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희 / 《팬덤 3.0》 저자

'덕질'하는 일상 ① 팬슈머로서의 팬덤

팬덤이란 특정 대상을 향한 애정을 기반으로 이와 관련된 행위를 실천 및 공유하기 위해 조직된 공동체이자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문화형식 자체를 일컫는 용어다.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 영역에선 ‘케이팝’ 음악 시장이 확장됨에 따라 아이돌 팬덤 문화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는 추세다. 이번 기획에서는 대한민국 팬덤 문화의 현주소를 다루며 그 안에 얽혀있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읽어내고자 한다. 특히 매우 조직적인 하나의 네트워크로 성장한 팬덤의 정체성 이슈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덧입혀 소개하려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팬슈머로서의 팬덤 ② ‘덕후 공동체’, 그 역동성 ③ 젠더이슈 속 ‘균열된’ 팬덤 ④ 팬덤과 문화적 혼종성

 
 

 

변화하는 팬덤 3.0


신윤희 / 《팬덤 3.0》 저자

  오늘날 팬덤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다양하다. 수용자, 소비자, 운동원, 공동체, 유통자, 전략가, 홍보가, 평론가, 기획자 그리고 팬슈머(Fansumer)까지. 이처럼 다양한 호칭은 달라진 팬덤 문화에 기인한다. 특정 집단의 하위문화에서 지금의 참여문화에 이르기까지 문화 구성체(Cultural Formation)로서의 팬덤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이제 팬덤은 과거에 비해 양적으로 확장된 동시에 주체성과 기획 능력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소비 능력을 뛰어넘는 팬덤의 위치를 만들어냈다.

 

스타와 함께 탄생하는 3세대 팬덤


  과거에는 기획사의 기획을 거쳐 스타라는 상품이 먼저 만들어지고, 팬들은 차후에 프로그램 등을 통해 그들의 리얼리티를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매개로 연습생의 리얼리티를 먼저 확인하고, 팬들이 스타라는 상품을 직접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스타와 끈끈한 연대가 생기고 스타와 팬의 관계도 비교적 동등해진다. 과거 전적으로 산업의 몫에 불과했던 아이돌 그룹의 제작과 기획에 팬덤이 참여하는 현상, 그래서 아이돌 그룹이 탄생하는 동시에 함께 만들어지는 것이 이른바 ‘3세대’ 팬덤이다. 달라진 팬 문화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팬들은 원하는 상품을 기획해서 산업에 요구하고, 영향력을 드러내기 위해 전략을 세워 개입한다. 상품을 소비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의견을 내고 관리한다.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행동주의 소비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소비자 행동주의는 아이돌 그룹을 넘어 인터렉티브 콘텐츠(Interactive Content), 다양한 상품으로까지 점차 참여 영역을 넓히고 있다.
  스타와 팬 사이의 이와 같은 관계 형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타라는 텍스트 안에서 팬덤이 개입하는 빈 공간이 커질수록 팬덤은 스타와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미디어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피에르 레비(P.Levy)의 지적처럼, 개방된 작품에서 수용자는 빈 공간을 채워 넣는다. 상품과 팬, 혹은 콘텐츠와 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상품의 기획·생산·유통과정에 개입하는 복합적인 팬덤은 그래서 ‘호명’으로부터 탄생한다. 수용자를 직접 호명해 참여를 유도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에서는 팬덤의 참여 공간이 곧 팬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팬덤의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인식, 미디어 플랫폼을 넘나들며 스토리에 개입하도록 수용자를 직접 호명하는 일, 이것이 참여형 소비자 팬덤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팬덤의 특징은 주체성에 있다. 이는 소비 이전에 ‘나’라는 정체성이 더 중요한 가치인 MZ세대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스토리에 개입하는 경험을 해본 팬들은 주관적 판단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주관적 판단이 중요해진 팬덤 문화는 사회적 의미로 확장된다. 판단과 선택이라는 행위에서 ‘취향’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즉 가치를 소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소비자 행동주의를 보일 때도 먼저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판단한 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연대한다. 추구하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표현하는 시대. 무조건이 아닌, 주체적인 방식으로 스타 관련 이슈를 판단하는 팬 문화. 여기에서 ‘내’가 중요해진 쌍방향 미디어 시대의 수용자이 주체성을 가진 팬이 등장했다.

 

투쟁하고 공모하는 참여문화


  ‘가치를 소비하는 문화’라는 측면에서 팬 개인의 소비 방식에 집중했다면, 팬덤의 집단적 실천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가능하다. 3세대 팬덤이 원하는 조합으로 아이돌 그룹을 만들고 데뷔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했던 건 소비자 행동주의였다. 팬들은 의견을 개진하고 권리를 주장하며, 집단 지성으로 행동을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팬의 요구를 수용할 줄 알고 이들을 파트너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곧 기업의 역량이 됐다. 경제적 소비는 경험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 팬들은 구매 자체를 위해, 구매에 대한 열정을 증명하기 위해 구매하지 않는다. 이처럼 새로운 팬덤은 원하는 것을 요구하며 산업과 공모한다.
  팬덤의 힘을 활용하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팬 문화에 점점 관심을 두는 추세 다. 대중의 참여를 통해 솔루션을 얻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이나 팬을 활용한 마케팅인 ‘팬 경영’ 같은 현상이 주목받는 이유다. 미디어 학자 헨리 젠킨스(H.Jenkins)의 분석과도 같이 이제 소비자 주권을 무시한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핵심은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팬덤의 적극적인 참여가 기업의 생존 모델이 되면서 기업도 팬덤의 정서와 행위, 공동체 조직 방식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회사의 규모와 아티스트의 성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높였다. 미디어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산업은 팬들의 취향을 고려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이를 확산하기 위해 뉴미디어 브랜드와 협업하기도 한다. 팬 수다(Fan Buzz)가 보장된 쇼에 아티스트를 노출해 홍보비용을 절감하는 전략도 비슷한 맥락이다.
  3세대 팬덤 문화는 팬덤-미디어-소속사라는 세 권력이 서로 공모하고 의존하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다. 미디어 기술의 변화, 커뮤니케이션의 변화와 맞물려 ‘국민 프로듀서’가 돼봤던 소비자의 내재적 변화가 아울러 나타난 것이 3세대 팬덤 문화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문화가 어떤 모습인지를 살펴보는 것에 있다. 팬들은 내재적 조건에서 적극적인 실천과 능동적인 참여문화를 만들어내 문화산업을 돌리는 동력이 됐다. 하지만 동시에 복잡한 구조 속에서 외재적 조건과 결합해 톱니바퀴의 한 부품으로 변하기도 했다.
  팬덤 3.0의 참여적인 특성이 결함 없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미시적으로 봤을 때는 적극적으로 보이는 참여 모델의 팬덤이 거시적으로는 자본주의에 포섭돼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3세대 팬덤의 능동적인 참여가 결국 그러한 포섭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세 권력의 한 축인 ‘팬덤’이 남아있기만 한다면, 미디어와 소속사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텍스트가 팬덤의 힘으로 부각되는 일 또한 가능하다. 프로젝트 그룹의 팬덤이 자신들의 이름을 유지하려는 이유다. 자신의 이름을 지키려는 팬덤의 노력은 그래서 또 하나의 소비자 행동주의다. 3세대 팬덤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갈지는 결국 이 팬덤의 활동에 달렸다.
  팬덤은 변화한다. 산업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때로는 문제적이고, 사회운동의 전초가 되기도 하며 하나의 놀이문화로서도 자리해왔다. 이렇게 팬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화 현상은 팬덤으로 불릴 수 있다. 문화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듯이, ‘팬슈머’ 이후로 변화하는 팬덤은 또 다른 방식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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