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신 / 유럽문화학 교수

[교수칼럼]

언택트 시대의 콘택트

류신 / 유럽문화학 교수

   코로나 팬데믹이 서둘러 소환한 ‘언택트 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변화의 움직임이 교육 현장에서 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무크의 잠재력이 재평가됐고, 플립러닝의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으며, ‘강의실 수업’의 권위 앞에 숨죽이던 ‘재택 수업’이 그동안의 서자의 서러움을 딛고 새로운 주인공으로 전면 등장했다. 에버랙과 줌은 재택 수업의 강력한 엔진으로 장착돼 언택트 시대 양대 온라인 교육 채널로 자리 잡고 있다. 학생과 교수 모두 이 변화된 교육환경과 시스템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주장은 진부해 보인다. 이미 에버랙과 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실험이 아니라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지난 학기 나는 코로나가 초래한 교육 매체 환경의 급격한 지각변동 앞에서 갈팡질팡 허둥거렸다. 적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아니 무조건 적응해야만 했다. 동영상 셀프스튜디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모노드라마를 찍었고, 줌 사용법을 익혔지만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었다. 훈련을 마치지 않고 전장에 투입된 병사의 심정처럼 불안했다. 적응했다기보다는 적응 당했다는 표현이 타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언택트 시대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작은 여유가 생겼다.
   릴케의 시 〈내 눈빛을 꺼주소서〉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청년 릴케가 연인에게 헌정한 시구에서 ‘직접’ 만날 수 없는 연인에 대한 치열한 사랑과 흠모로 요동치는 생의 파토스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언택트 시대 진정한 학문적 교감을 나누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비대면 수업 방식에서 교수와 학생 사이를 잇는 소통의 매개는 인터넷과 와이파이만은 아니다. 교수는 정보제공자가 아니다. 교수에게 학생은 정보수용자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교수와 학생의 가교는 0과 1의 디지털 신호가 전송되는 차가운 광케이블이 아니다. 강의실 면대면 수업에서 느낄 수 있었던 학문적 열정, 상호존중, 신뢰, 진정성 등이 온라인을 통해 함께 ‘스트리밍’돼야만 한다. 그래야 온라인에 인간적인 온기가 감돌 수 있을 것이다. 시스템은 내 밖에 있지만 열정은 내 안에 있다. 강의에 대한 나의 ‘진심’이 온라인을 타고 흘러 누군가의 뇌에 불을 지필 수 있길 기대한다. 이것이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는 방법이다. 언택트 시대의 콘택트! 직접 만날 수 없어도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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