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 보는 덕후 세상]
 

팬덤 기만, 그 후폭풍

 
  한때 대한민국은 누구나 ‘프로듀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엠넷(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은 말 그대로 시청자가 만들어가는 아이돌이라는 포맷을 기반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팬들에게 전적으로 모든 기획 결정권을 쥐어 준 듯한 프로그램은 새로운 팬덤 문화, 그리고 산업을 개척하는 데 일조한다고 평가받기도 했으나 이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됐다. 해당 시리즈의 네 번째 시즌이자 2019년 방영된 ‘프로듀스 X 101’에서 투표조작 정황이 드러났고 관계자들은 구속, 선발된 그룹은 해체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은 많은 팬덤에게 ‘내 손으로 직접 탄생시킨 아이돌’이 모두 허상이었다는 무력감을 남겼다. 또한 권력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팬덤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문화산업이 ‘허락한’ 반경 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 역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또 다른 주체적 팬덤 문화를 방증하기도 했다. 탈락한 유력 연습생들의 팬덤이 중심이 돼 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지점에서 더욱 화를 일으켜 결국 그들이 직접 제작진을 고소·고발하는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비록 눈물과 분노로 얼룩진 사건이었지만 엄연한 고객으로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는 데에 조직적으로 항의하고 행동한 모습은 더욱 적극적으로 진화한 팬덤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팬덤에 대해 여전히 많은 부분이 논의할 점으로 남아있는 가운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이 특정 하위문화에 국한돼 전시되거나 고립되기보단 변화를 택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희원 편집위원 | ryuni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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