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리 / 영어영문학과 박사

저항으로서 문학이 갖고 있는 힘

 


■ 흑인 여성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석사 1차 때 흑인여성작가인 수잔 로리 팍스(S.L.Parks)의 희곡을 읽었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꼭 그 작품으로 석사 논문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흑인여성작가들이 지배규범과 언어에 맞서 자신들의 경험을 언어화하고 목소리 내는 것에 매혹을 느꼈고, 그때의 감동과 울림이 지금껏 공부를 계속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다.


■ 해리엇 제이콥스(H.Jacobs)의 작품에서의 순치된 여성을 만드는 사회적 장치들은


  흑인여성노예인 제이콥스는 특정한 계급·인종·섹슈얼리티가 교차되는 권력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 해방하고자 한다. 이는 인종과 성차가 표식된 육체를 지닌 존재로서 흑인여성 자아와 개인의 등장을 드러낸다.
  19세기 흑인여성은 순결하고 교양 있는 백인여성과는 다른 육체적 존재로서 과잉 성애화됐다. 이에 대항해 ‘존중받을 만한’ ‘흑인여성’으로 스스로를 내보이려는 제이콥스의 서술전략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조직 및 구성되는 젠더 수행을 포착하고 나아가 젠더가 이미 인종화돼 있으며 계급 및 섹슈얼리티와 불가분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드러낸다.


■ 프랜시스 하퍼(F.Harper)의 소설에서 흑인여성이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과 가능성을 발견했는지


  19세기 미국은 흑인남성이 수정헌법 14조로 얻어낸 참정권마저 위협하며 백인과 다른 공공시설사용을 강제하고, 흑인의 자리에 머물고 만족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특히 더 이상 노예로 부릴 수 없는 자유로운 흑인남성은 백인여성의 성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기만적 소문으로 인해 투표하거나 공공장소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이에 흑인여성은 ‘백인’정부와 흑인공동체를 교섭하는 ‘외교관’ 역할을 했으며, 하퍼의 소설 속 여주인공의 행보에 이와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 하퍼의 소설은 여성은 가정에 머물라는 당대의 ‘분리된 영역’ 이데올로기를 활용해 ‘더 나은 가정’을 ‘더 나은 정부’의 요구로 전환하고, 나아가 흑인여성을 공적영역의 주요한 행위자로서 제시한다.


■ 폴린 홉킨스(P.E.Hopkins)의 소설에서 ‘흑인의 지위향상’이라는 시대적 관심사가 변주됐다고 봤는데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은 미국에서 인종화돼 손쉽게 백인은 선이고 흑인은 악으로 지칭하며 인종적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악명 높은 영화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1915)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홉킨스의 소설을 인종 멜로드라마로 읽으면서 작가가 선악의 문제가 단순히 흑백의 피부색에 따른 것이 아니라 어떤 과거를 포용하고 받아들이며, 이를 통해 어떤 미래로 나갈 것인가의 문제로 치환했음을 강조하고자 했다.
  《한 핏줄, 숨겨진 자아(Of One Blood, or The Hidden Self)》(1902-1903)는 인종에 얽힌 우열과 선악의 의미망을 잘라내는 것을 통해 인종분리는 불가능하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유효하지 않음을 역설하면서 백인, 흑인, 뮬라토 형제들의 시민사회를 꿈꾼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상상력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 저항과 혁명을 나타내는 방식에서 문학만이 갖고 있는 특징은


  “지배자의 언어는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흑인 페미니스트 시인 오드리 로드(A.Lorde)의 말처럼, 문학은 기존의 세계로부터 인정받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대안적인 목소리로 우리 스스로를 정의하는 작업과 연관된다.
  특히 19세기 미국의 맥락에서 소설은 흑인언론과 더불어 왜곡된 흑인 이미지와 편견을 배포하는 백인언론에 맞서는 주요한 공론장이었다. 흑인의 투표권이 무산되고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흑인여성 지식인들은 문학이 갖는 정치적 상상력을 구체화하고 공적 말하기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