상했다. 즉 소통과 수단의 기술적 혁명에 의한 중개와 이동으로 세계를 ‘장소가 없는, 국경이 없는 그리고 울타리가 없는 흐름의 공간’으로 이미지화하지만, 이것이 민족국가의 종말이 아니라 오히려 민족적 영토라는 근거와 개별 국가의 공간적 재형상화를 강화시킨다는 주장(H.Berking, 2006) 등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의 취약성과 환대의 불/가능성

   코로나19로 인해 자국 땅에 일시적으로 묶여있으나 내전과 같은 정치적 갈등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거주지 상실이 늘면서 어느 곳도 요새가 될 수는 없었다. 민족국가는 이미 미래에 도래할 대규모 인구이동의 물결로부터 온전한 집의 의미를 약화시키고 있다. 불안정성은 이미 국경 안팎의 불가피한 조건인 것이다. 건축의 폐쇄성이 개방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건축은 안과 밖을 구별해내는 물질적인 한 방법이다. 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줄어들거나 확장될 수 있다. 영토 확장은 권력투쟁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이제는 권력을 넘어서는 절박함, 공포, 생의 의지에 의해 넘어뜨려야 할 가치로 대두된다. 집의 주인과 손님의 위치는 침투하고 동화된다. 자신의 눈을 찌르고 추방된 후 이주자의 신세가 돼 딸 안티고네와 함께 떠돌다가 도착한 콜로노스에서 오이디푸스는 그 땅에 발을 디뎌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오이디푸스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이유에서 주인행세를 하는 또 다른 이방인이다.

   신화는 단지 어떤 장소에 타자보다 먼저 있었다는 것만으로 ‘객’에 대해 ‘주’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어떤 장소나 집의 ‘주’는 바로 그 자신이 그 장소와 집의 최초의 ‘객’이며, 그것이 그에게 ‘객’을 받아들일 능력을 부여한다. 주인(Host), 손님(Guest), 환대(Hospitality), 유령(Ghost), 호스피스(Hospice), 적대감(Hostile), 인질(Hostage)의 단어들은 모두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됐으며 주인과 손님 간의 관계에 포함된 사회적·법적 의무 및 긴장의 복잡성을 의미한다(M.Bedir, 2016). 노마드로 시작해 정주민으로 살게 된 역사에서 손님, 이주, 난민은 인류 전체의 운명이다. 언제든지 주인이 될 수도 있으며 손님이 될 수도 있다. 몽골인들은 이러한 진리를 익히 깨달아 초원 위의 자신들의 집 ‘게르’를 열어둔다. 길을 잃기 쉬운 초원에서 오늘 길을 떠나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손님은, 지금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만 내일 당장이라도 자신의 말을 잃어버리고 찾아 나서야 할지 모르는 주인의 운명이기도 한 것이다(엄기호, 2014).

   신화와 운명의 이야기는 평시에나 어울릴 것들이다. 범세계화·전지구화와 상충되는 민족적 영토 개념이 이동 인구를 통제하고 이주자를 타자화할 명목으로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이 부각되는 것은 그만큼 급속도로 증가하는 이주와 속도를 같이 한다. 2015년의 ‘이주의 여름(Summer of Migration)’에서 증명된 것은 불가피하게도 길고 긴 국경이 횡단될 수밖에 없다는 발견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국경을 더욱 확고히 하는 원인이 됐고 그럼에도 국경은 어떻게든 뚫릴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만큼 국경의 특징은 단 하나의 단위 체계적 논리가 없으며 끊임없는 접촉과 다툼의 현장인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 주인이 불안해하는 것은 땅에 새겨진 확실성이 그만큼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식민정책에 의해 손님이 주인이 되는 상황, 주인이 손님이 되는 상황이 보여주듯이 영토를 둘러싼 사유 사이에는 세계적 수준의 긴장감이 흐른다. 이제는 토지문서의 유효성이 아니라 무비자 입국 제도를 통해 휩쓸리고 횡단된다. 결국에는 바깥, 추방된 것, 억압된 것, 혹은 배제된 것을 안으로 가져오는 방법밖에 남아있지 않다.


경계 횡단에 대한 재사유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박탈된 인구는 6천8백5십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 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낯선 사람과 이웃하며 살아야 하는 상황은 그만큼 불가피해졌다. 이웃과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기 힘든 환경에 놓이면, 로컬 주민의 불만과 분노는 커지고 낯선 이웃과의 갈등도 증폭된다. 예멘인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국민의 거부 청원 쇄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우리 사회는 팔을 펼친 거리만큼의 개인 공간을 일컫는 ‘스트레이트 암(Straight Arm)’과 비대면, 비접촉이 트렌드가 된 ‘언택트’ 사회에 익숙해져 있다. 차량과 보행자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주택단지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가 인기 있는 주거 형태가 된 것도 외부인의 공간 침입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행복에 가치를 두면서 집과 거주 환경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과 달리, 사람들은 취약하고 불안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환경과 같이 비인간에 대한 인간중심주의적 문명의 대가로 인간 자신의 삶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고 있는 기후변화, 자연재해, 감염병 발생이 현실화 되면서 정주지를 잃을 가능성은 모두에게 예외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인간중심주의적 문명의 대가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자 각 국가의 정책적 대응 방식 또한 낱낱이 보여줬다. ‘물리적 거리 두기’와 국경 폐쇄를 통해, 나의 국적, 나의 집으로 행동반경이 최소화되는 과정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가 표출됐으며 다양한 혐오가 정당한 변명이 됐다. 인권과 공동체적 선의, 공간 배분에 대한 정의 또한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러나 국경을 세우고 삶의 공간을 축소시키며, 두려움과 혐오를 키우는 방식이 미래 삶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참고문헌

최은주(2018). 경계 횡단의 언어와 환대 (불)가능한 장소 – 크리스 클리브의 『다른 쪽 손』을 중심으로. 현대영미소설. 25(1), 189-212.

최은주(2018). 난민 캠프의 공간성과 정치성: 베를린 템펠호프 폐공항을 중심으로. 인간‧환경‧미래. 21, 41-69.

최은주(2019). 정치적으로 전유되는 이주‧국경에 대한 고찰. 오토피아. 34(1), 77-102.

최은주(2020). 강제 이동 인구의 증가에 따른 잠재 공간에 대한 사유. 인문사회21. 11(3), 1067-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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