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0.9 금 13:00
기획
[중앙아카데미아] 문학으로 본 흑인여성의 시민권과 억압의 교차한우리 / 영어영문학과 박사
홍의미 편집위원  |  dmlal33@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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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승인 2020.10.06  21: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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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화된 젠더와 젠더화된 시민권:미국 흑인여성문학과 교차성 이론』 한우리 著 (2020, 영어영문학과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영문학과 한우리의 박사 논문 『인종화된 젠더와 젠더화된 시민권:미국 흑인여성문학과 교차성 이론』을 통해 인종과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이 얽힌 차별과 억압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문학으로 본 흑인여성의 시민권과 억압의 교차

 

한우리 / 영어영문학과 박사

 

  이 연구는 세기 전환기 흑인여성작가의 문학에 나타난 인종화되고 젠더화된 개인/시민의 등장을 검토한다. 19세기 후반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남북전쟁을 끝으로 노예에서 해방돼 시민적 권리를 획득한다. 그러나 또다시 백인과 분리된 공공시설 이용을 강제당하고 도제로 부려지며, 참정권 박탈을 목적으로 하는 린치와 강간의 위협에 노출된다. 이에 맞서 흑인은 당시 영향력이 커지던 신문과 소설 등의 매체로 공론장을 확보하고 공적 말하기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특히 당대의 흑인여성지식인들은 문학을 공론장 삼아 흑인이 시민으로서 백인과 동등하게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권리와 권한을 가짐을 입증하려 했다. 논문에서 주목한 세 흑인여성작가 해리엇 제이콥스(H.Jacobs), 프랜시스 하퍼(F.Harper), 폴린 홉킨스(P.E.Hopkins)는 문학을 통해 흑인을 천부인권을 가진 개인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사회에 속할 자리를 요구하며, 백인우월주의 정치체를 변혁할 것을 주장한다. 문학 속 흑인남녀 시민은 보편적 개인으로 가정되는 시민의 개념을 심문하고, 인종화되고 젠더화된 개인의 시민 ‘되기’를 구체화한다. 동시에 국가의 미래가 백인우월주의 정치체에서 벗어나 인종적·젠더적으로 평등하고 민주적인 정치체를 구성하는 것에 달려있음을 주장한다.

 

   
 

대안적 주체구성 양식이자 정치변혁의 도구로서의 글쓰기


  이러한 문제의식을 전개하면서 이 연구는 미국의 인종과 계급, 젠더를 구성하고 규정하는 법과 제도를 먼저 살핀다. 이는 법을 단순히 수동적이며 중립적인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지배 권력을 반영해 차별과 억압의 범주를 재생산함으로써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기제로 읽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연구자는 법을 넘어서는 대안적인 주체구성 양식으로서 문학이 시민을 인종화되고 젠더화된 존재로 재발명하고 다시 상상하게 하는 힘을 가졌음에 주목한다. 흑인여성문학은 법 담론과 지배적 지식이 규정한 인종적, 젠더적, 계급적 한계를 넘어 이에 저항하는 수단으로서 글쓰기가 갖는 힘을 증언한다.
  따라서 이 연구는 흑인여성문학이 법에 따라 부정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주체성을 긍정하고 개인성을 드러내면서 미국의 시민으로서 자신을 발명하는 데 일조했음을 살피며,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 첫째,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글쓰기에 담긴 근대적 자아의 발명 과정을 살핀다. 자서전, 소설, 신문 기사 등을 통해 사생활과 고유한 개인성을 갖춘 흑인을 드러내는 일은 미국 사회가 상상하지 못했던 인종적 주체를 발명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백인과 다른 피부색을 가지되 그들과 동등한 이성적 능력, 감정, 문화를 공유하는 인간의 면모를 드러내는 일은 도주 노예의 회고록 및 흑인자유인의 소설과 신문 기사의 목적이기도 하다. 둘째, 인종적 주체의 발명이 성차가 표시된 육체를 가진 젠더적 주체의 생산과 밀접하게 연결돼있음에 주목한다. 인간을 특정한 피부색과 계급에 따라 위계적으로 구분하는 인종차별주의는 흑인에 관한 편견적 고정관념을 성별에 따라 다르게 양산한다. 예를 들어 흑인남성은 백인남성과 달리 남성성을 갖추지 못한 ‘영원한 어린아이’ 이미지가 주어지고, 흑인여성에게는 성적으로 난잡하고 성욕이 강함과 동시에 백인 가정에 헌신하는 모성적·무성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특히 19세기의 ‘진정한 여성성의 이데올로기’가 남부의 중산층 백인여성에게는 순결함, 무지, 나약함을 내면화시킨 반면, 남자와 같은 몫을 노동하고 성애적이라 여겨져 온 하층계급 흑인여성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다.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흑인여성이 지배적 사회구조 및 이데올로기와 맺는 관계를 검토하는 이 연구는 개인 정체성과 억압의 범주로서 인종과 젠더, 그리고 계급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다층적인 권력 관계와 맞물려 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흑인여성문학을 그동안 정치에서 배제돼 온 이들을 위해 시민적 권리에 개입하는 통로로 고찰한다. 흑인여성작가의 글쓰기 행위는 인종적 지위 향상을 위한 정치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자신의 시민권을 주장하며 시민적 권리 및 역량을 발휘한 정치적 실천이다. 특히 소설을 통해 혼혈과 뮬라토 후속세대의 문제를 탐구한 흑인여성문학은 신생국가 미국의 진보와 발전을 이끌 정치적 역량이 흑인과 혼혈인 동료 시민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이들 문학은 인종주의로 분열된 국가의 통합을 고민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흑인여성지식인이 인종을 위해 존중받을 만한 시민의 자리를 마련하는 데 일조했음을 드러낸다.
  이 연구는 제이콥스, 하퍼, 홉킨스의 텍스트를 분석하면서 흑인페미니즘 비평의 핵심인 교차성에 의거한 이론적 관점을 취한다. 세 여성 작가는 노예해방 전후 흑인여성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과정을 통해 인종과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이 얽힌 차별과 억압을 드러냈다. 북부로 도주했거나 북부에서 태어난 자유인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글을 쓰는 19세기 흑인여성작가는 교육받은 중산층으로, 직업을 가졌으며 작가로서 성공했을지라도 경제적 수준에서 언제나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했다. 소설 속 흑인여주인공 또한 교육을 잘 받은 중산층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노동자계급과 하층 계급의식을 지닌다. 계급적 지위는 재산뿐 아니라 양육과 교육, 문화, 외모 등 복합적 특성으로 얻어지는 것이기에 이들은 차별받는 인종으로서 중산층이 누리는 소속감이나 안정감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행보에 제약을 받았다.
  계급적 억압과 더불어 이 연구는 백인우월주의적·남성 중심적 정치체와 흑인여성이 맺어온 관계에 주목하고 인종과 성의 교차적 억압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19세기 후반 흑인여성지식인들은 그들의 인종과 성 정체성이 자신들의 정치적 투쟁의 초점을 독특한 것으로 만들었음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 문학은 맞물려 있는 억압의 구조 안에서 개인이자 집단으로서 흑인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그들이 공유하는 사회적 위치에 의해 다층적으로 형성된 것임을 드러낸다. 이 연구는 흑인페미니즘 비평의 핵심이 교차성에 있음을 명확히 하며 19세기 흑인여성문학에 나타난 다층적인 억압과 불평등을 분석하는 교차성 이론의 가치에 주목한다.

 

다층적 억압과 불평등을 분석하는 교차성 이론의 가치


  무엇보다 흑인여성문학은 젠더란 상호 연관된 인종·계급·섹슈얼리티 등 일련의 억압적 체제들과 맞물려 구성되며 함께 작동함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흑인여성이 여성으로서 젠더화되고 흑인으로서 인종화되며, 가난하고 무지한 계층으로 지목돼 계급화되기에 그들의 경험을 읽고 듣는 것은 억압의 범주와 위계가 얽히고 교차하는 방식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이해는 결혼과 같은 제도와 시스템이 특정한 특권과 종속을 배분하고 유지하는 방식을 분석하는 작업을 촉진한다. 나아가 흑인여성문학에 기록된 여성의 역동적인 저항과 행위성은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대항하는 여성의 주체적인 힘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그 힘을 증강시킨다. 이는 21세기 한국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갖는다. 흑인여성문학에 담긴 관점과 목소리는 권력과 지식이 생산되는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며, 소외되고 주변화된 위치가 갖는 잠재력과 지식생산의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용인하는 여성의 바깥에 머물면서 차이의 존재로 여겨져 왔던 흑인여성이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말하는 기록은 우리에게도 침묵을 깨뜨릴 힘과 용기를 준다.
  이 연구는 학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19세기 후반과 세기 전환기의 흑인여성문학 탐구를 통해 미국 흑인문학 전통에 대한 재평가를 넘어 미국 문학 전통에 대한 재평가를 촉구했다. 세 여성 작가의 문학은 억압적인 아버지 노예주가 사라진 이후의 미국 사회는 어떠한 모습인지 질문함과 동시에 평등한 개인과 시민이 되는 게 인종적·젠더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질문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 연구는 세 여성 작가의 작품이 세기 전환기 미국 문학의 급진적이고 뛰어난 정치·문학적 유산으로 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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