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연 /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포스트 - 이후의 시간


양승연 /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물기를 머금은 먼지 냄새, 빗소리를 닮은 음악, 무대 위에 계단을 따라 늘어서 있는 나무 의자, 그리고 그 위로 떨어지는 밝은 조명은 이맘때가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작년 여름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여름을 보낸 까닭이다. 여름이 시작할 무렵인 7월 그곳에서 연극〈R&J〉를 봤고, 가을의 시작인 9월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떠나왔다. 사무실과 학교만 들락날락하며 답답하기만 하던 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시간 덕분에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때문에 앞으로도 여름이 시작되면 그 무대가 떠오를 것 같다. 나에게는 이제 여름이란 곧 그 시간 안에서의 공간이므로.
  일상 속에서 이러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개 사람의 기억이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감각 정보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 기억을 형성하는 경험은 일상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한번 생각해보자. 길을 걷다가 횟집 비린내를 맡고서 언젠가 봤던 바다를 떠올리는 일은 꽤나 즐겁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내가 느끼는 감각들이 다양한 상황과 엮이기를 바란다. 언젠가 그 감각을 느낄 때 당시 상황을 떠올리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겨울에 주황빛으로 밝아오는 하늘을 보며 학부 시절 동기와 밤을 새워 과제를 한 후 잠들기 전에 창밖을 보던 때를 생각해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그리고 어쩐지 우울한 날에는 그러한 기억을 그러쥐며 하루를 버틴다. 다른 사람들 역시 그러한 시간들을 보내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관문을 나서기 어려운 요즈음. 무언가를 느끼기도 새로운 경험을 만나기도 어려운 때가 도래했다. 그 때문일까, 해야 할 것은 많은데 도무지 무언가를 하고 싶지가 않다. 주변 사람들 역시 오랜만에 연락하면 비슷한 말뿐이다. 이런 현상을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고 일컫는 기사를 봤다. 어쩌면 코로나에 직접 걸리지 않더라도 고통의 일부분을 모두가 함께 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무기력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이제 이러한 상황은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일상의 연장선 위에서 오랜만에 책을 집어 들었다. 공부나 작품을 위해서가 아닌, 순전히 읽고 싶어서 책을 선택한 건 오랜만이었다. 책을 들고 있으니 지난날 매일 대학로에 가 앉아 있던 시간이 생각났다. 살갗으로 전해져오던 이야기, 눈앞에 즉각적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방법은 한계를 갖는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야말로 책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유롭게 내 안에 남아 있는 감각들을 일깨우고 그로 인해 오늘 하루를 또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그 방법이 책이었듯,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방법이 존재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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