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진 /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② 왜곡된 프레임과 언론

디지털 성범죄 문제는 정치적 무관심과 여성혐오적 사회구조, 가해자 중심의 사법적 조치, 사건의 본질을 흐린 채 자극적인 프레임만을 쫓는 언론 보도 등이 맞물려 튼튼한 토대를 마련한 덕분에 늘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비슷한 결과로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온라인상에서의 성범죄를 전시하고 방관하면서 그 몸집을 키워간 대한민국의 문제적 현실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모두가 공범인 역사 ② 왜곡된 프레임과 언론 ③ 디지털 기술의 비극 ④ 부정당한 욕망, 그리고 피해

 
 

디지털 성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의 역할과 책임

윤여진 /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2020년 3월, 일명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추적단 불꽃’이라는 두 명의 여성들에 의해 그 범죄의 실체가 알려지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다수의 가해자가 미성년자를 포함한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n번방’ 등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해당 영상물을 비롯한 불법촬영물을 공유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의 공포스럽고 위험한 얼굴이 세상에 드러났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 방향은 어떻게 미성년자를 포함한 젊은 청년들이 그들과 비슷한 또래 여성의 성을 착취해 돈을 벌었는지에 중점을 두거나 그 가해자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보도하는 데 집중했다. 그나마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으로 피해자의 신상이 알려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 것이 언론의 달라진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범죄를 통해 우리가 경악하며 끔찍하게 확인한 것은 디지털 성범죄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여성단체는 텔레그램 성 착취물 공유방 60여 곳의 이용자가 총 26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불법성착취 영상물을 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상을 만들어 배포하고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에 큰 처벌을 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한편,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지 6개월 후 n번방 추적기를 책으로 출판한 추적단 불꽃팀은 이렇게 말한다. “n번방은 이미 7월에 정점을 찍고 지나갔어요, 언론은 왜 관심이 없는 걸까요?”

왜곡되고 변질된 ‘프레임’

  지난 16일 언론인권센터는 ‘미디어와 N번방, 성착취사건의 2차 피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2020년 3월부터 5월까지 9개 종합일간지의 n번방 사건 보도를 모니터했고, 이를 통해 2차 가해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봤다. 모니터 기준으로는 먼저 피해자 비난, 피해자 신상 노출, 피해자 무력화와 같은 ‘피해자 관련 보도’, 가해자 서사 집중, 가해자 타자화, 미성년 가해자를 선정적으로 부각하는 ‘가해자 관련 보도’가 있다. 또한 사건의 선정성 부각이나 사건 경시로 대표되는 ‘범죄묘사’ ‘부적절한 이미지 사용’ ‘기타’ 등도 포함됐다.

  모니터 결과를 살펴보면 구체적 피해자의 신상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피해자다움에 대한 묘사, 즉 피해자를 범죄의 공범으로 묘사한 것 등은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도록 해 광범위하게 2차 피해에 포함된다고 봤다. 또한 다수의 보도에서 가해자의 평범했던 과거를 범죄행위와 대조해 범죄자를 두 얼굴의 존재로 묘사했다. 가해자를 ‘악마’ ‘반사회적 인간’으로 묘사하며 마치 그들의 범죄를 일탈적 행위로 보도한 것은 오히려 이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걸림돌이 됐다. 범죄를 일으킨 개인에 집중함으로써 디지털 성범죄가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나 쉽게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 보도의 관행적 문제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용어 사용이었다. 예를 들어 “텔레그램 성범죄 가해자들, 새 메신저 옮겨 음란물 거래”라는 제목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음란물’이 성착취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음란물’이라는 용어를 통해 이를 상업적 포르노물을 보는 행위 정도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론 보도는 음란물을 보는 행위를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또 사회적 용인 범위 내에 있다고 잘못 인식하게끔 만든다. 언론은 음란물, 몰카 등의 용어를 관행적으로 쓸 것이 아니라 불법촬영물, 성착취영상물의 단어로 정확히 써야 한다. 디지털 성범죄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피해자에게 반인권적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수의 언론이 가해자에게 특별한 서사를 부여해 그를 ‘악마화’ 시킴으로써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온 디지털 성범죄를 개인적 문제로 만들었다. 물론, 일상의 성범죄가 어떻게 방치되고 확대됐는지 그 구조적인 문제도 제대로 취재하지 않았다. 이는 디지털 성범죄를 몇몇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게 했다는 점에서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언론은 문제를 드러내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죄가 더는 일어나지 않도록 추적하고 관련법을 개정하도록 관계기관을 감시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언론이 관심을 두는 것은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에만 머물러 있으니, 보도를 통해 인터넷 조회 수를 올리는 데에만 혈안이 된 게 아니냐는 비난이 따라오는 것이다.

  또한 언론으로 인한 2차 피해는 교묘하다는 점에서 문제다. 언론이 나서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등의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가해자의 발언을 직접 인용해 이를 사용하는 보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SNS나 커뮤니티에서 사용된 문장들, 심지어는 가해자의 말을 그대로 가져와 제목에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언론의 역할은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소비를 조장하는 게 아니라 범죄 사건을 심층적으로 보도하고 더는 범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렇기에 결국 보도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디지털 성범죄가 확대되는 데 책임이 있다는 지적에서 언론은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언론의 역할을 재고해야 할 때

  n번방 사건을 들여다보면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을 도구처럼 사용했고, 그들을 자율성과 자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존재로 바라봤다. 언제든지 그들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타인에게 돈을 받고 판매하는 소유물처럼 그들의 고통과 호소는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언제든 그 빈자리는 다른 피해자로 대체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는 누스바움(A.Nussbaum)이 말한 7가지 대상화의 유형으로 성착취 범죄의 단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때 언론이 피해자를 다룬 방식도 가해자와 다르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을 기사 클릭 유도를 위한 도구처럼 사용했고 기사 유입 유도를 위해 피해자의 고통과 호소를 생각하지 않았다.

  음란물, 몰래카메라와 같이 불법촬영물을 뜻하는 단어로 포탈 검색을 하면 여성 신체를 착취하는 범죄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수사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사건’으로 불릴만한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그리고 세계적 범죄인 ‘웰컴투비디오’ 등의 이슈도 있었다. 그런데 왜 n번방 사건만 언론에 크게 보도될 수 있었을까. 이미 2년 전 양진호의 웹하드 운영방식, 디지털 장의사 공모 등에서 밝혀진 것처럼 디지털 성범죄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그 산업은 오로지 여성들의 착취와 고통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산업이자 범죄가 됐다. 2만 개가 넘는 언론이 있지만 n번방 사건에 주목하고 문제를 제기해 시민과 언론마저 각성시킨 것은 언론사 바깥에 있었던 추적단 불꽃팀의 두 여성이었다. 그 가운데, 해당 문제를 탐사보도 형식으로 보도했던 작년 11월에는 비교적 반응이 조용했던 반면, 올해 3월 선정적이며 과장된 내용으로 보도한 언론매체로 인해 사회적 이슈로 확산될 수 있었다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디지털 세대가 아닌 사람들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무지, 몰이해는 그 주체의 의도와 무관하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피해를 유발한다. 2019년 ‘기자 단톡방 사건’과 그를 대하는 언론의 자세가 n번방 사태를 낳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혐오하는 문화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기자들까지 가담할 정도의 디지털 성범죄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동시에 언론은 악마 타령을 하며 범죄자의 연령이 낮아진 것에 대해 놀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웰컴투비디오 사건에서 보이듯이 왜 미성년 혹은 젊은 남성들이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지, 이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시민들도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궁금해하는 것이 아닌, 더이상 이러한 범죄로 피해받는 여성들이 없는 사회가 되도록 언론을 비판해야 한다. 피해자의 피해가 왜곡되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더 나아가 가해자를 대변하거나 전시하지 않도록 사회 속 약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진정한 언론으로서의 책무를 재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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