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1.11 수 11:46
기획
[토론문] ‘변혁’과 ‘인권’의 어색한 만남을 돌아보며미류 /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홍의미 편집위원  |  dmlal33@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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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호]
승인 2020.11.05  18: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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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혁’과 ‘인권’의 어색한 만남을 돌아보며

 

미류 /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변혁 운동과 국제인권기준이라는 두 계기의 접합으로 한국 인권운동의 역사를 서술하는 이 논문을, 만약 20년 전쯤 봤더라면 그냥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인권운동을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라기보다 세상을 윤색하는 운동쯤으로 여겼다. 국가로부터 탄압을 당한 개인들을 구제하는 운동. 인권운동사랑방이 궁금해 자원 활동의 문을 두드릴 때도 그랬다.
   그러나 자원 활동을 하면서 만난 ‘인권’의 현장은 넘겨짚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을 만나며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고, 신자유주의가 쏟아내는 불평등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인적 드문 곳에 있는 장애인 시설과 감옥에서 보내온 편지를 활동가들은 빈곤의 현장으로 읽었다. 인권교육은 국제인권기준을 읊는 교양이 아니라 억압당하는 사람과 연대하며 힘을 북돋는 기획임을 느꼈고 국가보안법은 누군가의 사상을 억압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길들이는 법이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기도 했다. 그러니 ‘인권’으로 운동하고 싶어질 수밖에.
   15년 전 나를 설레게 했던 인권운동의 모습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정정훈은 1990년대 이후 펼쳐진 인권운동을 ‘2세대 인권운동’으로 정의하며 그 형성과 전개 과정을 분석한다.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운동의 지형 자체가 크게 달라질 때 2세대 인권운동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갔다. 2세대 인권운동은 앞선 시대에 충분히 발견되지 못했던 ‘다양한 인간 억압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변혁 운동의 도전을 이어가려고 했다. 전자가 국제인권규범에 기댄 의제화와 대안 제시의 흐름으로 이어졌다면, 후자는 인권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를 밝히는 방향으로 설정됐다.
   2세대 인권운동이 시작되던 때와 현재의 ‘인권’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양심수보다 트랜스젠더와 난민 등 ‘소수자’를 떠올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노동자도 떠올릴 것이다. 국제인권 규범의 잣대를 대지 않더라도 인권을 말하고 싸울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지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이 특정 집단을 향한 모욕과 비난으로 분출될 때 혐오의 ‘구조’를 문제 삼기도 한다. 이제 인권의 문제가 규범의 준수를 넘어서는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은 낯설지 않다. 논문에서 짚은 ‘규범기반접근’과 ‘구조기반접근’의 갈등이 만든 변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권운동을 충분히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라고 자임해도 되는 것일까. 2세대 인권운동을 분석하며 정정훈은 변혁 운동의 계기와 구조기반접근을, 국제인권기준의 계기와 규범기반접근을 각각 대응시켰다. 만약 두 접근의 갈등이 ‘변혁’과 ‘인권’의 만남을 어색하고 껄끄럽게 만드는 전부라면 인권에 대한 편견과 혐의를 걷어내는 숙제만 남을 것이다. 규범과 구조의 통합은 국제인권레짐 차원에서도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두 가지 접근은 초역사적으로 두 계기와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기를 멈추지 않으려면, 두 계기와 두 접근 사이의 긴장을 다시 역사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87년 이후 한국 사회운동이 변혁 운동과의 연속이냐 단절이냐 하는 쟁점을 떠안게 된 것은 사회주의 운동이 쇠락하는 세계사적 조건과 맞물려 있었다. 2세대 인권운동이 국제인권규범에 기대 자신을 전개하면서도 변혁 운동의 계기를 놓지 않았듯, 여러 운동이 스러져가는 변혁의 전망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도전을 이어왔다. 2세대 인권운동은 ‘독자적’운동을 형성했지만 어떤 사회운동도 ‘독자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2세대 인권운동이 품었던 두 계기의 ‘내적 긴장’은, 그 관계를 체계적으로 규명하기보다 다른 운동과의 ‘외적 연결’을 체계적으로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해소되는 것이 아닐까.
   이 논문은 2012년까지의 인권운동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과거의 이야기로만 읽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세상을 바꾸는 운동은 어때야 할지 묻는 말이 더욱 절박해진 상황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1987년의 정치적 변동을 넘어서는 파고를 2017년 봄까지 이어진 박근혜 퇴진 촛불에서 경험했으며, 1997년의 경제 위기를 능가하는 파국에 코로나19와 함께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구도 속에 더는 갇힐 수 없는 변혁의 열망과 방역이냐 경제냐는 선택지로 회복될 수 없는 삶의 기로에서, 이제 질문돼야 할 것은 ‘변혁운동’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2세대 인권운동에 던져진 질문은 인권운동만을 향하지 않는다.
   역사를 돌아본다고 내일을 향한 답이 정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지 못하면 내일을 질문할 수조차 없다. 2세대 인권운동에서 변혁 운동의 계기를 발견하고 역사에 기입한 노고는 연구자의 것이겠지만 저자의 분투에 활동가로서의 동기가 스몄음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다. 사회운동과 역사에 관한 연구가 드문 풍토에서 이런 논문만으로도 고맙지만,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함께 궁구하겠다는 출사표라 더욱더 반갑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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