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9.4 금 14:15
기획사회
[사회1] 사회적 방관과 사법적 침묵김한균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희원 편집위원  |  ryuni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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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호]
승인 2020.09.01  17: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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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① 모두가 공범인 역사
 
디지털 성범죄 문제는 정치적 무관심과 여성혐오적 사회구조, 가해자 중심의 사법적 조치, 사건의 본질을 흐린 채 자극적인 프레임만을 쫓는 언론 보도 등이 맞물려 튼튼한 토대를 마련한 덕분에 늘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비슷한 결과로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온라인상에서의 성범죄를 전시하고 방관하면서 그 몸집을 키워간 대한민국의 문제적 현실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모두가 공범인 역사 ② 왜곡된 프레임과 언론 ③ 디지털 기술의 비극 ④ 부정당한 욕망, 그리고 피해
 
   
 

사회적 방관과 사법적 침묵


김한균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디지털 성범죄와 범죄피해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그래서 그 개념을 법적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규정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높은 관심과 온갖 특별한 법적 대책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상황이 오히려 놀랍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회문제도 아닐뿐더러, ‘첨단’ 기술을 악용한 ‘신종’ 범죄여서 법이 보기에 낯선 현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가 널리 사용된 지 수십 년이고 범죄 도구로 악용된 지도 그만큼 오래다. 또한 한국 사회의 온갖 성폭력이 만연한 지는 그보다 더 오래고, 여성과 아동청소년이 주로 피해자라는 사실 역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디지털 기기를 악용하면서 가해도 피해도 더 참혹해지기까지 방관과 침묵이 있었다.
 

대한민국, 디지털 성범죄 무법지대


  1997년, 언론은 이른바 ‘빨간 마후라’ 사건을 ‘10대가 직접 만든 음란 비디오’로 칭했다. 가출 청소년 피해자를 집단성폭행하고 캠코더로 촬영한 이 범죄 영상은 취재나 수사 과정 에서 유출돼 전국 불법 비디오 시장으로 퍼져나갔다.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이른바 ‘O양 비디오’ 사건 등 여성 연예인 피해 영상물 유포가 이어졌는데, 이는 한국 사회 인터넷 보급률을 높이는 데에 기여했다는 악랄한 웃음거리가 됐을 뿐,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 혹은 ‘비동의 유포 성적 촬영물’이라는 죄명이 붙여진 건 한참 뒤 일이다. 악명 높은 ‘소라넷’이 처음 등장한 해 역시 1999년이었다. 이는 성매매 후기 게시글로 시작해 불법촬영물 공유와 강간 모의 사이트로 발전하면서 회원이 백만 명에 이르렀는데, 오늘날 텔레그램 n번방의 모든 형태는 이미 소라넷에서 시작된 것이다. 경찰이 소라넷 운영 주범들을 검거하고 폐쇄하는 데는 17년이 걸렸다. 물론 일백만 회원 중에 처벌받은 자는 없었고, 이들은 다시 웹하드와 다크웹으로 옮겨 갔다.
  이처럼 소라넷에서 창궐하던 디지털 성범죄물이 웹하드로 옮겨간 가운데, 범죄물 유통 구조는 범죄조직이나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더 악화됐다. 2017년 웹하드 카르텔 사건은 단순유통이 아니라 관리자가 범죄물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헤비 업로더(Heavy Uploader)를 직접 관리·고용해 막대한 범죄수익을 취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돈을 받고 영상을 찾아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의사 업체를 두고 피해자의 고통을 또다시 착취하는 범죄산업의 극악성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우리 사회가 알면서도 방관하는 사이 그리고 법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이, 청소년들은 서로 가해자와 피해자로 뒤엉키면서 디지털 성범죄물을 생산 및 판매했고 기성세대들은 이를 거리낌 없이 착취하고 소비했다. 이렇게 범죄피해와 수익이 맞물려 돌아가는 무법지대의 악순환이 버젓이 한국 사회 한복판에 자리 잡게 됐다.
 

음란물이 아니라 성착취물이다


  2017년 9월, 웹하드 카르텔 사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범정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방지 종합대책이 나왔다. 당시 정부는 엄연히 성폭력처벌법이 규정한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를 ‘몰카’로 부르는 약칭이 장난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불법성이 부각된 ‘불법촬영’ 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2017년 종합대책은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위장한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디지털성범죄가 곳곳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데도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 대책은 불법촬영과 유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고백부터 시작한다.
  “디지털 테러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법촬영 및 유포행위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아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타당하긴 하지만, 정부가 남말하듯 할 말은 아니다. 처벌과 방지에 실패한 법과 정책 문제점에 대한 반성이 먼저다. 디지털 테러 운운에 흥분하기보다는 범죄피해실태와 정책실패부터 점검하고, 개선과제들을 차분히 실천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후 불법음란물에 대한 현행 규제체계를 점검하고, 제도개선 및 법령개정 등을 통해 웹하드 카르텔 구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을 추진한다는 목적하에 2019년 1월에 ‘웹하드 카르텔 방지대책’이 나왔다. 그리고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터지니 2020년 4월엔 서둘러 ‘범정부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2020년 대책에서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를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간주하고 끝까지 뿌리 뽑는다는 자세로 온 역량을 모아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다짐한다. 사건이 터져서야 철저한 대응을 거듭 다짐한다는데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디지털 테러나 반인륜행위를 들먹이는 레토릭(Rhetoric)보다는 법 정책을 통해 어떤 가해와 피해가 디지털 성범죄이며 마땅한 처벌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설립하고 분명하게 적용해야 한다.
  가장 최근인 올해 개정된 성폭력처벌법과 청소년성보호법을 보자. 피해자가 자기 신체를 직접 촬영했다 해도 의사에 반해 유포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누가 촬영했는지보다 피해자 의사에 반한 유포가 범죄요건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인정된 것이다. 또한 불법촬영물 소지 처벌을 강화하고 시청도 처벌하는 규정 역시 신설돼 소지도 시청도 더는 ‘단순’가담이 아닌 디지털 성범죄 자체임을 비로소 받아들였다. 더 나아가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죄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죄로 개정됐다. ‘음란물’이 아니라 성착취임을 또한 분명히 한 것이다.
  2017년 대책 발표 당시 2011년부터 2016년에 이르는 법원판결 분석 결과에 따르면, 불법촬영죄 처벌은 징역형 5.3%, 음란물 유포죄 처벌은 징역형 5.8%에 불과했다. 이는 중대한 범죄물이 아니라 단순 음란물로 보는 왜곡된 인식이 국민들에게 만연돼 있다고 지적하기 전에 국회와 법원의 인식부터 살펴봐야 하는 것을 보여준다. 불법촬영물 2차 유포나 보복성 성적 영상물 유포와 같은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거나 처벌 수준이 죄질에 미치지 못한다면 법은 디지털 성범죄 심각성을 부인하고, 피해호소 앞에 침묵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상식적인 형벌기준이 필요한 때


  따라서 판사가 디지털 성범죄 가해와 피해 특징을 제대로 반영해 형벌 종류와 형량을 정하도록 디지털 성범죄에 고유한 양형기준이 필요하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된 아동성착취물죄 양형조사자료에 따르면 제작·판매·배포죄 선고형량 평균은 14.2개월에 불과하다. 소지죄 실형 선고 사례는 아예 없었다. 문제는 양형기준이 정한 형량 상하한범위는 종래 해당 범죄 선고 형량의 7~80% 정도 범위를 기준으로 정한다는 데 있다. 국회가 거듭 법정형을 가중해도 종래 선고를 기준 삼아 권고 형량범위를 정해버리면, 실제 처벌은 별다른 변화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제대로 살펴본다면 유포에 대한 피해자의 두려움이 매우 크고 2 차 피해가 더욱 심각할 수 있으며, 불법촬영물 완전삭제 없이는 피해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행 양형기준상 감경요소인 초범, 반성, 피해자와의 합의를 디지털 성범죄에서도 형식적으로 같게 평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양형기준 목적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올해 말 나올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내용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국민의 상식이 서로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다.
  1991년 성폭력범죄 특별법 제정을 위한 사회운동으로부터 성희롱과 부부강간죄 논의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성폭력 개념들은 사회적 요청에 주목한 입법과 판례를 통해 구성돼 왔다. 비로소 데이트폭력이나 디지털 성폭력처럼 피해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새로운 성범죄 개념이 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단순한 음란물이 아닌 강간과 추행, 아동 대상 성폭력, 성적 학대와 강요, 성폭력범죄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사고파는 온갖 성폭력 및 성착취 문제를 가리킨다. 성폭력물 제작유통과 소비자가 서로 공모하는 형태로 범행하고, 피해자에게 디지털 환경을 악용해 접근하며, 고통과 피해를 범죄수익 창출 기회로 삼는 범행 수법 때문에 죄질과 피해는 더욱 참혹하다. 우리 사회와 법 제도는 어떤 형태로든 여성과 아동이 겪는 성폭력 피해 경험을 더 이상 못 본 척하거나 입 닫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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