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0.9 금 13:00
기획사회
[사회] 비혼을 만드는 것, 비혼이 만드는 것박수민 /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홍의미 편집위원  |  dmlal33@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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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승인 2020.10.06  21: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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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결혼이지만 괜찮아 ② 결혼식? 난 비혼식

행복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인류의 종족 보존이고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감정이 사랑이라고 일컫던 시대가 있다. 그러나 2020년을 맞이한 오늘날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결혼할 필요도, 소속과 존중을 얻기 위해 결혼을 ‘해야만’ 할 필요가 없다. 과연 결혼제도는 어떤 역동을 거쳤기에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번 기획에서는 변화하는 결혼의 형태를 살펴보고 결혼 제도의 전망을 내다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사회적 합의의 시작 ② 결혼식? 난 비혼식 ③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면 ④ 퀴어 생활공동체를 위한 법적 보장

 

비혼을 만드는 것, 비혼이 만드는 것

 


박수민 /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결혼하기 좋은 나이는 언제일까. 사람마다 대답이 다르겠지만 한국 여성의 평균 혼인 연령은 30.6세다. 출산의 경우 35세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있다. 그 때문에 출산을 고려하는 여성들은 가급적 출산 시점이 35세를 넘지 않도록 결혼과 출산을 포함하는 인생계획을 세운다. 35세쯤 자녀를 출산하면 최소 20년 정도는 자녀 양육과 교육이라는 일생의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신혼부부 지원정책을 비롯한 각종 정책과 상품, 의례들 역시 이러한 생애주기를 따라 촘촘히 채워지며 일련의 상호작용 속에서 사회적 단위로서의 가족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그렇다면 비혼하기 좋은 나이는 언제일까. 비혼은 언제든 할 수 있다. 이는 비혼과 관련해 사회적∙생물학적 기준점이 없을뿐더러, 이를 제도화하는 (비)공식적 규범도 없고 따라서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가치체계도 없다는 말이다. 제도에서 벗어난 삶이라니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싶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제도는 개인을 규율하고 억압하는 동시에 더 넓은 사회와의 접점을 만들어냄으로써 삶에 규칙성과 안정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한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비규범적 존재라는 낙인이 찍히는 일이다. 이른바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히스테리가 심하다거나, 성적으로 문란하다거나, 신체적인 문제로 불임이라는 등의 소문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따라서 비혼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결혼제도 바깥의 삶의 방식과 선택을 지지해 줄 규범적 자원들을 구성하는 것이다.

 

기존의 삶의 경로와 이어지는 자원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주의는 모두에게 통용되는 논리이며, 비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성공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자산을 모으는 것은 단순한 삶의 전략이 아니라 능력의 징표로 여겨지며 정체성의 물질적∙상징적 기반이 된다. 발전과 상승이동은 한국인들이 어린 시절의 교육과정, 현대사에 대한 내러티브(Narrative) 등을 통해 내면화한 가치관 중 하나다. 따라서 결혼과 출산이 성공에 직접적인 걸림돌이라고 판단될 때, 결혼하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 비춰 더욱 합리적인 선택으로 읽힐 수 있다. 같은 논리에 따라 결혼을 할 정도로 경제적 안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결혼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정당한 사유가 된다. 정부가 세금으로 결혼식과 주거비용을 보조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른의 기준은 성혼이 아니라 경제력이다. 결혼제도가 아닌 시장의 논리를 통해 비혼은 설득 할 수 있고, 이해 가능한 것이 된다.
  결혼제도의 엄격함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역설적으로 결혼제도의 실효성을 위태롭게 만든다. 결혼은 평생에 걸쳐 서로에게 감정적·육체적으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헌신과 신의를 요구하는 엄격한 제도로, 부부 사이의 섹슈얼리티 문제까지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섹스 리스는 이혼 사유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결혼한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신의를 지키고 사는 이들도 있고 이해관계에 따라 쇼윈도 부부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친밀성 실천의 방식은 계급, 나이, 성격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는데, 결혼제도가 그리는 정상 가족의 모습은 범위가 협소해 이성애 기혼자들조차 그 안에 쏙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와 친밀성 실천의 실제가 탈동조화(Decoupling)하면서 나타나는 균열은 그런데도 결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게 만든다.
  결혼과 친밀성 실천을 분리해서 본다면, 결혼에는 제도적 자원 혹은 문화적 상징이라는 의미가 더 크게 남는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강력했던 시절에는 결혼이 친밀성 실천의 토대였다. 70년대 초반까지는 중매 결혼 비율이 연애 결혼보다 높았고, 이 시절에는 서먹함이 남아 있는 채로 결혼부터 한 뒤에 살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흔했다. 하지만 이제 연애와 결혼은 따로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 됐으며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자유로운 연애가 터부시되지도 않는다. 한국에서는 아직 출산과 결혼제도는 떨어뜨려 생각하기 어렵다. 자녀를 키울 계획이 있는 이들이라면 결혼제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의료, 교육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출산계획이 없다면 결혼제도의 필요성은 더욱 크게 떨어진다. 파트너 사이의 친밀성이라는 측면만 본다면 결혼은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 아니다. 비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해 제도를 유지하는 데 애쓰기보다는, 결혼하지 않고 다른 삶을 꾸리는 데 에너지를 쓰기로 한 것이다.

 

   
 

대안 공동체의 부상


  비혼이라는 상황 혹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대안 공동체의 부상은 시장주의나 가족주의와 같은 기존의 지배적 질서와는 다른 결의 자원이다. 시장주의와 가족주의가 기존의 삶의 방식과의 연속선에 있는 전략이라면, 대안 공동체의 형성은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관계망이다. 비혼공동체의 역사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자 한 여성들의 노력과도 연결된다. 비혼여성들의 공동체는 특정 조직이나 집단이라기보다는 비혼이라는 삶의 양식을 이해하는 친구, 지인 등 다양한 관계들의 총체다. 미국에서는 19세기 비성애적 관계의 여성들이 함께 사는 ‘보스턴 결혼’이라는 문화가 있었고, 20세기 중반 일본에서는 전쟁의 여파로 늘어난 독신 여성들이 ‘독신부인연맹’이라는 모임을 만들었으며, 한국에서도 80년대 이후 다양한 독신여성 자조모임이 등장했다. 이 여성들은 독신에 대한 제도적 차별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모으고 생활의 어려움을 서로 돌봤다.
  여성들의 공동체가 가족제도 바깥의 여성들에게 큰 힘이 돼 준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음에도 여성들의 우정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성애 규범적 사회에서 가족은 친밀성과 돌봄을 모두 독식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결혼 외의 관계들은 우선순위에서 쉽게 밀려나거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십상이다. 가족은 남는 관계, 그 외의 관계는 휘발되거나 흘러갈 관계라는 식이다. 하지만 결혼제도 밖에 있는 비혼들은 가족이라는 제도를 통해 친밀성과 돌봄을 모두 구할 수 없기에, 비혼이 상상하고 필요한 돌봄 공동체의 범위는 혈연가족의 경계를 넘어선다. 관계가 가족이라는 경계에 갇히는 것이 비혼들에게는 오히려 비생산적이다. 가족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최우선의 관계로 존재하는 공동체에서 비혼은 결핍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가족이 아닌 이도 돌봄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동료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결혼 중심적인 문화에서 결혼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기회를 충분히 얻기도 어렵다.
  비혼공동체를 꾸리고 유지하는 것은 이처럼 결혼 중심적 관계관을 떨쳐내고 비혼 중심적 관계관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가족의 바깥에도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물질적 자원을 들여 일궈야 할 친밀한 관계들이 존재한다. 송은이-김숙의 우정과 ‘셀럽파이브’ 멤버들 사이의 역사가 반향을 일으키는 것도 이 지점이다.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 방송을 못 한다”고 말하던 송은이는 동료들이 TV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두고 보다 결국에는 직접 판을 깔았다. 결혼이 우선순위가 아닌 것을 존중하는 공동체는 그 자체로 이들의 삶의 방식을 긍정해주고 또 다른 삶의 기획을 도전할 수 있는 네트워크로 기능하며, 이를 통해 비혼을 사회적으로 가시화하는 토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삶의 전략들은 비단 결혼하지 않는 이들에게 그치는 일이 아니다.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가 싱글》(2008)이라는 책 제목처럼, 고령화 시대에 모두 언젠가는 싱글이 된다. 그때 필요한 것은 바로 앞서 싱글의 삶을 살았던 선배 싱글들의 각종 노하우다. 대안 공동체를 중심으로 논의가 되던 공동 주거가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주거상품으로 개발이 되고 있듯, 비혼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비혼공동체에 대한 여러 시도는 더 넓은 사회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는 혈연을 중심으로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관계에서 벗어나, 동시대의 시민들과 상호협력하는 관계로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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