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범 / 한국인터넷진흥원 책임연구원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디지털 기술의 비극

디지털 성범죄 문제는 정치적 무관심과 여성혐오적 사회구조, 가해자 중심의 사법적 조치, 사건의 본질을 흐린 채 자극적인 프레임만을 쫓는 언론 보도 등이 맞물려 튼튼한 토대를 마련한 덕분에 늘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비슷한 결과로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온라인상에서의 성범죄를 전시하고 방관하면서 그 몸집을 키워간 대한민국의 문제적 현실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모두가 공범인 역사 ② 왜곡된 프레임과 언론 ③ 디지털 기술의 비극 ④ 부정당한 욕망, 그리고 피해

 

 
 

디지털 사회 속 훼손된 중립성


박문범 / 한국인터넷진흥원 책임연구원
 

  사람들은 흔히 인문학은 편파적이지만, 공학적 기술은 중립적이라는 말에 쉽게 수긍하는 경향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문학의 경우 작가의 가치 판단 혹은 이념 등에 따라 내용을 바꾸거나 왜곡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공학적 기술은 결과를 임의로 변경하기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최소한 인터넷이라는 형이상학적 공간이 ‘디지털 사회’라고 통칭될 정도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디지털 기술은 지금까지 계속 발전하고 있음에도 절대 중립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성범죄의 진화
 

  1969년 미국에서 군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아르파넷(ARPAnet)이라는 원시적인 네트워크부터 시작해 오늘날 5G라는 초고속 네트워크로 발전하는 데에 전 세계 포르노그래피 (Pornography) 산업이 지대한 영향을 줬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경우 대한민국 인터넷 기술의 발전은 ‘O양 비디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말들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은 디지털 사회를 만든 장본인이자 지금까지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 개념은 성범죄의 진화와 결코 분리해서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디지털 성범죄의 진화와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앞서 언급한 기술의 중립성 문제와 연결 지어 말해보자면, 최근 발생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디지털 기술에 의해 그 입장이 명확하게 나뉘고 있다. 즉 디지털 기술이 쌍방에게 현저히 다른 관점으로 해석된다고 볼 수 있는데, 디지털 기술은 가해자에게 매우 편리하고 유용한 도구로 인식될 것이고, 반대로 피해자에게는 무섭고 두려운 범죄 도구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더구나 디지털 성범죄는 기술적 특성상 피해자에게만 영상이나 사진과 같이 영구 삭제가 불가능한 주홍글씨가 남게 돼 더 치명적이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위와 같은 사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논의를 과거와 현재의 성범죄 유형을 비교함으로써 확대해보자. 과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성범죄는 우리의 실생활에서 대부분 발생했고, 디지털 기술은 기껏해야 동영상 같은 성범죄 결과물의 저장이나 유통 및 확산에 이용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하는 성범죄 유형을 살펴보면 성매매 중개 웹사이트와 같이 성범죄에 대한 접근을 수월하게 만들기 위한 디지털 기술의 단순 이용과 딥페이크(Deepfake) 포르노처럼 디지털 기술을 성범죄에 직접 접목하는, 즉 디지털 기술 자체가 성범죄 행위가 되는 경우도 있다. 딥페이크라고 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기반기술인 딥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기존에 있던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신체 부위를 영화의 CG처럼 합성한 영상 편집형 포르노 영상을 말한다.

  이 딥페이크 기술은 과거 포르노 배우의 누드 사진에 연예인의 얼굴을 단순히 합성하던 수준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진뿐만 아니라 동영상에도 합성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딥페이크 포르노 영상은 영상분석 전문가가 아니라면 쉽게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하기까지 하다. 또한 주로 연예인 등과 같은 유명인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은 영상을 합성해주는 다양한 종류의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개발·유포되고 있고 프로그램의 사용법 역시 어렵지 않아 일반인들이 지인을 대상으로도 딥페이크 포르노를 제작 및 유통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한마디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 역시 이 딥페이크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며 특히 이는 헤어진 연인 간의 보복성 음란물 범죄에도 악용되고 있다.

 

은닉과 은폐로 교묘해진 범죄

 

  디지털 기술이 성범죄에 직접 접목된 사례로 딥페이크 포르노를 들 수 있다면, 디지털 기술이 다른 형태로 성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로는 바로 올해 초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 및 ‘박사방’ 사건과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유포 웹사이트인 ‘웰컴 투 비디오’ 사건을 들 수 있다. 바로 각 사건의 주범들이 수사 기관들로부터 자신의 위치를 은닉하고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먼저 n번방 사건의 경우 종단간 암호화(End to End Encryption) 방식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텔레그램(Telegram)이라는 온라인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피해자들을 겁박하거나 영상물을 유통했으며 공범들과 범죄 행위를 공유했다. 그들이 사용한 텔레그램은 사용자들의 대화 내용을 저장하는 중앙서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대화방을 삭제할 경우 동시에 주고받은 대화 내용도 모두 삭제된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사용자들에 대한 추적이 어려워 실제 성범죄 외에도 마약 거래 조직, 테러 단체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서버가 존재하는 카카오톡이나 라인과 같은 애플리케이션에서 범죄자 검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음으로 웰컴 투 비디오 웹사이트에서 사용한 다크웹(Dark Web)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나 크롬으로 대표되는 브라우저를 사용해 접속하는 구글, 유튜브와 같은 웹사이트를 표면 웹(Surface Web)이라고 한다면, 다크웹은 특수한 환경을 거쳐야만 접속할 수 있는, 즉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웹 서비스다. 다크웹은 특정 웹브라우저를 사용해 토르 네트워크(Tor Network)라는 별도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접속할 수 있다. 이때 토르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암호화된 지점인 노드 (Node)를 경유해 다크웹에 접속하기 때문에 추적이 매우 어렵고 사용자의 익명성을 철저하게 보장해준다.

  따라서 다크웹을 통해 제공되는 대부분의 서비스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다크웹은 아동 성착취물 유통을 비롯해 불법 의약품 및 마약 거래, 성매매 등과 같은 범죄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블록체인(Block Chain)기술을 이용해 개발된 비트코인처럼 가상화폐가 범죄에 대한 대가로 거래되고 있는 것도 디지털 기술이 성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때 블록체인 기술은 익명성이 보장돼 사용자 추적이 어렵고 자금세탁 역시 용이하다는 특성을 가진다.
 

더욱 현실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
 

  앞에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디지털 기술이 성범죄에 악용되고 있는 현실과 그 현실들이 공학적 기술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의 근거로 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실 공학적 기술, 더 나아가 여기서 언급된 성범죄에 악용되는 디지털 기술이 중립적이냐 아니냐는 디지털 기술 개발자들이 크게 고려할 부분은 아니다. 디지털 기술을 성범죄에 악용하는 것은 개발자들이 처음부터 의도한 바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 악용의 여지를 고려하고 악용 가능성을 사전에 최대한 방지한다거나 그 이후에 대응이 가능하도록 개발하는 정도의 고려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이 성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디지털 기술이 악용된 성범죄 사건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는 것이 디지털 성범죄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 경찰과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국제공조를 통해 다크웹의 웰컴 투 비디오 서비스 운영자인 손정우를 검거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국제기관 또는 국가기관 간의 신속하게 협력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과거 오프라인에서 국지적으로 발생했던 성범죄와 달리 디지털 기술을 악용한 성범죄는 국지성 없이, 그리고 국가 간의 경계를 무시한 채 여러 나라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피해자들에게는 영상 유포와 같은 2차 가해를 막는 것이 가해자를 검거하는 일보다 더 중요할 수 있기에 그 대응과 관련된 논의가 계속해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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